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3월의 말씀
아버지의 자리
렇듯 연민 가득한 슬픔, 이렇듯 따뜻한 슬픔! 이런 눈빛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광부 화가로 유명한 황재형 화백의 대표작입니다. 막장이라 불리는 지하 땅굴에서 시커먼 석탄가루 마시며 실제로 광부 일을 했습니다. 그 막장에서 화백이 만난 얼굴입니다.
막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험악한 환경, 캄캄한 지하 동굴에서 탄가루가 덮혀 시커메진 밥을 땀과 함께 먹어야 하고, 들이쉬는 한 호흡마다 폐를 채우는 검은 가루로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몸으로도 가족의 생계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는 서글픔, 이 모든 것보다 더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갱도 사고의 위험은 늘 광부를 무겁게 짓누르는 바윗덩이지요. 이런 막장 속 삶을 살아내는 데도 가족 건사,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진저리나는 가난. 이중 단 하나만이라도 몸서리칠 인생이거늘 저 무게를 다 견디면서도 사랑을 잃기는커녕 온존재가 연민이 되어버린 사람의 눈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일반화시키는 위험을 무릎쓰며 이야기 해보자면, 대체로 가난한 이들은 오지랖이 넓습니다. 내가 가난해보니, 내가 힘들어보니 남의 사정도 쉽게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고나 할까요. 내 집, 내 재산, 내 사람 지킬 것 많은 이들은 남의 아픔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요. 내 코도 석자긴 하지만 갱도에 묻혀 스러져간 수많은 동료들, 검은 석탄 가루 마시고 온몸 만신창이 되어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웃들, 여기저기 몸을 다치고도 위험한 갱도의 온몸을 짓누르는 노동을 그만 두지 못하는 사연 많은 동료들, 그 가족들의 한 많은 사연들이 강건너 불이 아니라 마치 내 일처럼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캄캄한 갱도에서 밥을 먹자면 내 이마에 불은 내 밥을 비춰주지 못해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며 밥을 먹는 모습을 그린 이 화백의 그림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어울릴는지 모르겠지만 천국의 지상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저는 이 화백이 살고 있는 황지에서 어린 시절 약 3년간 살았던 적이 있는데, 저희 아버지는 광부가 아니었기에 직접 그 처절함을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거칠지만 소박하고 마음 따뜻했던 이웃들, 저희 집에 쌀을 빌리곤 갚을 길 없어 봄에 산나물을 뜯어다 주거나 그 고소한 옥수수를 한 자루씩 들고 오던 아주머니들은 제 뇌리에 참 진득하게 박혀있습니다. 탄광이 없는 ‘절골’이란 곳의 그 맑은 개울물과 탄광촌이 이어지던 통리의 시커먼 천줄기 같던 계곡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생채기가 되어 50년이 넘은 지금도 제 안에 생생히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선 남 탓 세상 탓하지 않고, 자기연민이 없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 억울함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탓하지 않되 그 어려움의 원인을 정확히 봅니다. 돈과 권력을 쥔 이들의 힘에 속수무책 당하면서도 그들의 논리, 돈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강원도 산골처럼 건강하고 신선한 어떤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썩어도 이 푸름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움츠러들었던 마음 한구석이 살며시 펴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 아름다운 슬픔이 사람을 치유하고 구한다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위의 예수님에게서 생생히 봅니다. 이 십자가 위 연민과 슬픔 고통이 이 그림 속 아버지의 눈 속에서 읽혀집니다. 석탄 가루에 찌든 검고 주름 가득한 모습도 그 연민의 빛을 덮어 누르지 못합니다. 곧게 선 콧대와 닫힌 입술, 선명한 이마 주름에도 험상궂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눈빛 때문이겠지요. 제목 그대로 아버지의 자리를 꿋꿋이 살아내 온 이 시대의 아버지입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니”라는 예수님의 진복 선언이 영 어렵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행복을 잠시나마 누립니다.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