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7월의 말씀


아이의 눈, 아이의 마음

소년이 상처 입은 천사를 들것에 태워 가는 장면. 핀란드 화가 휴고 심베르그가 1903년 무슨 뜻을 품고 이 그림을 그렸든, 이 단순한 그림만큼 이 시대를 잘 묘사해 주는 그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기괴한 종말론적 모습도 죽음과 절망을 감지하게 하는 상징도 없습니다. 천사는 다친 눈에 붕대를 감고 날개가 살짝 꺾이고 피가 얼핏 보이긴 해도 하얗고 순수한 모습을 잃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몸의 크기로나 얼굴 모습으로나 어른이 아닌 그림 속 아이들과 같은 연령대(?)임을 짐작케 하며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지만 들것 위에 몸을 유지할 정도의 기력은 남은 것 같습니다. 소년 두 명이 더 할 수 없이 화난 표정으로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기력함에 절망이 깃든 표정으로 천사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이 그림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년들이 알고 있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보는 사람들 각자에게 돌려지고 있지요. 무슨 일이 일어났든 어른들은 이 천사를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특히 뒤쪽 소년의 원망 가득 담긴 눈길은 그림을 보는 이를 향하는 듯 가슴 서늘하게 만듭니다. 앞의 소년은 검은 상복 같은 옷차림에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그저 앞을 향해 발을 내디디고 있습니다. 누구도 기댈 곳 없는 소년들의 막막함이 그림을 뚫고 전해져 그저 가슴이 먹먹해질 뿐입니다. 원망과 울분 가득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자신들의 이웃이 되어줄 것 같지 않은 상황에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우리 모두는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는 이 사건의 공범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사와 두 소년이 지나가고 있는 그림 속 장소는 헬싱키 근처 툴루 만에 있는 한 공원입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즐겨 찾던 공원으로 많은 자선 단체가 공원 안에 소재하고 있었다 하는데, 소년들은 공원 내에 있는 한 보호 단체로 이 천사를 데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이 공원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지만 그림 속 공원은 강너머 잿빛 산과 잿빛 강물이 우울하게 흐르고 하늘도 비슷한 색깔로 덮여 있습니다. 갈색 대지 위에는 관목 한 그루와 푸른 잎도 없이 덩그렇게 핀 꽃송이들만 용케도 살아남았다는 안스런 느낌이 들게 합니다. 갈색 대지와 같은 빛을 띤 아이들의 얼굴에도 생명감은 없어 보입니다. 화가의 조국인 핀란드는 북구 쪽 사람들의 고유한 흰 피부색이 특히 두드러지는 지역임을 고려한다면 아이들의 얼굴빛은 화가가 상당히 강조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살벌한 현장에 오늘 우리 시대를 대입시키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 싶으나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그 묵시록적 상황은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이 상황에서 피해입은 이도 어린 천사요,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무력한 힘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이도 아이들이라는 점은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점입니다.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도 떠오르지요. 자신의 이익이 앞서 분명한 세상의 모순 앞에서도 옳은 것과 틀린 것조차 헷갈리게 되어버린 어른들, 더 지독하게는 무엇이 옳은지 분명히 알면서도 사람의 생명도 우리 동료인 동물과 식물 그리고 지구 자체도 위험에 빠지는 일을 정의인 양 앞세우는 양심이 틀어져버린 어른들. 그 어른들 앞에서 어린 아이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저 아이들마냥 무기력합니다. 이 그림은 그 무기력함을 너무도 생생하게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그러나 정말 다행하게도 이 그림은 짙은 우울함의 고발성만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바로 천사의 손에 들린 꽃은 설강화 혹은 눈풀꽃으로, 꽃말은 치유 재생입니다. 어린 소년들과 어린 천사 자체가 희망임을 말하고 싶은 것 아닐까요. 아무리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도 우리 안에는 세상의 이익에만 따라가지 않고 옳은 것을 볼 줄 아는 아이의 눈, 아이의 마음이 있습니다.

Hugo Simberg 상처입은 천사 1903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6월의 말씀


지금까지 알아온 예수 ? – 새롭게 발견하는 예수 ?

금에야 가장 인기 있는 미술작품이 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한 점에 수십, 수백억을 호가하지만, 이들이 막 태동하던 시기에는 그림을 사실적이고 실제처럼 그릴수록 평가받는 것이 흐름이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작품은 그림그리기에 서툰 화가들의 졸작으로 평가절하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결코 좌절을 몰랐던 인상파라 불리는 화가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런 시대의 흐름을 아주 건너 뛰어버립니다.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이 “피리 부는 소년”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새로운 빛을 띠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물론 당대에는 졸작으로 여겨져 “살롱 드 파리”라는 미술전에서 낙선하는데, 에밀 졸라가 이에 격분했다고도 합니다. 그의 그림에는 입체감, 원근감이 없고 바닥과 벽의 구별도 없이 마치 평면 위에 소년을 오려 붙여 놓은 것 같습니다. 이런 평가는 당시 유행의 관점이라는 틀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시선으로 보았을 때이고, 그 고정관념에 묶이지 않는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오히려 복잡한 배경이나 원근감을 없애니 소년의 매력이 흠씬 풍깁니다. 배경색은 무덤덤한 회색으로 소년의 매력을 누르지 않도록 신중하게 고른 듯 합니다.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바지와 윗도리의 색상이 소년다운 생명력을 북돋워 주며, 인상파 화가답게 빛을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여 얼굴과 연주하는 손과 피리에만 환한 빛을 비추고 살짝 그림자를 줍니다. 그리하여 소년의 손이 날렵하게 곡을 연주하는 움직임을 빚어내지요. 이 소년의 복장은 프랑스 근위대의 것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단추와 어깨를 감싸며 흐르는 흰색 장식 천과 화려한 모자는 근위대의 위엄을 보여주나 얼굴은 앳된 소년의 순수함과 긴장감이 감돌아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날렵한 손놀림으로 감지되는 근위대로서 자부할 만한 실력과 화폭을 건너오는 소년의 눈빛에서 오는 긴장된 청순함이 묘하게 어울려 화폭에서 소년의 피리 소리가 들려올 듯 합니다.

독창성이란 어떤 신기하고 기발한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라기보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어떤 존재의 매력에 자신이 먼저 푹 빠지는 것이 전제가 됨을 봅니다. 그리고 기존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매력을 전달하고자 하는 혼신의 노력이 어떤 새로운 길을 찾아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 그림을 당시의 흐름대로 배경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그리고 소년은 원근법과 입체감을 멋지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렸다면 그저 멋진 그림 하나로 끝났을 것입니다. 소년의 푸른 긴장감과 그와 대조되는 숙련된 손놀림이 빚어내는 음악적 분위기는 결코 전달되지 못했으리라는 짐작이 들고도 남습니다.

고정관념대로 흘러가는 삶은 안전할지 모르나 지금 자신에게 다가온 세상과 그 새로움에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용기는 짓눌려 터져나오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주류를 따름으로 인해 얻는 이익을 과감하게 포기할 푸른 눈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세상의 편견과 세상이 주는 이익보다 더 큰 무엇을 볼 눈이 있기에 그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눈은 일상의 눈과는 다른 푸른 눈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저 지금까지 알아온 그대로 예수는 어쩌면 내가 지어낸 예수일 수 있습니다. 푸른 눈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예수, 나의 고정된 생각 속의 예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예수는 일상의 눈이 아닌 다른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예수는 물론이고 자신마저 어떤 틀 속에 쑤셔 박아 넣어 무엇이든 똑같이 만들어 내는 이상한 요술상자와도 같습니다. 요술은 요술인 만큼 실제가 아니기에 언젠가는 제 모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일상의 안일함은 나를 지켜줄 보호막이기보다 새로움을 가리는 차단막에 더 가깝습니다. 예수를 만날 새로운 눈 지닐 준비 되셨나요?

에두아르 마네 피리부는 소년 1866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5월의 말씀


모든 새로운 길은 십자가의 길을 품고 있다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파울라 모더존이라는 화가의 그림으로 저렇게 단순한 붓질로 내면의 생생한 생동감을 전해주는데 이끌렸습니다. 자신의 누드를 그린 최초의 여성화가인데, 귀엽게 그린 꽃 두 송이도 입을 벌려 노래라도 할 듯 생동감이 넘칩니다. 처음 이 그림을 만났을 때 현존하는 이 시대 화가의 그림이려니 생각이 들었는데, 그녀가 인상파 화가들과 동시대 사람인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고 그래서 더 끌렸습니다. 초기에는 독창적인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다 네 번의 파리 방문 동안 세잔, 고갱, 고흐의 영향을 받으며 더욱 단순하고 과감하며 색감이 선명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어디에도 여성을 학생으로 받아주는 아카데미는 없었고 사설 학원이나 유명한 화가에게 사사를 받는 것 외에는 미술을 공부할 수 있는 길조차 없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화가로서의 삶의 여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후에 자신의 남편이 될 오토 모더존을 만난 보르프스베데 예술가 공동체 화가들도 당시의 흐름대로 사실적인 풍경화가 주를 이루었고, 그녀의 이 시대를 앞서는 그림은 화가 마을인 이곳에서도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이 마을에서 다른 여성화가들과 함께 생애 최초로 작은 전시회를 열었지만, 지역 비평가들은 그녀들의 작품이 습작이거나 아직 덜 배운 화가의 그림이라는 모욕적인 평을 합니다.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그녀의 부모들도 이를 계기로 그림을 그만 두기를 권고했으나 이런 일로도 그녀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 오토 모더존만은 그녀의 재능과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이를 계기로 이들의 사랑이 이어지게 되는데, 그는 아내인 파울라에 대해 묘한 여러 겹의 감정을 지녔던 듯 합니다. 동료 화가로서 자신보다 앞서가는 그녀에 대한 질투 섞인 선망, 남편으로서 아내 역할에 대한 기대, 자존감이 높고 개성이 뚜렷한 그녀에 대한 매력과 이해하고자 하는 아량 등 이들의 부부생활은 통상적인 가정의 틀을 넘어서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결혼하면 아이 키우고 가사 일을 도맡는 당시의 여성들과 그녀는 달라도 한참 달랐고, 남편이 된 오토는 그녀의 이런 면을 알면서도 가정에서의 아내의 빈자리를 늘 허전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예술의 길에 심한 목마름을 느낀 파울라는 이혼까지 생각하며 마지막 네 번째 파리여행을 택합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갈등의 고비를 넘어서며 그녀 역시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와 아기가 생김으로 빚어질 여성으로서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하는 갈등을 경험하면서도 파리에서 재회한 남편과 화해하며, 임신하고 딸을 낳는데, 딸과 새로운 생명에의 무한한 기쁨이 그녀를 감싸는 순간, 안타깝게도 출산 후유증인 색전증으로 31세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안타깝다.”였다고 하는데, 그녀의 일생을 생각하면 참 가슴아린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고, 남기고 갈 작은 딸에 대한 아픔도 컸으며, 가족조차 이해해주지 못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화가의 길에서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눈뜨게 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미완의 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대가 감당하기엔 너무 앞서가는 젊은 여성화가의 삶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한계 있는 인간의 시각이요, 그녀의 작품은 사후 새로운 조명을 받으며 독일 표현주의의 길을 열고, 프리다 칼로 등 현대 여성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말은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두려움과 수없이 마주하는 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롭기에 누구로부터 도움받는 일도 쉽지 않고, 자신 역시 막막할 뿐인데 주위로부터는 이해보다는 비난과 멸시의 눈길을 받기 일쑤입니다. 이 새로운 길을 끝까지 갈 때 하나의 새로운 길이 생겨나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됨을 봅니다. 모든 새로운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품고 있습니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 꽃을 든 자화상 1907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4월의 말씀


부활의 얼굴 그리움의 얼굴

“이

얼굴은 부활의 얼굴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저를 고요히 한 방 치며 들어온 소리입니다. 저의 신앙의 여정 안에서 부활의 얼굴은 참 그리운 바로 그만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림에서도 사진에서도 실물 인간에게서도 만날 수 없었지요. 그리고 물론 저 자신 안에서도 …. 가장 종교적인 그림이라는 이콘에서조차 저는 부활의 얼굴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부활의 얼굴이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곤 했지요. 하지만 부활은 죽어서 저 세상에서나 맞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리스도교 신학은 분명히 말하는 것을 보면, 아직 내 안에 부활이 오지 않았으려니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이 얼굴을 그린 야블렌스키라는 화가는 “얼굴” 연작을 900점 넘게 그렸다 합니다. 그는 자신이 그린 수많은 얼굴 속에서 어느 날 부활과 같은 체험을 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사실 꼼꼼히 따져보면 구체적인 얼굴 표정도 없고 형태도 분명치 않습니다. 이 얼굴에는 오히려 여백이 대부분이고 경계는 흐릿하며 색상 비율도 환한 색이 보라색이나 회색 쪽보다 살짝 많은 정도이며, 입꼬리도 웃고 있는 형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런 분석 없이 마주친 첫 느낌은 환함이었지요. 해변가의 쨍한 햇살 같은 환함이 아니라 살짝 어두운 숲속 오솔길에서 느닷없이 만난 환함이었습니다.

사각형의 세 모퉁이에는 회색에 가까운 보라색이 반씩 테두리를 채우고 있고 머리 혹은 눈 가까운 부근 선들에도 회색이나 검정에 가까운 색들이 내려 앉아 있습니다. 입술을 감싸며 왼쪽으로 뻗은 하늘색 빛도 있고요. 이런 숫자 세기를 멈추고 그저 멍하니 그림 앞에 서면 나를 고요히 통과할 듯한 투명함과 따뜻함이 번져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수많은 얼굴과 그 표정들 속에는 우리가 놓치지 않는다면 이런 환함, 이런 투명함이 어느 순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말없이 전해준 생명의 푸름과 따뜻함이 제게 위로라는 차원을 넘어 생명을 더해주었던 일도 기억이 났지요. 얼굴을 900점이나 그린 야블렌스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 그 그리움에 인간은 고독함으로 내달려 병을 얻기도 하고, 고독함에 짓눌리다 오히려 그것을 뚫고 어떤 예술성에 도달하기도 하고, 고독함과 고독함이 만나 함께 어우러져 사는 대동 세상을 만들고자 서툰 몸짓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원숙한 사람도 이 고독함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고독함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 호수처럼 내려앉아 우리를 그쪽으로 부르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호숫가에서 우리는 설핏 그 그리운 얼굴을 보기도 합니다. 그 호수의 적막함, 스산함을 없애고자 몸부림치던 그 시간도 지나고, 호수에 설렁대는 바람에 폭풍우치는 밤도 지나고, 호수의 고요함 혹은 그저 호수인 그 앞에서 만나는 한 얼굴, 야블렌스키의 900점의 작품보다 더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 인생길에서 이런 얼굴 한 번 만나는 일은 얼마나 큰 복인지요.

군중과 지도자들과 심지어 제자들마저 자신의 얼굴을 각각 제멋대로 오해하는 그 길을 걸어, 배신과 심판의 순간을 거쳐 십자가 처형과 묻힘을 겪은 후, 다시 제자들 앞에 선 그 얼굴, 그 얼굴을 어떻게 그릴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막달라 마리아처럼 수많은 얼굴이 스치고 간 그 길에서 야블렌스키가 만난 이 얼굴 앞에서 설핏 그 그리운 얼굴을 봅니다. 어쩌면 다음 순간 이 얼굴은 부활의 얼굴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지만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평생 그 얼굴을 찾아 다시 지금의 자리를 떠나는 지상의 순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부활의 얼굴은 고정된 얼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움이 사라진 그 폐허의 황량함이 아무리 기름진 들판일지라도 그곳은 이미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지 못할 땅일 테지요.

알렉세이 야블렌스키, 핑크 심포니, 1855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3월의 말씀


수난의 강이 흘러 닿는 자리

월용 작가의 그림 “어머니”입니다. 그림이 풍기는 아우라에 압도되어 한참 동안 시선이 못박힌 채 머물렀지요. 처음 들어보는 화가라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이런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의 삶이 러시아 눈 덮힌 벌판처럼 망망하게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분단, 전쟁, 이념대립, 공산주의, 혁명, 세계 대전, 냉전을 꿰뚫는 삶을 통과했습니다. 그의 개인의 삶을 보면 조부 대에 연해주로 건너가 러시아에서 살았는데 그는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행방불명이었고 어머니가 온 살림을 도맡으며 조부는 호랑이 사냥을 하여 가족을 건사했습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마을이 필요하더더니 그가 바로 이런 경우로, 어머니의 헌신적 희생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그림 재능을 알아본 마을 사람들이 도움을 주어 그는 레핀 미술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교수가 됩니다. 이로 인해 자신의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 전체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할 때 그만 이 행렬에서 제외되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러시아에 살아남습니다. 그는 러시아에 남아 러시아 미술계의 거목이 되지만, 바로 이런 그의 삶 때문에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잊힌 사람이 되어 우리는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물론 2016년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회가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열리며, 많은 이들이 그 업적과 작품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은 우리나라 미술계의 큰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능란한 붓질은 서양화 동양화를 넘나들 뿐 아니라, 그의 그림에는 램브란트를 연상케 하는 영과 마음의 울림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지난한 삶에도 스러지지 않는 사랑만이 아니라, 그 생지옥으로 떠난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 고난의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남북의 조국, 그 모든 그리움을 담아 이 어머니 그림을 그렸으리라 짐작됩니다.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그의 “어머니” 그림에서 뚝뚝 묻어나는 연유겠지요. 우리는 이런 그림을 수십 년 이상 보지 못하였고 그의 이름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그의 6.25 참상을 그린 동판화는 케테 콜비츠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가슴 저미게 다가오고, 그의 초상화들이나 연해주와 북한 풍경은 그가 왜 러시아의 렘브란트라 불리는지 충분히 알게 해줍니다. 빨갱이, 북쪽, 러시아라는 말을 병균보다 더 무서워했던 우리 역사의 한 슬픈 장면이기도 하지요. 또 그는 북한에 공식으로 파견되어 평양 미술대학의 기초를 세웠고 북한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귀화를 거부하며 친소파 숙청의 물결 속에 북한에서마저 쫓겨나고 맙니다. 그는 매년 연해주를 방문하여 한국적 풍경을 그렸으며 끝까지 한국 이름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그립니다. 한쪽 눈이 내려 앉아 거의 감긴 듯하고, 갈라지고 거칠어진 두 손을 매만지는 모습이 눈에 아련히 떠오는데 그저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유일한 외출복이었을 듯한 공단 치마 저고리를 단정히 입고 신산한 삶에도 잃지 않은 마음의 여유가 흰색 저고리와 짙은 갈색 치마에서 묻어납니다. 어머니의 표정은 삶의 고단함보다 그 삶을 품어 안은 깊은 사랑이 느껴져, 한 사람의 어머니라기보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 고국 같은 느낌을 줍니다. 뒤편에 있는 질항아리의 정갈함이 어머니의 살림 솜씨와 마치 어머니 자신인듯 말 없는 항아리가 전해주는 말이 조곤조곤 귀에 들려오지요. 그림의 뒷배경인 옅은 검은색만이 민족 전체의 수난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그 수난의 역사 속에 가족이 휩쓸려 버리고 자신만이 덩그마니 남은 디아스포라의 슬픔과 그 수난마저 껴안은 어머니의 넓은 품이 슬픔으로 그치지 않고 땅 속 뿌리같은 힘을 지니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 수난의 역사의 정서가 한이라는 말에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합니다.

변월용, 어머니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2월의 말씀


절대선도 절대악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락한 천사라는 이름의 이 그림은 보는 순간 저 눈빛이 사람을 잡아당깁니다. 이 천사의 이름은 루치펠이며, 창조시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운 창조물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루치펠, Lucifer 빛을 나르는 자”라는 이름이 악마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 무슨 일일까요? 가장 아름답던 그는 밀턴의 실락원 구절 그대로 “천국에서 섬기느니 지옥에서 다스리겠다.”, “내 마음이 곧 지옥이로다. 나 자신이 지옥이니 ….”한 그 말대로 하느님을 떠나고 천국에서 쫓겨난 직후의 그의 모습을 화가 알렉상드르 카바넬이 그렸습니다.

타락한 천사라는데 내 눈에는 누군가와 겹쳐져 보입니다. 1994년 소위 자신들을 지존파라 불렀던 7명이 살인공장을 차리고 5명을 살인한 후, 검거되어 세상을 온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떠오르고 그들 중 한 명의 인터뷰 장면이 떠올라 인터넷을 뒤져보니 저의 뇌리 속에 선명한 그 비릿한 웃음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7명 중 김현양은 어떤 장면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법 없이 언제나 똑같은 웃음을 세상을 향해 보란 듯이 날립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인간이 아니야. 그래서 다 잡아죽이려고 …. 우리 엄마요 내 손으로 못 죽여서 한이 맺힙니다.” 그의 모습은 카바넬의 그림 속 루치펠과 너무 닮았고, 천사를 볼 수 없었던 화가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인간을 그렸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은 원망과 증오, 공포, 반발심 속에는 그보다 더 지독한 그리움이 감출 수 없이 비집고 나옵니다. 누구도 쓸어내릴 수 없는 두려움의 광기는 누구도 보듬어 줄 이 없는 인생의 밑바닥을 치고 세상을 향해 그 독기를 품어댔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한이라는 김현양, 그의 눈에 생명의 빛남이 보이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그가 나온 사진들은 대부분 저 비릿하고 섬광을 내뿜는 듯한 미소를 흘리는데, 다른 6명은 어디서도 웃음을 짓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뿌리는 듯, 입은 미소를, 눈빛은 저 그림 속 루치펠을 닮았습니다.

화가가 그린 타락한 천사에게서 제 눈에는 사랑을 잃은 존재의 광기가 보입니다. 어떤 이는 마귀를 걸어다니는 무시무시한 파충류처럼 그리기도 하지요. 어쩌면 우리 인간은 절대선을 알 수 없듯, 절대악도 알 수 없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픈 과거를 지녔든 그들의 살인 행위를 비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들 속에도 이 두려움의 광기를 그대로 받아안고 있는 하느님의 손길이 누구보다 함께 아파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이 보듬는 손길이 되어 주었더라면 어쩌면 그들도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라는 미련을 결코 버릴 수 없습니다. 삶의 진창 속에 내밀어준 누군가의 손길 덕분에 새 삶을 얻는 이야기를 우리는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사형 5분 전 김현양은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세상에 사랑이 있는 줄 알았으면 살인자 사형수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속된 다음에 사랑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제가 먼저 하늘나라 가서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가장 잔인한 사람의 밑바닥에는 가장 상처받아 짐승이 되어버린 영혼이 웅크리고 있었나 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그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하느님의 팔이 짧아 그들을 안을 수 없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을런지요. 구속 후에야 사랑을 알았다는 김현양, 계부의 학대로 집을 나오고, 다니던 공장에서 7개월분의 월급을 못 받게 되었을 때 주린 배를 움켜쥔 그의 할퀴어진 몸과 마음이 그 팔 안에서 참 사랑의 맛을 보고 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Alexandre Cabanel 타락한 천사 부분화, 1847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1월의 말씀


새해에 맛보는 하느님의 시선

그림은 참 아름답고 장대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동화처럼 쉬우면서도 우주보다 심오하게 샤갈은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의 그림은 일단 아름답고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스토리 이전에 이미 색깔로 먼저 사람을 끌어당기고, 동화같은 분위기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그림은 동화 같은 분위기이면서도 상당히 복잡하고 신비로 가득하여 얼핏 다가가기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몇 가지 코드만 알고 나면 의외로 단순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은 따로 놀거나 모순되지 않고 한줄로 꿰여있음을 알게 됩니다. 갖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보석들이 조화롭게 꿰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과 유사합니다. 자칫 잘못 배치하면 유치할 수 있는 배색들이 놀라운 조화를 이루며 그 스토리를 환희 비추어줍니다.

이 그림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중앙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막 창조된 인간과 천사, 우측 상단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역사, 좌측 상단은 종말 내지 하늘나라 이야기, 하단 양쪽은 땅 위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인간창조를 두고 우주의 시작과 종말 모두를 꿰뚫으며 그 핵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배치하는 놀라운 통찰을 보입니다. 그가 유대인이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직관력은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아주 튼튼해 보이는 천사가 아직 생명의 기운이 없어 축 늘어진 인간을 안고 화폭 넘어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오롯이 바라보고 있는데, 창조주 하느님임이 틀림없겠지요. 우측 상단 구원 역사는 온갖 다양한 무지개 색 바람개비 같은 것이 빙빙 돌고 있는데, 이 휘몰이는 예수의 십자가가 쐐기 역할을 하여 어딘가로 튕겨나가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래 오른쪽에 한 사람이 촛대를 들고 구원을 향한 사다리를 비추고 있으며, 같은 사다리가 십자가 위를 향해 걸쳐져 있습니다. 십자가 위 지붕 아래 쪽으로 현대 복장을 한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유대인과 우리 모두의 고난의 역사를 그리고, 바람개비 위 천사는 이 고난의 역사가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진 채 어둠 속에 제멋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이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왼쪽 상단 황금빛 기쁨이 출렁이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무리가 기쁨의 환호와 함께 춤을 추고 천사는 나팔을 불고 온갖 생물들도 이 천상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춥니다. 천사가 안고 있는 사람의 몸 바로 아래 땅에는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어 이곳이 유혹과 환난의 땅임을 보여줍니다. 그 땅 위에는 온갖 생물들이 뛰어놀고 오른쪽에는 아담과 하와가 에로스의 기쁨 속에 서로에 대한 신뢰 가득한 포옹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세기도 공간도 이 세상과 저 세상도 아무런 구별없이 한 장면 속에 당연한 일인 듯 하나의 그림을 이룹니다. 이런 시선은 성경 속 하느님의 시선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 아인슈타인이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1년이 365일인 것이 우주 공통인 줄 알았던 것이 기껏 100여 년 전일입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행성들은 자신의 무게로 휘어진 바로 그만큼 시간은 행성마다 다릅니다. 즉 중량이 달라지면 공간이 달라지고 공간이 달라지면 시간도 달라진다는 사실은 이제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천문학자들이 잠시라는 표현을 쓸 때는 그 숫자는 수십억이라고 하니, 하느님의 영원에서야 말할 것도 없을 터이지요. 그 우주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감히 가늠하지 못하지만 샤갈처럼 뛰어난 이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작은 사랑도 감동의 파도를 타며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샤갈처럼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만드신 마음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읽어내는 마음을 지닌 이는 복됩니다.

마르크 샤갈, 인간 창조, 1956-58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12월의 말씀


연탄 이야기 – 성탄 이야기

재형 화백의 자신을 태워 피워올린 그림 하나 성탄에 나눕니다. 6-70년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참 정겨운 장면입니다. 저 불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던 고등어, 갈치가 떠오르고요, 연탄 위에 자갈을 올리고 간식으로 마른 오징어나 밤을 구울 때면 아이들의 입에서 침이 돌곤 했지요. 그러나 연탄에 대해서는 이런 따뜻한 추억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탈 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소. …” 이 시 구절이 절로 떠오르는 이 시대의 아픔이 있습니다. 연탄을 갈아야 할 때를 놓쳐 아래 위 두 장 모두 하얗게 다 타버리면 아주 번거롭기 짝이 없는 상황이 벌어져, 번개탄에 먼저 불을 붙이고 그 열로 새연탄을 타오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연탄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새연탄에 불이 제대로 붙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위 시 그대로 타다만 연탄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는 일산화탄소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뇌에 치명적입니다. 자다가 참변을 당하여 일가족이 몰살하거나 평생 장애를 얻는 가슴 아픈 일들이 꽤 많았습니다. 연탄에 대한 회상이 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절로 이어지는 것은 무엇이든 어중간한 것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별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설픈 무당이나 돌팔이 의사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하는데, 실제로 의료사고가 우리가 아는 것보다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특히 성수대교, 삼풍 백화점 같은 큰 건물을 잘못 지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은 일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학문의 어떤 분야를 철두철미 관통하지 못하고 적당히 얼버무린 사람이 어설프게 더 잘난 척하는 모습은 그래도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설픈 경우들에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교만함입니다.

그리고 수도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도 예외 없이 이런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 길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적 수단으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며, 그 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것을 요구받고 체험하고 터득해가는 변모의 길입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일등 하라, 최고 되라, 남보다 앞서라, 지면 바보된다.” 이런 가치만이 입력되어 온 뇌속에 “꼴찌나 첫째나 다를 바 없다. 심지어 바보가 되라, 달라면 주고, 때리거든 맞아라.” 이런 소리들은 처음에는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마음은 역반응,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과거와 현재의 역동성 안에 까불리던 어느 캄캄한 밤, 이 새로운 가치들이 환한 빛이 되어 수도자를 비추는 체험을 하는 때가 옵니다. 이 말씀들이 그대로 마음 가득, 영 가득 환함이 되는 체험은 참 중요한 순간이나, 아직 몸 구석구석까지 그 가치가 내면화된 것이 아니요, 은총으로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일 뿐입니다. 새내기 수도자는 세상을 다 얻은 듯, 자신이 마치 굉장한 단계에 오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살짝 교만해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수도의 길에서 정상적인 과정 중에 하나지만, 이 과정이 오래 가거나 여기서 멈추면 아주 이상한 수도자 하나 탄생하는 것이지요. 즉 타다만 것은 쓸모 없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에 해를 끼칩니다.

이 지상에서 불타는 것은 모두 재를 남기며 원래의 자신은 사라지고 주변에 열과 빛이라는 도움을 남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 유명한 ‘모세의 불타오르는 떨기나무’에서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불타 올라 그 빛으로 타자를 온전히 비추며 타자 역시 불타오르게 하되, 자신은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넘긴 예수는 이 지상에 죽은 몸 즉 재로 남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태워, 아버지의 사랑을 인류에게 몽땅 넘겨주시되 자신은 그대로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충만해지셨습니다. 온전한 타오름은 자신도 타인도 풍요롭게 합니다. 성탄, 강생의 신비입니다.

황재형, 연탄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11월의 말씀


공감이 열어주는 세상

시대는 슬픔을 공감하는 기능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세월호 사태가 터졌을 때 소위 “극우 매체”가 “오뎅”이라는 말을 쓴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소름끼치는 전율, 슬픔, 분노가 섞인 감정이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덮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그 깊이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다들 아는 이야기 중에 ‘밥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가족의 테두리에서조차 경계가 분명한 핵가족의 삶 안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은 생소한 것이 되어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빚은 공감 부족의 세상 안에서 길가던 행인을 향해 자신의 울분을 쏟아붓는 ‘묻지마 살인’도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린 참 난감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와는 다른 시선이 감지되는 곳도 있어 세월호나 이태원 사건, 무안 항공기 폭발 사고가 터지자 많은 이들이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들의 고통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로 느끼는 이들이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이들의 존재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 어쩌면 우리 자신도 실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공감은 이렇게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희망을 열어줍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도 이런 공감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곧바로 “클레멘타인” 노래가 제 귀에 울려퍼졌습니다. 누가 설명해 줄 필요도 없이 이 노래 가사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의 아픔이 공명되게 해주는 애절한 내용과 그에 딱 어울리는 음율로 듣는 이의 마음 속으로 스며듭니다. 슬픔은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더욱이 순수한 사랑의 상실로 인한 사랑은 큰 상처도 입히지만, 그 상처를 받아들일 때 놀라운 치유를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세상이란 태초 이래 한 번도 없었건만 세상이 슬픔으로 무너진 적이 없고, 오히려 그 슬픔을 통해 새로운 것이 생겨남을 적지 않게 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이 노래 가사에 이어지는 장면 같지 않나요? 어두컴컴한 방 안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한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은 뭐라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태양 빛 환한 바닷가와 화사한 분홍빛 옷차림의 소녀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어둠이 가득 내린 집안은 좀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대비가 됩니다. 어부의 방인 듯한데, 오른쪽 창문에 걸쳐 걸린 그물이 마치 귀신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물은 보통, 집안이 아니라 집밖에 널어 말립니다. 그리고 창 바로 밑 도마 위에는 손질하다 만 생선이 머리가 잘린 채로 붉은 피를 머금고 있는 것이 섬뜩함보다는 왠지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 마치 그 아버지의 마음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침침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듯 묘하게 어울리게 창틀에 싱싱한 꽃들이 있는데, 이제는 아버지 곁에 없는 아이가 무척 좋아했던 꽃이리라는 짐작이 들지요. 이런 아버지를 아이가 한없는 그리움을 담아 창밖에서 찾고 있습니다. 아이가 있던 세상은 이 아버지에게 늘 저렇게 환한 세상이었겠지요. 그 환한 세상을 송두리째 앗겨버린 아버지의 애끓는 슬픔을 화가는 아버지의 그림자조차 그리지 않고도 절절하게 전달되게 만듭니다.

아버지의 슬픈 모습이 한 자락이라도 그림에 나왔다면 오히려 애끓는 슬픔은 그저 당연한 일로 그치고 말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그림 속 아버지의 슬픔은 세상 수많은 상실의 아픔 중 하나가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바로 우리의 슬픔이 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화가의 공감하는 마음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공감하는 능력은 세상을 살리는 힘임을 믿습니다.

칼 하인리히 블로흐 1834-1890, 어부의 창문을 두드리는 소녀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10월의 말씀


생명 건네주기 – 생명 말리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남의 일인데도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올라 저 중년 남성의 정강이를 한 번 걷어차주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일상 안에서도 종류는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일상의 삶이 참 만만치가 않습니다. 내 자신 하나도 추스르기 쉽지 않지만 남의 일이 되면 문제는 더 꼬이는데, 이 사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남의 일에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면에서는 이 말이 맞고, 남의 일에 내가 왜 부아가 치미느냐는 면에서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남의 약점, 꼬이거나 뒤틀린 면에 속이 뒤집히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로 속이 뒤집힐 때 그 사람 탓에 이리 속이 뒤집힌다는 사실이 마땅하고 옳은 듯 분통을 터트릴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이 사실을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짜증 나는 신사”가 이 그림 제목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짜증도 내야 할 때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우선 이 그림을 한 번 살펴봅시다. 열차 안에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검은 상복차림의 한 젊은 여인이 앉아있습니다. 누군지 알 수는 없으나 아주 가까운 관계의 사람을 잃고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는지 아니면 돌아오는 길임에 분명합니다. 검은 모자에 검은 장갑까지 정식으로 장례식 복장을 갖추었습니다. 그녀의 상실의 슬픔은 주위 시선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큼 큰 듯 하여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을 잃은 경우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데 염치 없는 중년 신사가 위로하는 척 여인의 뒤에서 선심을 보이지만 그림 속에서도 그 검은 속내가 훤히 보입니다. 슬픔이 줄줄 흘러 옆사람까지 적실듯한 여인을 두고 실실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남의 슬픔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인간의 잔인한 이기심,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 생활 안에서 이런 경우를 적잖게 마주칩니다.

남의 불행을 평소 품었던 원망을 갚을 기회로 보는 사람, 남의 기쁨에 배아픈 사람, 얌체족이라 불릴만한 여러 일들 즉 고생스런 상황이 뻔할 때 자신만 쏙 빠져나가길 밥먹듯 하는 이, 맛있는 것만 먼저 골라 먹는 사람, 사람의 밑바닥을 뒤집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남이 고생한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사람,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닌 척 하는 사람. 뭐 이런 일들이 놀라울 정도로 우리 일상 안에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좌절을 겪는 사람, 세상을 등지고 고립의 방에 박히는 사람, 세상을 향한 분노로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의 경우들을 생각해보면 어떤 인간관계에서는 서로에게 생명을 건네주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기는커녕 서로 생명을 말려버리는 그런 상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 인간 현실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타자로부터 생명을 받아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받은 생명을 또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타자에게 건네주며 생명은 흘러갑니다.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건네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생명을 서서히 말라가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미움, 질투, 분노, 원망, 모욕, 폭언, 중상 이런 것들은 상대를 서서히 말라가게 만듭니다.

위의 중년 신사는 자신도 모르는 새, 젊은 여인의 슬픔으로부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생명을 말라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 뻔뻔한 얼굴에 속이 뒤집히지 않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일 듯 합니다. 여인의 눈빛 속에는 슬픔과 함께 분노와 짜증이 가득 고여있습니다. 뒤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노인은 상황을 뻔히 다 아는 듯한 얼굴이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기도 뭣해서 그저 모르는 척하고 있으나, 아마도 속은 꽤나 부글거릴 것 같습니다.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일은 전쟁터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우리 일상 안에 너무도 깊이 들어 와있습니다.

Berthold-Woltze 베르톨트 볼체, 짜증나는 신사, 1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