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11월의 말씀


공감이 열어주는 세상

시대는 슬픔을 공감하는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세월호 사태가 터졌을 때 소위 “극우 매체”가 “오뎅”이라는 말을 쓴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소름끼치는 전율, 슬픔, 분노가 섞인 감정이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덮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그 깊이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다들 아는 이야기 중에 ‘밥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가족의 테두리에서조차 경계가 분명한 핵가족의 삶 안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은 생소한 것이 되어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빚은 공감 부족의 세상 안에서 길가던 행인을 향해 자신의 울분을 쏟아붓는 ‘묻지마 살인’도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린 참 난감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와는 다른 시선이 감지되는 곳도 있어 세월호나 이태원 사건, 무안 항공기 폭발 사고가 터지자 많은 이들이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들의 고통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로 느끼는 이들이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이들의 존재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 어쩌면 우리 자신도 실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공감은 이렇게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희망을 열어줍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도 이런 공감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곧바로 “클레멘타인” 노래가 제 귀에 울려퍼졌습니다. 누가 설명해 줄 필요도 없이 이 노래 가사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의 아픔이 공명되게 해주는 애절한 내용과 그에 딱 어울리는 음율로 듣는 이의 마음 속으로 스며듭니다. 슬픔은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더욱이 순수한 사랑의 상실로 인한 사랑은 큰 상처도 입히지만, 그 상처를 받아들일 때 놀라운 치유를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세상이란 태초 이래 한 번도 없었건만 세상이 슬픔으로 무너진 적이 없고, 오히려 그 슬픔을 통해 새로운 것이 생겨남을 적지 않게 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이 노래 가사에 이어지는 장면 같지 않나요? 어두컴컴한 방 안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한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은 뭐라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태양 빛 환한 바닷가와 화사한 분홍빛 옷차림의 소녀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어둠이 가득 내린 집안은 좀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대비가 됩니다. 어부의 방인 듯한데, 오른쪽 창문에 걸쳐 걸린 그물이 마치 귀신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물은 보통, 집안이 아니라 집밖에 널어 말립니다. 그리고 창 바로 밑 도마 위에는 손질하다 만 생선이 머리가 잘린 채로 붉은 피를 머금고 있는 것이 섬뜩함보다는 왠지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 마치 그 아버지의 마음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침침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듯 묘하게 어울리게 창틀에 싱싱한 꽃들이 있는데, 이제는 아버지 곁에 없는 아이가 무척 좋아했던 꽃이리라는 짐작이 들지요. 이런 아버지를 아이가 한없는 그리움을 담아 창밖에서 찾고 있습니다. 아이가 있던 세상은 이 아버지에게 늘 저렇게 환한 세상이었겠지요. 그 환한 세상을 송두리째 앗겨버린 아버지의 애끓는 슬픔을 화가는 아버지의 그림자조차 그리지 않고도 절절하게 전달되게 만듭니다.

아버지의 슬픈 모습이 한 자락이라도 그림에 나왔다면 오히려 애끓는 슬픔은 그저 당연한 일로 그치고 말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그림 속 아버지의 슬픔은 세상 수많은 상실의 아픔 중 하나가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바로 우리의 슬픔이 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화가의 공감하는 마음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공감하는 능력은 세상을 살리는 힘임을 믿습니다.

칼 하인리히 블로흐 1834-1890, 어부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녀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10월의 말씀


생명 건네주기 – 생명 말리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남의 일인데도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올라 저 중년 남성의 정강이를 한 번 걷어차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일상 안에서도 종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일상의 삶이 참 만만치가 않습니다. 내 자신 하나도 추스르기 쉽지 않지만 남의 일이 되면 문제는 더 꼬이는데, 이 사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남의 일에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면에서는 이 말이 맞고, 남의 일에 내가 왜 부아가 치미느냐는 면에서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남의 약점, 꼬이거나 뒤틀린 면에 속이 뒤집히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로 속이 뒤집힐 때 그 사람 탓에 이리 속이 뒤집힌다는 사실이 마땅하고 옳은 듯 분통을 터트릴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이 사실을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짜증 나는 신사”가 이 그림 제목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짜증도 내야 할 때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우선 이 그림을 한 번 살펴봅시다. 열차 안에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검은 상복차림의 한 젊은 여인이 앉아있습니다. 누군지 알 수는 없으나 아주 가까운 관계의 사람을 잃고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는지 아니면 돌아오는 길임에 분명합니다. 검은 모자에 검은 장갑까지 정식으로 장례식 복장을 갖추었습니다. 그녀의 상실의 슬픔은 주위 시선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큼 큰 듯 하여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을 잃은 경우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염치 없는 중년 신사가 위로하는 척 여인의 뒤에서 선심을 보이지만 그림 속에서도 그 검은 속내가 훤히 보입니다. 슬픔이 줄줄 흘러 옆사람까지 적실듯한 여인을 두고 실실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남의 슬픔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인간의 잔인한 이기심,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 생활 안에서 이런 경우를 적잖게 마주칩니다.

남의 불행을 평소 품었던 원망을 갚을 기회로 보는 사람, 남의 기쁨에 배아픈 사람, 얌체족이라 불릴만한 여러 일들 즉 고생스런 상황이 뻔할 때 자신만 쏙 빠져나가길 밥먹듯 하는 이, 맛있는 것만 먼저 골라 먹는 사람, 사람의 밑바닥을 뒤집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남이 고생한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사람,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닌 척 하는 사람. 뭐 이런 일들이 놀라울 정도로 우리 일상 안에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좌절을 겪는 사람, 세상을 등지고 고립의 방에 박히는 사람, 세상을 향한 분노로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의 경우들을 생각해보면 어떤 인간관계에서는 서로에게 생명을 건네주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서로 생명을 말려버리는 그런 상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 인간 현실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타자로부터 생명을 받아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받은 생명을 또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타자에게 건네주며 생명은 흘러갑니다.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건네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생명을 서서히 말라가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미움, 질투, 분노, 원망, 모욕, 폭언, 중상 이런 것들은 상대를 서서히 말라가게 만듭니다.

위의 중년 신사는 자신도 모르는 새, 젊은 여인의 슬픔으로부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생명을 말라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 뻔뻔한 얼굴에 속이 뒤집히지 않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일 듯 합니다. 여인의 눈빛 속에는 슬픔과 함께 분노와 짜증이 가득 고여있습니다. 뒤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노인은 상황을 뻔히 다 아는 듯한 얼굴이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기도 뭣해서 그저 모르는 척하고 있으나, 아마도 속은 꽤나 부글거릴 것 같습니다.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일은 전쟁터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일상 안에 너무도 깊이 들어 와있습니다.

Berthold-Woltze 베르톨트 볼체, 짜증나는 신사, 1874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9월의 말씀


새길 앞에서

구에게나 비켜 갈 수 없는 삶의 한 자락쯤은 있게 마련인데, 이 그림은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 무엇도 어떤 이도 개입할 수 없을 듯 한껏 몸을 구부린 이 연로한 이는 아브라함이요, 내 삶의 그런 순간이 오롯이 겹쳐집니다. 자신의 존재를 훌쩍 넘어서는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는데 피할 수도 없는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그 앞에서 인간은 한없는 무력함 앞에 던져지지만, 그 누구의 힘도 전혀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전체를 다 뒤져도 세상적 인간적 방식으로는 해결할 도리가 없습니다. 샤갈은 그림 전체를 모래알로 그린 듯한 화법으로 이 상황을 이해시켜버립니다. 그림의 틀도 모래알이요, 아브라함과 물병과 지팡이 심지어 천사마저도 모래알 같은 점으로 그렸습니다. 이전까지의 세상은 그 앞에 그렇게 스르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라 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정착의 땅에서 경험해보지 않은 유랑의 삶으로 들어가야 하는 바로 그 순간을 샤갈이 포착한 것입니다. 성경보다 더 깊이 성경을 읽어내는 그의 깊음이 새삼 부러워지는 순간입니다. 느닷없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목소리 앞에 한없는 무력함을 느낄지언정 그의 몸짓에는 거부가 전혀 읽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온존재로 받아안기는 했는데, 자신에게는 한 발자욱도 그 길로 갈 수 있는 힘이 없음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천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미 온몸이 향하고 있고, 땅에 내려놓은 지팡이도 그쪽을 향합니다. 아브라함과 달리 천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힘있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갑작스런 하느님의 지시에 무력함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인간적 세상적 방식을 찾고자 동분서주하지 않으며, 앞으로 갈 길의 프로젝트 같은 것을 꾸미지도 않습니다. 그는 온몸을 웅크리고 내면 깊은 곳의 심연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그의 힘과 지혜와 생명과 사랑의 원천은 오직 그곳에만 있음을 그는 알기 때문이지요. 그의 길을 밝혀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내면의 목소리, 그의 힘과 생명과 사랑의 원천이자 마지막인 그 목소리에 닿는 일만이 그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의 힘과 지혜는 오직 여기서만 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신앙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생명은 이미 제단 위에 부어질 포도주로 바쳐졌습니다.”라고 한 사도 바오로가 떠오릅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한없는 무력함과 동시에 유일한 분께 대한 신뢰입니다. 무력함과 무기력함은 아주 다릅니다. 무기력함은 자신의 힘에 의지함에서 나오며 쉽게 절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무기력함만을 오래 경험한 이는 정신병적 상태로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전혀 가보지 않은 새길 그것도 위험과 도전이 있을 것이 너무도 뻔한 길을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무력함 앞에 저렇게 온전히 그분 목소리만 귀 기울이며 내면을 향할 수 있는 그 존재의 바탕은 참 부럽고도 부러운 것입니다. 이런 신뢰는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일의 성과나 사람들의 평판 여부에 삶이 좌지우지 되지 않습니다. 새길에 들어서면 그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모든 경력, 여정, 가문, 능력. 가까운 사람 등은 전부 무가 됩니다. 이것은 존재가 잊혀지는 일입니다. 삶이 온전히 무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자신이 가게 될 방향 앞에 놓인 예상되는 미래는 인간적 시선으로 볼 때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며 오히려 고난과 역경의 연속임에 틀림없지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과 가장 필요한 것과 현재 시급한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욕망이 우리 시선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모래알처럼 무너지는 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때입니다.

마르크 샤갈, 성경삽화 중 아브라함, 1931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8월의 말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다

그림 이전까지 풍경화는 미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이 그림 이후에야 풍경화는 미술의 한 분야가 된 것이지요. 여기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어떤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 그림의 매력 속으로, 8월 더위 그림의 그늘 속으로 한 번 들어가봅시다. 그 이전 플랑드르 화가들이 풍경화를 그리긴 했으나 그저 미술계의 저 밖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풍경은 그림의 뒷배경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존 컨스터블은 그림과 같은 시골의 풍경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의 그림 속 풍경들은 시골 어디서나 만날 것 같은 평범함과 정겨움을 담고 있습니다.

그 이전 플랑드르 화파에서 풍경화를 많이 그리긴 하였으나 어딘지 과장되고 기교가 잔뜩 들어간 그림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은 투박하고 자연스러우며 가식이 없어 보고 있으면 편안해집니다. 풍경화라면 소재가 되는 경치가 중요할 터인데 그는 그림의 소재로 특별한 명소를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향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나 사람의 마음을 끄는 점이 있는 곳을 소재로 택합니다. 그리고 그림 속에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등 그의 시선을 비켜가는 대상이 없을 정도로 그 장면에 나오는 모든 것에 깊은 애정을 담아 그러면서도 기교를 입히거나 과장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데 온힘을 쏟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가 습지의 축축함, 나무 그늘 아래 시원함이 보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그는 또한 한낮 시골의 적막함만으로 정지된 화면으로 끝내지 않고 강아지 한 마리를 통해 움직임을 끌어내며, 여기에 더해 그림 한복판에, 건초를 다 내려놓고 돌아가는 마차가 고요한 움직임을 빚어냅니다. 풍경 속 빈 마차 위 두 사람은 상당히 작게 그려져 있지만, 그 작음 속에서도 두 농부의 동작이 평화로움을 빚는데 한 역할을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 삼매경 속에 빠져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평범함 속 뛰어남”이라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것 하나 없이도 명화 그것도 그림 역사 속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나온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인 듯 합니다. 이런 평범함의 아름다움 속에는 그의 치밀한 과학적 연구가 한몫을 하는데, 컨스터블을 유명하게 한 구름 묘사에서 특히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합니다.

방금 말했듯이 구름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과 같습니다. 그는 영국 사람이요, 영국이라면 날씨 고약하기로 유명하지요. 푸르고 쨍한 하늘은 만나기 힘든 현상인 그런 나라에 살면서 그는 구름을 주인공으로 삼은 “구름 습작”을 많이 남겼고, 모든 그림에서 구름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각양각색의 구름이 등장합니다. 그는 구름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공부하였고, 마치 기상학자처럼 캔버스에 스케치한 날짜, 위치, 날씨, 자연광, 구름 상태 등을 기록했다고 하니, 그의 구름 그림은 단순히 경치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배경이 아니라 바로 그 날 풍경의 있는 그대로의 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마치 구름이 중심인 듯 오른쪽 화면 두둥실 떠오르는 뭉게구름과 뒤따라 오는 먹구름은 실제 구름인 양 입체적이고 선명하여 먹구름은 금방이라도 비를 몰고올 듯 생생합니다.

당시 유명화가였던 들라크루아는 이 무명화가 컨스터블의 건초마차 속 구름을 본 후 감명을 받아 “키오스의 섬의 학살”이라는 그의 그림의 배경을 바꾸었다 합니다. 이런 감명을 주는 그림을 그리기까지 그는 부유했던 부친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온갖 역경을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당시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풍경화는 촌스럽고 미완성작 같다는 혹평을 받았으며 여러 해 동안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였으나 그는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는 “현대 풍경화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의 그림 속 보이는 진실성은 그의 삶에도 그대로 묻어나 보는 이의 마음 속 고요한 평화를 빚어줍니다.

John Constable 건초마차 1821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7월의 말씀


삶의 층층에 쌓인 지혜

그림을 그린 크리스챤 세이볼트는 바로크 시대 독일 화가로, 현실 모습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게 이상화된 모습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유행이던 시대에, 있는 그대로 인물의 모습을 그린 시대를 앞서가는 초상화와 자화상을 주로 그렸습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지닌 어떤 힘은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의 마음 속으로 훅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진 시대인 예전 세상에서나 지금이나 사람이 늙어가면서 삶의 층층에 지혜가 쌓이고, 자신의 습성이나 약함은 뒤로 물릴 줄 알게 되어, 자신보다 주변을 감쌀 수 있는 그런 노인이 되는 일은 예전 문화에서든, 현대에서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노인의 지혜는 삶이 막힐 때 빛과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만, 요즈음은 참 찾기 어려운 진기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며 난관에 봉착했을 때 친부모보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지식과 달리 지혜는 머리 속에 집어넣어 양을 불리는 일이 아니며, 머리만이 아니라 몸속으로 들어가 쌓여 자신과 하나가 되고 그 사람의 인격이 되어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 노인의 지혜는 한 집안뿐 아니라 한 마을을 구하고 인도하기도 하는 등불이었지요.

눈빛의 총총함에 그대로 빠져들게 하는 그림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눈빛은 총명한 눈빛이 보통 보이는 도전적이거나 쌩한 느낌이 없고 모든 것을 수용할 너른 마음의 여지가 읽혀집니다. 주름살이 저리 고울 수도 있네요. 이탈리아의 어떤 배우는 분장사에게 자신의 주름을 보이지 않게 감추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며 이런 말을 했다지요. “주름은 내 평생 걸려 만든 것이니 감추지 마세요.” 이 그림 속 여인이 했을 법한 말입니다. 넓은 이마와 곧은 콧대, 다문 입술 이 세가지 요소가 합쳐지면 통상적으로 조금은 거친 모습이 나오기 쉬운데, 이 여인의 모습에서는 따뜻함이 절로 풍깁니다. 낯선 사람이 가더라도 따뜻한 스프 한 그릇은 어렵지 않게 내올 것 같은 인상이지요. 그럼에도 아무나 무시할 수 있는 그런 만만함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삶을 내어놓고 바치는 것과 삶과 생명을 허비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의 예전 어머니들 가운데 평생을 뼈 빠지게 고생하고도 자식들로부터 인정받기는커녕 무시당하고, 그 결과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허망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많이 보았지요. 그렇게 고생하고도 왜 그 결과는 이리 비참한 것인지요. 제가 보기에 이런 분들은 삶을 바친 것이 아니라, 허비한 결과로 보입니다. 삶을 허비하는 경우, 언젠가는 대가가 돌아오리라 헛된 희망을 품고 맹목적으로 자신의 삶을 타인 특히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자신 안에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남도 들어올 자리가 사실은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삶을 바치는 사람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올바른 길이기에 갑니다. 자신의 삶과 정열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합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내 꿈을 대신 채워 줄 대체물로 자녀들을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에게는 그 삶 자체가 이미 보상입니다. 자신 안에 자신의 자리가 있기에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내 자리를 마련해달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힘과 에너지만 내놓고 결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삶 그 자체가 자신에게 보상입니다.

이런 이에게는 삶의 질곡 구석구석 힘겨운 상황마다 그 헌신은 지혜로 차곡차곡 쌓이고, 그 지혜는 그 사람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자식이 주는 행복 이전에 자신이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지혜는 삶을 바라보는 그림과 같은 투명한 눈을 길러주어, 삶 그 자체로 타인에게 빛이 됩니다. 생명이 건너갑니다.

크리스챤 세이볼트 1695-1768 An old woman

(51779)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석곡로 378

E-mail : ocsokr@daum.net ☎ 055-222-3801 Fax 055-221-8961

엄률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6월의 말씀


생명, 싱싱함 & 폭력성

명력, 싱싱함, 폭력성이 구별할 수 없이 뒤섞여 아이들 장난 속에 펄떡거리는 그림입니다. 사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생명과 폭력성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기가 별 이유도 없이 사람을 깨물거나, 심지어 맛있게 빨아먹던 엄마의 젖을 물어버려 엄마가 비명을 지르게 하는 일도 있는 것을 보면 이 두 가지가 아주 딴판은 아닌가 봅니다.

19세기 말, 가난한 아이들의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다 해어진 옷에 신발조차 없이, 장난감 같은 것은 구경도 할 수 없는데도 자신들의 놀이 속에 푹 빠져있습니다. 장난감이 지천으로 널린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지만 옛날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만들고, 장난감도 자연이나 쓰다 버린 폐물에서 스스로 구해왔지요. 그래서인지 진지하다 못해 놀이와 현실이 구별할 수 없이 일체가 되어, 보는 사람도 그 놀이 속에 빠져들게 해줍니다. 장님 역할을 하는 아이를 살펴보면 두 아이보다 옷이 더 남루하여 윗옷은 거의 흘러내릴 지경이고 바지는 무릎이 훤히 다 보이는데도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다른 두 아이와 달리 머리를 제법 예쁘장하게 길렀습니다. 두 소년은 장님 역할을 하는 한 소년을 진심으로 골려주고 싶은 심정이 표정에 잔뜩 고여있습니다. 자신들보다 더 남루해도 평소 주눅 드는 일 없는 친구가 살짝 밉살스러웠을까요? 알 수는 없습니다만, 저렇듯 함께 놀고 있는 놀이 속에도 인간관계 역학은 멈추는 법이 없을 뿐 아니라, 놀이 속에서 더 리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아이들의 놀이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타인을 대면하고, 그에 대처하는 법까지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그 역학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느냐고요? 장님 놀이를 하는데 두 녀석이 함께 의자 있는 쪽으로 장님 역의 친구를 끌어들입니다. 이 놀이는 자신을 유혹하는 친구들의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잡으면 역할을 바꾸게 되는데, 제법 넓어보이는 창고에서 하필이면 걸려넘어져 다칠 수도 있는 의자 쪽에서 장님을 유도합니다. 약간 고의성이 보이지요. 골려주고 싶은 마음, 약올려주고 싶은 꼬인 마음이 폭력성을 띠는 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어쩌면 생명력이 펄펄 뛰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요소들도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가 봅니다.

인간성 안에는 누구나 잘 알고 경험하듯이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다 함께 엮이고 풀리고 하면서 삶을 영위해갑니다. 가족 안에서조차 우리는 부정적인 경험을 하면서 그에 대처하는 방법도 배우는 것이지요. 점잖아야 할 어른들은 체면 차리다 오히려 체면 구기거나, 상대의 폭력성에 속절없이 당하고는 더 폭력적인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엮여 본 적이 없는 탓에 상대의 행동이 도저히 납득이 안되고 그러다 보니 쉽사리 상대를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기 쉽습니다. 현실 안에서 많은 일들은 우리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역동성은 영이 단순한 어린이 시절에는 몸으로 뒹굴며 자연스럽게 체득합니다. 삐지고 뾰루퉁해지고 약올리고 속이고 쥐어박고 발로 차기도 하고 이 모든 폭력성이 배인 행동과 말들이 자신과 친구에게 미치는 영향을 싱싱한 생명력으로 건강하게 배워갑니다. 무시도 당하고 무시도 해보고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을 준비는 어린 시절에 이미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놀이인 장난을 대신하여 이 시대 어린이들은 비싼 장난감만 상대합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같이 장님 놀이할 친구가 없습니다. 친구와 놀 시간 따위는 엄마가 짠 프로그램 속에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생명력은 또래 친구들을 만나 경쟁하고 아끼고 놀려주기도 하며 쑥쑥 자라 건강한 어른이 되어갑니다.

Guiseppe Constantini 장님 놀이 1890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5월의 말씀


죽음이 빚어낸 환함

이와 비슷한 그림은 이전 시대 작품에서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그림은 우리 시대 인터넷 속의 세상을 엿보게 해주는데, 놀랍게도 1866년에 그려졌습니다. 인터넷이 있든 없든 옛날이든 오늘이든 사람의 심리에는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림을 한 번 따라가 봅시다. “오스테리아”라는 당시 노동자와 서민들이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던 식당에 젊은이 3명이 모여 식사를 하던 중에 마치 누군가 사진이라도 찍어주는 듯, 아니면 이들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세 명의 시선이 같은 듯 묘하게 다른 이 상황극 같은 모습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렇다고 굉장한 싸움이 벌어지기 전 극한 긴장의 상태도 아닙니다. 일상에서 일어난 살짝 비틀린 모습이라고 할까요. 여기에 고양이까지 시선의 한몫을 보탭니다.

빨간 윗옷에 흰 수건을 쓴 제일 앞 소녀는 웃고 있는데도 왠지 서늘한 시선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를 치켜든 모습 역시 이 소녀의 심리의 한 면을 보여주는데, 어딘지 모르게 공격성으로 가득합니다. 아니 어쩌면 과시하고 있는 것일까요. 빨간색 역시 도발적인 면을 느끼게 하는 색깔인데, 빨간 옷에 어울리는 산호 빛깔 목걸이까지 성장을 하고 나선 그녀의 속마음이 살짝 궁금해집니다. 옆자리 노란스카프 여인의 시선은 더 의미심장하며 사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잘 알 수 없어, 다른 두 명의 시선과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옆눈질로 자기 친구를 의식하는 듯 하지 않나요? 웃음조차 노골적인 비웃음에 가깝습니다. 마치 “네 속을 내가 모를까봐?” 이런 느낌이 잔뜩 묻어나옵니다. 젊은 남자의 시선은 두 여인과 달리 묘한 빛은 없고 불쾌함을 가득 품었습니다. “너 여기 왜 왔니?”라고 묻고 싶은가봅니다. 심지어 고양이의 시선은 더 오묘합니다. 원래 고양이의 행동거지가 강아지와 달리 예측불가한 면이 많아 문학이나 예술에서 어떤 신비롭거나 의심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지요. 하필 고양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에서 이들 뒤에 자리를 잡고 떠날 생각도 없이 이들의 모든 시선을 다 모은 오묘함을 품고 다소곳이 앉아있습니다.

이 그림 속에는 또 이 젊은이들과는 대조적인, 자신들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는 신사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도 있습니다. 아쉽지만 여기서는 지면의 한계로 이 부분은 다루지 못합니다. 세 젊은이들의 시선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관찰당하는 입장에서 다시 그 관찰자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누군가 스쳐지나가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노골적이면서도 피하는 듯 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을 화가는 그림으로 잡아내었습니다. 이 관찰에는 보이지 않지만 서로를 향한 자기식의 평가나 익명의 적의가 화살처럼 양방향으로 쌩쌩 날아다니고 있어, 우리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됩니다. 단지 이 시대는 그것을 일반화할 수단이 없었기에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 시대는 익명성이라는 특징을 지닌 인터넷 매체를 만나면서 온세상을 장악하는 문화가 되어버렸고, 그 피해 앞에서 희생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갑니다. 높은 평가를 받는 표지인 팔로워 숫자를 늘이기 위해 못하는 일이 없어진 잔혹한 세상에 살면서도 사실 깊숙한 곳에는 어떤 평가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줄 그런 시선을 애타게 바라는 갈망이 숨어있습니다. 성경 창세기는 이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전해주는데, 인간이 하느님과 멀어지기 전 인간은 알몸임에도 어떤 수치심도 없이 서로를 평화롭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존재의 원천으로부터 멀어지자 하느님을 피해 숨고, 서로 알몸이 부끄러워 옷을 입습니다. 하느님을 심판자로 이웃은 평가자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가 자신의 깊은 갈망을 발견할 날이 오리라는 희망은 결코 놓을 수 없는 이유지요. 서로 바라봄은 비난, 경멸, 적의가 아니라 사랑의 시선인 것입니다.

Iwan Aivazovsky 아홉 번째 파도 1850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4월의 말씀


죽음이 빚어낸 환함

흐의 이 그림이 언제 그려진 것인지 알면 아마도 조금은 놀랄 것입니다. 고흐의 그 드라마틱한 삶의 어느 순간에 이 그림을 그렸을지 한 번 상상해보는 것은 이 그림뿐만 아니라, 고흐의 삶 자체를 이해하는데 열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정말 신비로운 수수께끼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흐에 대한 평가는 어떤 화가보다도 각양각색입니다. 아마도 저는 종교적 관점이라는 사실을 빼고서는 고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입장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종교, 예수, 신비라는 말과 상관없는 세상의 흐름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젊은 시절 런던과 파리에서 잠시 미술품 판매업에 종사했는데, 그는 그 도시의 우아함과 회려함에 조금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선교사로서 그의 삶이 그의 뜻과는 반대로 강제로 종료하게 된 바로 직후였습니다. 가난한 탄광촌에서 시작한 선교사의 삶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독특했지요. 온전한 헌신이라는 말이 그 말의 뜻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지요. 그들과 같은 음식, 같은 주거환경에서 살며 “감자먹는 사람들” 속 가난과 일체가 되어 석탄가루 까맣게 뒤집어쓰고 창백하게 시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선교사로 받은 급여를 아낌없이 쏟아붓고, 자신을 위해서는 생계에 필요한 거의 최소한의 지출만으로 살아갔습니다. 그의 내면은 고통과 함께 깊이 예수의 모습이 새겨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바라본 예수는 사실 그의 그림의 핵심을 이루고 있고, 이 사실을 빼고는 그의 그림을 참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맥락에서만 “까마귀 나는 밀밭”에서 까마귀가 죽음과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징을 뒤엎고 결실 가득한 황금빛 밀밭과 함께 활짝 열린 길로 그의 정신이 열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의 모든 그림들은 종교, 예수, 복음, 생명, 희망을 집어넣으면 갑자기 새로운 빛을 띠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매료되면서도 그를 “불행한 삶의 끝에 정신병”으로 자살한 사람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려 하며 그의 그림들을 그런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에게 정신병적 현상이 없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는 그런 면이 분명했지만, 그 병조차 덮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빛이 있고, 그 빛은 다행히도 그가 자신의 동생에게 쓴 편지들에서 아주 선명히 드러납니다. 그의 작품들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보게 한 그의 동생의 부인 요안나 봉허는 고흐가 처음 자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한 “그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 같지 않고 아주 건전해보였다.”는 증언도 참 중요합니다.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봤던 요안나는 그의 사람됨도 놓치지 않았고, 자기 남편과 형인 고흐의 사망 후 자신의 온 생을 바쳐 자신의 남편이 아낌없이 지원했던 고흐의 그림의 가치를 알리는데 헌신합니다.

그는 평범한 우리들이 생각하는 모든 생각의 틀에 도저히 가두어 넣을 수 없는 그런 신비에 빠져 그 신비의 늪에서 살았던 사람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그의 그림의 색채입니다. 그의 노란색과 파란색은 색깔 자체로 어떤 말을 걸어옵니다. 그의 그림의 어떤 색에서든 희망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오직 좌절만이 몫인 그의 삶은 점점 그 신비와 하나 되어가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갔고, 결국에는 스스로 태양을 향해 뛰어들어 그 태양에 활활 타올라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참 놀라운 것은 분명한 그의 정신병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정신병 앓는 모든 이들에게 보이는 인격파괴나 판단력 무너짐이 없었다는 것이며, 사실 정신병원에도 스스로 판단하여 입원하였지요. 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그는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신비 속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운명 지워진 사람 같았다고 느낍니다. 그의 삶에는 성공이란 단어는 마치 외계 언어 같습니다. 그리 헌신했던 보리나주에서의 선교사의 삶이나 예술가로서의 삶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처참함 속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과 예수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그 죽음에서만 솟아나는 희망의 온몸 찢어지는 역동성의 흔들림 속에 있었습니다. 이 환한 보랏빛을 보십시오. 이 그림은 셍 레미 정신병원에서 안 정원에 피어있던 아이리스를 그린 것입니다. 유럽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보라색은 검은색과 함께 예수의 죽음과 고난, 금욕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또 상식을 뒤엎습니다. 보라색을 저토록 환하게, 꽃들은 살아있어 말을 거는 듯합니다. 꽃들만이 아니라 흙도 살아 움직입니다. 고통이 운명인 듯한 사람이 이런 환한 보라색을 빚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생의 마지막 어떤 희망도 모래알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한 이가 빚은 이 빛나는 보라색을 그저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고통이 빚어낸 생명의 빛의 환함이라고…. 그는 자신의 열매를 맛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열매를 맛보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이리스 1889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3월의 말씀


아버지의 자리

렇듯 연민 가득한 슬픔, 이렇듯 따뜻한 슬픔! 이런 눈빛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광부 화가로 유명한 황재형 화백의 대표작입니다. 막장이라 불리는 지하 땅굴에서 시커먼 석탄가루 마시며 실제로 광부 일을 했습니다. 그 막장에서 화백이 만난 얼굴입니다.

막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험악한 환경, 캄캄한 지하 동굴에서 탄가루가 덮혀 시커메진 밥을 땀과 함께 먹어야 하고, 들이쉬는 한 호흡마다 폐를 채우는 검은 가루로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몸으로도 가족의 생계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는 서글픔, 이 모든 것보다 더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갱도 사고의 위험은 늘 광부를 무겁게 짓누르는 바윗덩이지요. 이런 막장 속 삶을 살아내는 데도 가족 건사,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진저리나는 가난. 이중 단 하나만이라도 몸서리칠 인생이거늘 저 무게를 다 견디면서도 사랑을 잃기는커녕 온존재가 연민이 되어버린 사람의 눈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일반화시키는 위험을 무릎쓰며 이야기 해보자면, 대체로 가난한 이들은 오지랖이 넓습니다. 내가 가난해보니, 내가 힘들어보니 남의 사정도 쉽게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고나 할까요. 내 집, 내 재산, 내 사람 지킬 것 많은 이들은 남의 아픔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요. 내 코도 석자긴 하지만 갱도에 묻혀 스러져간 수많은 동료들, 검은 석탄 가루 마시고 온몸 만신창이 되어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웃들, 여기저기 몸을 다치고도 위험한 갱도의 온몸을 짓누르는 노동을 그만 두지 못하는 사연 많은 동료들, 그 가족들의 한 많은 사연들이 강건너 불이 아니라 마치 내 일처럼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캄캄한 갱도에서 밥을 먹자면 내 이마에 불은 내 밥을 비춰주지 못해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며 밥을 먹는 모습을 그린 이 화백의 그림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어울릴는지 모르겠지만 천국의 지상 버전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저는 이 화백이 살고 있는 황지에서 어린 시절 약 3년간 살았던 적이 있는데, 저희 아버지는 광부가 아니었기에 직접 그 처절함을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거칠지만 소박하고 마음 따뜻했던 이웃들, 저희 집에 쌀을 빌리곤 갚을 길 없어 봄에 산나물을 뜯어다 주거나 그 고소한 옥수수를 한 자루씩 들고 오던 아주머니들은 제 뇌리에 참 진득하게 박혀있습니다. 탄광이 없는 ‘절골’이란 곳의 그 맑은 개울물과 탄광촌이 이어지던 통리의 시커먼 천줄기 같던 계곡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생채기가 되어 50년이 넘은 지금도 제 안에 생생히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선 남 탓 세상 탓하지 않고, 자기연민이 없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 억울함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탓하지 않되 그 어려움의 원인을 정확히 봅니다. 돈과 권력을 쥔 이들의 힘에 속수무책 당하면서도 그들의 논리, 돈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강원도 산골처럼 건강하고 신선한 어떤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썩어도 이 푸름이 완전히 사라진 시대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움츠러들었던 마음 한구석이 살며시 펴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 아름다운 슬픔이 사람을 치유하고 구한다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위의 예수님에게서 생생히 봅니다. 이 십자가 위 연민과 슬픔 고통이 이 그림 속 아버지의 눈 속에서 읽혀집니다. 석탄 가루에 찌든 검고 주름 가득한 모습도 그 연민의 빛을 덮어 누르지 못합니다. 곧게 선 콧대와 닫힌 입술, 선명한 이마 주름에도 험상궂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눈빛 때문이겠지요. 제목 그대로 아버지의 자리를 꿋꿋이 살아내 온 이 시대의 아버지입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니”라는 예수님의 진복 선언이 영 어렵지만은 않게 느껴지는 행복을 잠시나마 누립니다.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2월의 말씀


비움의 무거움과 아름다움

우는 일의 무거움은 도전해본 사람은 잘 압니다. 비웠다 싶으면 슬며시 기어 나오고, 숨바꼭질하는 아이처럼 놀래키며 튀어나오기도 하고, 거의 되었나 싶었는데 원상태인 것 같고, 한숨도 참 많이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비우는 작업 자체가 성과 불문,아름답습니다. 비우고자 하는 애씀은 자신은 안타깝지만 보는 이에게는 입가에 미소가 머물게 하지요. 비우고자 하는 마음 하나 먹는 일도 사실은 인생 꽤나 걸리는 일이지 않습니까. 평생 당신 뜻대로, 마치 온 가족이 기계 속 나사 같은 부품처럼 착착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저희 아버지가 말년에 회심을 하고서는, 어느 날 수도원을 찾아와 “내가 ‘마음 바꾸기 작업’을 하는데 너희 엄마가 만고에 도움이 안된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던 기억이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은 지금에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합니다. 엄마로서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을 것이고, 그래 봤자 얼마 가겠나라는 생각도 들었겠지만, 한 성질하시는 저희 아버지는 그 성질 덕분인지 그 마음 운동을 끝까지 밀고가셨고, 돌아가신 뒤 영정사진을 본 친구들은 “너희 아버지 성형수술 하셨냐?”고 물을 정도로 모습마저 변하였지요. 평생 얼음칼 같던 그 성정으로 우리들에게 상처 꽤나 남기셨지만 그 모든 것을 갚고도 남을 큰 선물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결국 그것은 비움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비움은 왜 그리 어려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움은 살아있으면서 자신을 작은 죽음에 넘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을 견뎌야 하고, 빼앗고자 하는 이에게 자신의 것을 넘겨주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도 다른 이를 도와주어야 할 때 더욱이 그 일이 자신의 일보다 하찮은 일로 보일 때, 갑작스런 불치병 통보를 받을 때,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할 때 이것은 일종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없는 생명은 없습니다. 위의 모든 일들은 당하지 않으려 발버둥 칠수록 올가미처럼 자신을 더 칭칭 옭아맵니다.

어쩌면 이 해답 없는 난관 앞에서만 비움만이 인생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자유도 비움에서만 시작될 수 있으니, 자유를 찾고자 온 세상을 헤맬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이런 역경 안에서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비운 후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예술 작품인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많은 것을 비우고 남길 것만 남긴 예술 작품이 아름답기가 쉽지 않습니다. 뭔가 시원하긴 한데 어딘지 아쉽고 한 자리가 빈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쉽습니다. 비워내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기술적 구성미나, 평생 갈고 닦은 솜씨도 있어야 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비움에 담긴, 비우고 비워 그래도 남은 그 무엇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술가 자신의 삶이요, 그 삶을 채운 어떤 정신이나 철학이요, 그 채워준 것마저 비우고 비워 남은 것, 자신을 훌쩍 뛰어넘는 그 무엇입니다.

이 묵상을 하게 해준 이창림 교수의 조각은 비움으로 작품이 된 드문 경우입니다. 비우니 방이 생기고 비우니 성모님이 나타나고, 성모님마저 비우니 아기예수님이 나타납니다. 어떤 모습도, 표정도 없으나 성모님과 아기예수님, 십자가의 철두철미한 비움이 거기 나타납니다. 심지어 무덤 동굴도 나타납니다. 그 무덤 동굴은 썩는 냄새 쾨쾨하고 음침한 동굴이 아니라, 삶의 향기와 아름다움, 단순함이 공기로 채워진 들어가고 싶은 곳입니다. 기꺼운 죽음에는 모두 이 비슷한 향기가 나고, 온 존재로 행해진 비움에는 이런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비우고 남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끝없이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이 지상의 유일한 존재이니, 자신을 넘어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그 복됨. 인간만이 지닌 이 복됨을 포기할 수야 없지요.

이창림, 비움의 아름다움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