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6월의 말씀

놀라운 얼굴

해가 반 고비에 이르렀습니다. 예수 성심 성월인 6월입니다. 일곱 번의 대축일, 어느 때보다 주님의 거룩함과 은총이 하늘 햇살처럼 쏟아집니다. 전례 안에 현존하시며 살아 계신 주님을 받아 모시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라는 겸손한 고백을 환호로 터뜨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소소한 일상 안에서 기쁨과 슬픔의 씨줄 날줄이 큰 무리없이 잘 직조되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구는 난데없는 돌풍을 만나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이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은 후자의 처지에 있습니다(마르 4,35-41). 하늘과 바다가 한데 엉기어 거센 바람과 풍랑으로 이미 돛대는 찢어지고 물고기마냥 큰 입을 벌리고 놀란 배는 곧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후광을 쓴 제자들은 망연자실 하늘만 쳐다보는데 한 제자가 머뭇머뭇 손을 내밀어 자고 있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이 상황에 잠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도 주무시더니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라는 제자의 말을 듣고 바로 일어나십니다. 태연하게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과 호수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아주 고요해졌습니다. 고요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안의 모든 것도 고요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온전한 신뢰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우리의 깊은 심연의 공포, 불안, 두려움, 걱정의 자리 바로 그곳에 이미 생명의 샘이신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그분께 손을 내밀어 옷자락에 닿기만 하여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평화가 스며듭니다.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주무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숨어버리신 듯 아무리 찾아도 주님께서 보이지 않는다면, 달려가 그분의 새벽을 흔들어 깨웁시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분은 홀로 하느님과 함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위험에 처한 우리에게 물위라도 마른 땅처럼 달리며 어김없이 오십니다. 허나, 놀라지 않도록 합시다. 도우러 오시는 주님께서는 힘센 사자나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라 심하게 상처입으시어 오히려 돌봄이 필요한 사람으로 오십니다. “풍채도 위엄도 바랄 만한 모습도 없는”(이사 53,2) 바로 그 얼굴이 우리를 구원하는 얼굴입니다.

표지 사진 :독일 메셰데에서 나온 히타-고사본(1020년경)<바다 위의 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