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 trappkorea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3월의 말씀

님, 언제까지 마냥 저를 잊고 계시렵니까? 언제까지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시렵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번민을 제 마음에 날마다 품어야 합니까? 언제까지…”(시편 13). 시편 예언자의 고통이 육체적 질병인지 약자가 겪는 사회 구조적 불평등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더욱 괴로운 이유는 친구, 가족, 배우자로부터도 이해는커녕 오해받고 질책당하고 버림받아, 친밀한 관계가 단절되는 소외감 때문이지요. 이것은 하느님의 기억으로부터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2월의 말씀

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말라 3장). 애타게 기다리던 주님, 성전이신 바로 그분께서 성전에 당신을 드러내실 때 성전의 기둥마냥 의연하게 굳건히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들, 천사의 소리에 순명하는 이들, 말씀을 위해 침묵하는 이들, 가난한 어둠속에서도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7월의 말씀

절이 유난히 성큼성큼 앞질러 다가옵니다. 지난 봄날엔 산야초발효액을 담그기 위해 새순과 여린 야초(野草) 잎들을 뜯어 설탕에 재우고, 비누 재료로 사용할 어성초, 약쑥도 햇볕 잘 드는 곳에 두었더니 바람, 달빛, 별빛이 한 몫 거들어 잘 건조되었습니다. 바수고 고운체에 걸러 병에 담으니 넉넉합니다. 절로 신명나게 자라는 풀들이 참 고맙습니다. 봄날 아침, 수도원 경내를 다니며 채취하다보면 그저 걸음을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6월의 말씀

해가 반 고비에 이르렀습니다. 예수 성심 성월인 6월입니다. 일곱 번의 대축일, 어느 때보다 주님의 거룩함과 은총이 하늘 햇살처럼 쏟아집니다. 전례 안에 현존하시며 살아 계신 주님을 받아 모시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라는 겸손한 고백을 환호로 터뜨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소소한 일상 안에서 기쁨과 슬픔의 씨줄 날줄이 큰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5월의 말씀

벽, 잠에서 깨우시니 독서기도를 바치기 위해 성당으로 갑니다. 움직이는 발과 눈을 뜨고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주님께서 기다리시며 우리를 당신께로 끌어당기시니 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복도에 달빛이 넘실거리고 안마당 위 하늘엔 별이란 별은 다 모여 멀리서 가까이에서 주님을 찬미하는 충만한 고요가 흘러넘칩니다. 우리 자매 중 어떤 이는 이 푸른 새벽, 가까움으로 다가오시는 주님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4월의 말씀

녕 하느님께서는 좋으시도다.”(시편 73)라고 시편 예언자는 노래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아름다운 고백은 신앙마저도 잃을 만큼 영혼 안에 고통이 일어나는 원인이 됩니다. 왜 “좋으신 하느님”께서 마음 깨끗한 이들, 올바른 이들이 죽음에까지 내몰리는 절망과 부조리를 보고만 계시는지 예언자는 몸부림치며 울부짖습니다. “정녕 나는 헛되이 마음을 깨끗이 보존하고 결백으로 내 두 손을 씻었단 말인가? 날마다 고통이나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이나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3월의 말씀

 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로 큰 즐거움을 삼는 이!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정녕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의인은 영원한 기억으로 남으리라. 그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마음은 주님을 굳게 신뢰하네.”(시편 112). 시편 예언자의 이 노래에서 요셉 성인을 기억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는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2월의 말씀

  경을 펼치면 온통 인간을 찾으시는 하느님, 하느님을 찾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내 얼굴을 찾아라.” “주님, 당신을 찾고 있나이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우리를 찾고 계시는 바로 그 하느님을 찾아야겠지요. 허나, 성 베르나르도도 말하지만 우리의 찾음은 우리를 찾으시는 그분께 대한 응답일 뿐입니다.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온전히 드러내시지만 다 볼 수도, 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매번 새롭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