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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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률시토회 The Order of Cistercians of the Strict Observance O.C.S.O (또한 트라피스트 Trappist 로 알려져 있음)는 로마 가톨릭 관상수도회이며, 남자수도원들과 여자수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수도회는 1098년에 그 기원을 둔 더 큰 시토회 가족의 한 부분(완률시토회가 있음)이다. 시토회는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을 따르기 때문에 또한 베네딕도 가족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형제 혹은 자매들의 공동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데 바쳐진다.
모든 시토회 수도원들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바쳐진다. 성모승천 대축일이 본수도회의 주보 축일이다.
우리 수도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복음에 우리 삶의 양식의 기원을 두고 있으며, 우리의 영성은 다음의 다섯 가지 원천으로부터 나온다.
1.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
우리의 삶의 방식은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이 설명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수녀와 수사들은 세상의 일상적 삶으로부터 떨어진 안정된 공동체에서 산다. 매일 시간경 전체를 가대에서 바치는데, 동이 트기 몇 시간 전 독서기도로 시작한다. 일과는 일, 독서, 노동study 사이에 균형이 잡혀있다. 공동체는 자급자족하며, 영적인 분위기를 찾아오는 이들을 환대한다.
2. 시토의 창립자들
성 로베르토, 성 알베리코, 성 스테파노는 1098년에 시토라는 개혁 수도원을 세웠다. 그들이 목표로 삼은 것은 수도승 생활 제도를 쇄신하여 이것을 성 베네딕도의 규칙과 또한 시대의 갈망과 더 가깝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참된 가난, 단순함(전례 안에서조차), 손노동에 강조점을 두었고, 세속적인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며, 본수도회 차원에서 열정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수도원들 사이에 상호 배려와 감독을 하였다. 이 시기 초기 문서인 소창립사는 개혁의 기원을 묘사하며, 사랑의 헌장은 법적인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3. 성 베르나르도와 동시대인들
시토회 카리스마는 제 2, 제 3세대 동안 특히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153)의 영향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 동안 수도승 생활의 내면생활과 경험적인 특징에 대한 관심이 컸으며, 형제적 친교와 관상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4. 드 랑세 아빠스의 개혁
17세기에 다양한 요소들이 시토회의 쇠락과 분열을 일으켰을 때 라 트라프의 아빠스였던 아르망 쟌 드 랑세는 자신의 방대한 저작물의 도움을 얻고, 고대 수도승 전통의 영감을 받아 강한 개혁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의 주된 강조점은 시토회 생활의 엄격함과 관상적 특징에 대한 주장이다.
5. 바티칸 공의회 쇄신 이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25년 동안 본수도회는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회헌 개정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첫째로 영성과 수행의 유산의 풍요로움에 대한 큰 자각과 감사를 가져왔으며, 둘째로 최근 시토회가 뻗어나가고 있는 세상의 많은 다른 장소에서 시토회 카리스마가 통합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기 위해 그리고 문화수육을 촉진하기 위해 더 큰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수도승 생활의 근거는 무엇인가?
수도원 안에 숨어서 기도로 하루를 보내는 동정의 삶의 양식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 예수의 복음을 더 진실되게 전하고 사회에 더 유익하지 않을까?
우리를 수도승 생활로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리스도교 수도승은 온 삶을 바치라는 예수의 부르심을 감지한 사람인데, 이 사람은 그리스도께로 초점을 맞추지 않는 모든 것을 제쳐두기를 열정적으로 갈망하는 이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반대로 모든 이들을 위해 중재의 기도를 바치시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깊은 차원에서 이 형제자매들과 일치하게 된다.
시토회 수도승은 일생에 걸친 노고에 찬 기도를 위해 공동체에 의해 정화되고 힘을 받으며 형제, 자매들과 함께 살아간다. 각 수도원은 각기 고유한 관습과 하루 일과표가 있지만 모든 수도원에 공통된 것은 하루가 시작되기 전 새벽에 전례기도를 바치기 위해 일어나며, 하루 동안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바치기 위해 성당으로 가는 것이다. 노동을 하는 다른 시간에 끊임없는 기도에 성장하는데 도움을 받도록 침묵의 분위기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우리의 수도원들은 일반적으로 자연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으로 둘러싸인 시골에 위치해있어, 하느님이 우리를 관리인으로 삼으신 땅에 더 가깝게 해준다.
우리는 공적인 봉사에 종사하지 않지만 우리의 삶은 공통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수도승적 삶의 방식은 이 세상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방식의 인간 생활을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포함하고 있는데, 다가올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교 믿음을 증거한다. 이 시대에 수도원은 소음과 혼돈의 한복판에서 많은 이들에게 평화로운 피난처가 되며, 방문객들이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마음을 준비하는 분심으로부터의 해방을 발견하는 장소가 된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들을 압도해버릴 수도 있는 현대 세계의 요구에 힘겹게 대처할 때 수도승 생활 일과 안의 노동과 기도의 균형 안에서 그리고 수도승 생활이 제공하는 질서와 목적 안에서 영감을 발견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믿으며, 세상의 모든 희망과 필요한 것들을 우리 마음 안으로 가져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담은 마음의 아주 작은 것 하나 하나도 귀하게 여기시기에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원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형성해주시는 그분의 선하심과 사랑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오직 이 지상 삶만을 위해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가엾은 사람들입니다. 1고린15,19
수도원은 교회 신비의 표상이다. 그 어떤 것도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영광의 찬미에 우선시키지 않는다. 공동생활 전체가 복음의 최고법에 순응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공동체가 어떤 은사도 부족함이 없도록 한다. 수녀들은 하느님 백성 전체와 뜻을 같이하고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일치를 바라는 적극적인 소망에 참여한다. 자신의 수도승생활에 충실하며 고유한 숨은 사도직의 열매로 하느님 백성과 전 인류에 봉사한다. 시토회 회헌4항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1테살5,16-17
1.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승생활
사막 안에 계신 예수님
수도승생활이라는 개념은 고대로부터의 것이며 많은 종교들과 철학 안에서 발견된다. 그리스도 바로 전 수 세기 동안 힌두교, 불교, 유다교는 모두 여러 면에서 세상을 포기하는 것을 포함하는 삶의 양식을 개발하였는데, 공동체 안에서 또는 독수도자로서 해방 혹은 정화 혹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수도승생활은 예언자 엘리야와 사막에서 홀로 살았던 세례자 요한의 모범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적인 전도 시작 젖 사막에서 사탄과 홀로 싸웠던 예수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끌어내었다. 출애굽을 비롯하여 구약성서 시대를 통틀어 사막은 영적 쇄신과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장소로 간주되었다. 그리스도교 첫 세대 가운데 수행자들 특히 여성 수행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일반적으로 마을이나 도시에서 살았다.
성 안토니오는 가장 먼저 사막으로 물러나 살았던 그리스도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4세기 중반에 성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쓰여진 안토니오의 생애에 따르면 안토니오는 고독한 기도 안에서 하느님 찾기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엄격한 수행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이집트의 황무지로 물러났다. 그는 홀로 사막에 머물렀는데 그의 거룩함은 점점 많은 추종자가 생겨나게 하였다. 그는 4-5세기 사막의 암마, 아빠들의 운동만이 아니라 전체 그리스도교 수도승 가족의 교부들에게도 아버지로 간주될 만큼 그의 영향은 깊다.
초기 사막 교부들은 은수자로 살기는 했지만 완전히 고립된 경우는 아주 드물었고, 자주 서로 근접하여 살았으며 니트리아와 스케테 같은 사막에서 헐렁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은수자로부터 공동체 안에서 한 아빠스 아래 함께 사는 수도승으로의 진보는 346년 이집트에서 파코미오가 첫 그리스도교 공주수도원을 세움으로 이루어졌다.
동방의 수도승 가르침은 요한 카시아노에 의해 서방 교회로 전달되었다(360-435). 젊은 청년이었던 카시아노와 그의 동료 게르마누스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한 수도원에 입회했으나 그 후 니트리아에 있는 은수자 그룹을 방문하기 위해 이집트로 여행하였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카시아노는 남자 수도원을 세웠는데 아마도 마르세이유 근처에 여자 수도원도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서방 수도원에서 발견한 남용이라고 느꼈던 것을 반박하기 위해 그는 두 개의 긴 글 제도서와 강화집을 썼다. 이 책들 안에서 그는 자신의 이집트 경험(이것들이 아마도 사막 교부들의 사고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보고일 것이다.)을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수도승 생활에 심오한 복음적, 신학적 근거를 놓았다.
카시아노의 영향은 지대하였고 세기를 걸쳐 지속되었는데 심지어 유럽의 어두운 시기 가장 작은 수도원들도 카시아노의 사본을 지니고 있었다. 더 나아가 성 베네딕도는 카시아노의 사고를 자신의 수도규칙 안에 결합시켰으며, 자신의 수도승들에게 카시아노의 작품을 읽기를 권고하였다.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은 베네딕도회, 시토회, 트라피스트회에 의해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므로 요한 카시아노와 그의 뒤에 있는 사막 전통의 사고는 여전히 가톨릭 교회의 수많은 사람들의 영적 삶을 인도해주고 있다.
주님께 대한 두려움은 우리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수족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거나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지금 기쁨을 주는 것에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님의 법에 따라 자신의 뜻과 갈망을 묶어야 한다. 십자가 나무에 묶여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더 이상 모든 것을 현재 상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생각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염려나 근심으로 혼란스러워지지 않고, 소유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자극받지 않고, 교만이나 불화나 경쟁심으로 타오르지 않고, 현재 받은 상처에 한탄하지 않고,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지 않고, 몸 안에 살며 여전히 숨을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상적인 것들에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마음의 생각들을 바로 그곳, 의심도 없으며 곧 이르게 될 그곳으로 앞서 보낸다.
요한 카시아노 제도서 4권35장
2. 초기 시토회
창립자들
시토의 창립자들은 참된 수도승적 단순함과 복음적 가난에 자신들의 이상의 중심을 두었다. 그들은 이 쇄신에 대한 영감은 수도원들을 위한 성 베네딕도의 규칙의 더 엄격한 문자적 해석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1098년 3월21일 몰렘의 베네딕도 수도원의 아빠스 로베르토는 자신의 수도승 21명과 함께 새로운 개혁 수도원을 시작하기 위해 시토라는 광야로 출발하였다. 1100년, 로베르토가 몰렘으로 돌아간 후 성 알베리코가 아빠스로서 공동체를 이끌었다.
시토회 순교록은 알베리코가 자신이 흰색 쿠쿨라를 받은 성모님께 자녀로서의 헌신을 드렸다고 한다.
아빠스로서 알베리코의 뒤를 이은 영국 사람 성 스테파노 하딩은 Carta caritatis(사랑의 헌장)을 구상한 중심인물인데, 이것은 일종의 회헌으로 규율과 관습의 공통된 준수에 본수도회의 모든 수도원들을 묶어주었다. 이 회헌은 각 수도원이 시토의 정신과 원칙에 충실하게 하는 아빠스의 역할을 감독하는 시찰제도와 함께 각 공동체의 자치에 대한 존중을 규정하였다. 더 나아가 각 공동체의 아빠스들은 총회 참석을 위해 매년 시토로 올 것을 요청받았다.
성 베르나르도
디죵의 퐁텐느의 베르나르도와 그의 동료 30명을 1112년에 시토의 수도승으로 받아들인 것은 성 스테파노 하딩이었다. 예외적인 재능을 지닌 카리스마적인 젊은 베르나르도는 부르군디 클레르보에 시토의 새 창립 수도원 시작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로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 알려지게 되었다. 성 베르나르도의 지휘 아래 시토회 운동은 전 유럽에 빠르게 확산되어 13세기 말경 500 군데가 넘는 수도원을 헤아리게 되었다.
성 베르나르도는 12세기 중반 가장 뛰어난 지도들 중 한 명이었으며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적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시대의 지도자들로부터 조언자와 중재자의 역할을 요청받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는 1130년 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의 선출로 일어난 교황권 분열 해결에 도움을 주었다. 그의 영향은 그의 영적 아들인 퐁텐의 아빠스 시토회 수도승 베르나르도가 1145년 교황(에우제니오3세)으로 선출되었을 때 더욱 커졌다.
시토회 저작물
베르나르도는 아빠스로서의 38년 동안 65 군데의 시토회 수도원 창립을 보았다. 열정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성과 신학적 주제들에 관해 폭넓게 글을 쓸 시간을 찾아냈다. 그의 영적 걸작인 아가서 강론은 1136년에 시작하여 1153년 8월20일 클레르보에서 죽음의 때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작업 중이었다. 첫 번째 시토회 여자 수도원은 몰렘에 의존하고 있던 줄리라는 수도원 출신의 수녀들의 의해 랑그르 교구 타르에 세워졌는데, 성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움베리나가 이 줄리 수도원에서 살고 죽었다. 성 스테파노 하딩은 타르를 시토의 자원(子院)으로 세웠으며 시토 아빠스의 사목적 배려에 위임하였다. 이로부터 개별 여자 수도원이나 수녀연합회가 먼저 프랑스에서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시토회 수도승들과 합치게 되었는데, 스페인에서 1180년 라스 훼르가스의 왕립 수도원이 창립되었다.
시초부터 시토회 영성은 시토회 영성은 우리 수도원들에서 나온 성인들과 영성의 대가들의 증거 안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셍 티에리의 윌리엄(+1157), 리보의 엘레드(+1167), 이니의 게릭(+1157)은 시토의 4 복음사가(영적 신학자들)로 간주된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성을 강조하는 그들의 영성은 독특한 마리아 영성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 테마들은 13세기에 헬프타 수도원의 수녀들에 의해 더 발전되는데, 이 수도원은 “독일여자수도원의 왕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여성들 가운데서 특히 두드러지는 이들은 대 젤뜨루다, 마그데부르그의 성 멕틸다, 헤크본의 성 멕틸다이다.
당신을 위해 죽으신 분의 고통을 깊이 나눈다면 당신은 그분을 통해 위로도 크게 나눌 것이며, 당신의 영혼은 그분 안에 기쁨을 찾을 것이고 다른 어떤 것에 의한 위로도 거부할 것이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시90에 대한 사순절 강론, 도입
1. 시토회의 생활양식은 은세공주수도승 생활(cœnobitica)이다. 시토회 수녀들은 형제애의 학교인 견고한 공동체 안에서 규칙과 아빠티사(abbatissa) 아래 하느님을 찾고 그리스도를 따른다. 모든 자매들은 한 마음 한 뜻이므로 모든 것을 공유한다. 서로 남의 짐을 져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채우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함으로써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을 희망한다.
2. 수도원은 주님을 섬기는 학교이다. 그 안에서 전례, 아빠티사의 가르침, 그리고 형제 생활을 통해 자매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수녀들은 마음과 행동의 규율을 훈련 받아 성령께 순종하게 되고, 그리하여 마음의 순결과 끊임없이 하느님 현존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는 상태에 도달한다.
3. 수녀들은 과거 사막에서 영적 투쟁을 하도록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수녀들은 하느님 나라의 시민들이므로 세속적 행위에 있어서는 이방인이 된다. 고독과 침묵 안에 살면서 예지(叡智)를 낳는 내적 고요를 갈망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 겸손과 순명으로 교만과 죄의 반항을 거슬러 싸운다. 단순함과 노동 안에서 그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약속된 지복을 추구한다. 기꺼운 환대로써 그리스도께서 아낌없이 베푸신 평화와 희망을 순례하는 형제들과 함께 나눈다.
4. 수도원은 교회신비의 표상이다. 거기서는 그 어떤 것도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영광의 찬미에 우선시키지 않는다. 공동생활 전체가 최고의 법인 복음을 따르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동체에는 그 어떤 영적 은사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수녀들은 하느님 백성 전체와 일치하도록 애쓰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적극적인 갈망을 함께 나눈다. 수녀들은 수도승 생활에 충실함으로써 고유한 숨은 사도직의 열매를 맺어 하느님 백성과 전 인류에 봉사한다. 본 수도회의 각 공동체와 모든 수녀들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된다. 그분께서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라는 질서 안에서 교회의 어머니시며 상징이시다.
5. 수도원의 체제는 수녀들이 그리스도와 긴밀한 일치를 맺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직 주 예수님께 대한 인격적인 사랑의 체험을 통해서만 시토회 소명의 특수한 은사들을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매들은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우선시키지 않을 때만, 평범하고 드러나지 않으며 고된 생활 안에 항구하면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 모두를 함께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