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 trappkorea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4년 4월의 말씀

수룩하고 시커먼 수염, 한방 맞으면 국물도 없을 것 같은 솥뚜껑 같은 손, 거구의 몸집 등 솔직히 이 그림 속 예수님의 모습은 산적 두목 같지요. 그런 예수님이 어울리지도 않게 온몸을 둥글게 구부려 암탉이 알을 품을 둥지가 되어주듯 그렇게 누워 있습니다. 그런 예수의 옷자락 속에서 노란 병아리 한 마리가 엄마 품에서 나오듯 그렇게 나오고 있고, 어미 닭은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4년 3월의 말씀

마음에 드는 예수님 얼굴을 만났습니다. 렘브란트의 시골 사람같은 예수님 얼굴 이후, 진짜 예수라면 이럴 것 같은 얼굴 모습을 처음 만났습니다. 푸근하고 인간적이면서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위엄이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많은 검은 머리에 아시아적인 얼굴이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광야 속 예수라는 사실이 잘 느껴집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스탠리 스펜서라는 영국 사람이라 더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사실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4년 2월의 말씀

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존재들, 예를 들면, 하느님, 천사, 성인들을 묘사한 작품 중에는 웃음 지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그림에서도 웃는 모습은 사실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17세기 주디스 레이스터라는 여성화가와 프란스 할스 작품 안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사실 예술사에서 예외적이라 할 만큼 드문 현상입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그리 유명한 것도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4년 1월의 말씀

곡을 서서히 물들이는 아침 햇살이 정겨우면서도 찬란하고, 깊은 우수도 동시에 느껴지는 풍경화입니다. 미국 19세기 풍경화의 대가 호머 닷지 마틴의 “후서토닉 계곡”이라는 작품입니다. 매사추세추에 있는 후서토닉 강에 따르는 계곡인데, 계곡이라는 지형적 특성상 닫힌 느낌과 함께 아늑함이 전달되어옵니다. 왠지 새해 아침에 딱 맞을 듯 한 그림이지요. 어둠에 닫힌 계곡 위로 햇살이 서서히 비춰오는 장면인데 마치 닫힌 계곡이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3년 12월의 말씀

수님의 성탄에 관한 복음의 기록들은 두 가지 분위기로 나뉩니다. 우선 한 가지는 천사들의 합창과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보이는 환희와 기쁨과 경건함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록은 적은 편이고 그 반대되는 분위기가 더 압도적입니다. 아기 낳을 곳조차 얻지 못한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루저였던 마리아와 요셉의 마굿간 여물통에 아기를 누일 수밖에 없는 가난함,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철없는 동방박사들의 솔직한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3년 11월의 말씀

을 돌려버리고 싶은 그림이지요. 아름답고 좋은 것들로 가득 찬 이 삶이 영원하리라는 사실에 금이 가고 있는 오늘에, 눈 돌리고 싶어도 그리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림 하나 만났습니다. 16세기 괴짜 화가 피터 브뢰헬의 “죽음의 승리”입니다. 단 1% 치사율의 코로나로 전세계가 3년 동안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 놀라운 방역체계와 마스크, 격리병동, 가는 곳마다 비치된 손소독제를 지니고도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3년 10월의 말씀

늘과 땅 사이 그러니까 제목이 하늘과 땅 사이라는데, 뭐 제목에 이의가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얼핏 본 그림과 제목 사이 무슨 연관이 있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최후만찬 장면인데,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좀 아득했습니다. 실제 그림이 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인터넷에서 찾아내어 확대를 해본 순간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림의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3년 9월의 말씀

무더위와 장마를 지낸 우리에게 좀 신선한 기운을 불어 넣어줄 그런 그림을 찾다 만났는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림입니다. 60, 7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저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분위기의 그림으로, 그리움이 훅 밀려오게 합니다. 도시의 놀이터는 물론이요 시골에 가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옛날 그 시절의 모습이 되어버린 장면입니다. 인공으로 꾸며져 돈을 내고 들어가는 놀이방이 있고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3년 8월의 말씀

그림을 만나는 데는 의외로 현실 안의 변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 제게는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과 같은 원시주의적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이 화가의 걸어온 걸음으로 볼 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또 딱 그대로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보게 된 데는 눈 수술 후 보이는 것이 편치 않게 된 제 눈 덕분이었지요. 제목을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3년 7월의 말씀

그림을 보는 순간, 여러 버전의 메두사 그림이 떠올랐고, 그리스 신화 안에서 가장 여러 가지 설이 많아 그 유래가 확실하지 않은 것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겠지만 머리카락이 꿈틀거리며 뒤엉킨 뱀으로 이루어진 여인입니다. 사실 심장 약한 사람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해질 법한 그런 모습이지만, 이렇게 저주 받기 전에는 굉장한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