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홈 > 수정수도원 > 역사
1. 전사(前史) : 성령의 이끄심
1982년 4월, 동 보나벤뚜라(일본 도베츠 모원의 아빠스)는 동 베르나르도 죤슨(미국 스페스 수도원의 아빠스)과 함께 동 오도(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의 아빠스)의 안내로 한국을 방문하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과의 면담 및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 방문 등을 통해 한국 교회의 사정을 집적 확인하게 된다. 동 보나벤뚜라는 이 첫 방문에서 한국 창립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표징들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곧 일본 천사원의 스페스 원장에게 창립의 의사를 타진하였다. 한국 교회의 활발한 움직임과 폭발적인 성소자 증가 등 한국 교회의 상황이 일본 공동체에 전달되고 공동체 투표를 통해 한국 창립이 결정되었다. 이 후 창립을 위한 부르심에 대한 천사원 공동체와 도베츠 공동체의 관대한 응답은 경남 마산 수정리에 작은 한 알의 씨앗으로 땅에 묻히게 된다.
2. 공동체의 여명기
1983년 2월 22일에 경남 마산 근교 수정리에 22헥타르의 토지를 구입하였다. 1983년에 첫 한국인 지원자가 일본 천사원으로 입회 한 이후 1987년까지 총 18명이 입회하였는데 종신 서원을 발한 수녀는 4명이었다.
1984년 3월에는 안젤라 나까무라 수녀와 쥬리아나 타타라 수녀가 첫 창립 멤버로 한국으로 파견되어 성 베네딕도 여자 수도원의 분원인 상지회관 내의 부속 건물에서 생활하며 연세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 카타리나 나까니시 수녀, 1985년에는 베로니카 와타나베 수녀와 뻬르뻬뚜아 다까세 수녀, 1986년에는 안드레아 아노 수녀와 힐데가르드 하시모토 수녀가 파견되었고 쥬리아나 수녀는 1985년 많은 한국인 지원자들의 양성을 위해 다시 천사원으로 돌아갔다. 당시 ‘국제한국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던 최서면 원장은 여러 가지 수속절차 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 내의 여러 수도원 특히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의 도움과 아낌없는 희생 정신은 이 작은 공동체가 태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두 수녀가 상지회관에 정착함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인 성소자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왜관의 황 다미아노 신부는 이때부터 통역과 지도를 맡아 주었다.
1985년 4월 24일에서 5월 16일에 스페인 에스콜리알에서 개최된 엄률 시토회 여자 총회는 일본 천사원의 한국 창립을 전원일치로 가결하였다. 1985년 9월부터 수녀들은 마산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몇 명되지 않는 수녀들을 위해 강영구 루치오 신부가 토요일 아침 미사를 봉헌하러 와주었다.
1985년 9월 28일 드디어 수도원의 기공식이 있었다. 마산 교구장 장 병화 요셉 주교와 일본 도베츠 모원의 동 보나벤뚜라, 일본 천사원의 수녀들과 도움을 주었던 많은 수도자, 사제들이 참석하여 이 건물이 하느님의 집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합하여 기도해 주었다.
창립 준비 단계의 책임자였던 안젤라 수녀의 한국 땅, 한국 문화에 적응하고자하는 노력은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이 덕분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인한 주위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소자들이 지원하였다.
창립과정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창립을 시작하고 영적 물적으로 보살피며 지원한 도베츠의 동 보나벤뚜라는 1986년 향년 61세 귀천하였다. 병이 완치되면 수정 수도원의 지도사제가 되기를 희망했으며 한국인을 무척 사랑했던 그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성장을 지켜보며 전구의 기도를 바치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앞으로 수정공동체의 지도사제가 될 황 다미아노 신부는 본건물이 완공되기 전 수위실의 기사 사택에 수녀들보다 한 걸음 앞선 1987년 4월에 입주하였다. 많은 성소자들이 새로운 수도생활에 대한 희망을 안고 성소자 모임에 나오고 있었다. 건물이 완공되는 2년의 시간이 그들에게는 길고도 감미로운 은총의 때였으리라. 1987년 10월 10일, 낙성식 열흘 전에 이 하느님의 집을 이룰 참된 성전인 첫 지원자 4명이 새 건물로 입회를 하였다.
1987년 10월 19일, 교회 안에 한 수도공동체가 탄생하였다. 엄률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900여년 하느님의 자비의 도구가 되어 온 하늘의 수많은 시토 선배들의 찬미와 전구는 비록 눈에 보이는 형태는 아닐지라도 이 날 수정 수녀원을 감싸주고 있었으리라.
일본과 한국 교회의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첫 출발을 함께 축하하였다. 첫 출발을 한 공동체의 원장은 마리아 안젤라 수녀, 부원장은 뻬르뻬뚜아 수녀, 수련장은 베로니카 수녀, 사무실 책임은 힐데가르드 수녀였다. 이 시기에 경제적 자립을 위해 안경공장을 시작했다. 낙성식 7개월 후인 1988년 5월 6일 안경공장 축성식이 있었다. 그러나 수도승적 생활과의 부조화와 갖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안경공장을 시작한 지 1년 5개월 만에 중단하게 되었고, 새로운 장상으로 베로니카 수녀가 임명되었다.
1988년 7월 12일에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아픔 속에서도 총장 고문회로부터 수련원 개설 허가를 받게 된다. 이 시기는 어려움과 성장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공동체 전체가 함께 체험하는 시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수도회 어른들의 권유로 수도원의 단순자치 승격을 신청하게 되었고, 1995년 5월 오리엔스(아시아 공동체 모임) 합동 지방회의는 오르발(벨기에)에서 같은 해 6월에 개최될 예정인 중앙위원회에 수정 공동체가 단순자치 승격을 신청하는 것에 찬성하였으며 이 중앙위원회도 이에 찬성하였다. 1995년 10월 7일 박정일 미카엘 주교의 주례로 미사와 단순자치 수도원 승격식이 거행되었다. 시토회 수도원은 성장에 따라 네 단계가 있는데, 창립 수도원, 단순자치 수도원, 정식 자치 수도원, 그리고 대수도원이다. 창립 수도원에서 단순자치 수도원으로 승격됨으로써 수정 공동체가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