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2월의 말씀

영원을 만지다.

“너

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말라 3장). 애타게 기다리던 주님, 성전이신 바로 그분께서 성전에 당신을 드러내실 때 성전의 기둥마냥 의연하게 굳건히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들, 천사의 소리에 순명하는 이들, 말씀을 위해 침묵하는 이들, 가난한 어둠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이들입니다. 향긋하고 좋은 포도주는 입술을 적시고 입 속으로 흘러들 듯(아가 7장), 의롭고 경건한 시메온의 질긴 그리움은 마침내 바로 그 곳에 닿았습니다. 성령 안으로 이끌린 그는 “하느님의 약속, 임마누엘”께 두 팔을 어좌로 내어드립니다. 시메온과 안나, 이미 육신의 눈은 흐려졌으나 한계 안으로 들어오시는 영원의 깊은 심연을 응시합니다. 올곧게 구원을 갈망하는 영적 눈은 위로의 빛으로 밝아져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오늘, 구원의 큰 빛을 내 눈으로 보노라.”(루카 2장).

사부 베네딕도는 “수도승은 비록 자기 부모로부터 어떤 물건이 보내왔더라도, 먼저 아빠스에게 알리지 않고서는 감히 그것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소유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겠지요. 서원의 삶을 사는 우리 수도승들은 몸과 마음을 원래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 드린 후, 이제는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도록, “주님의 뜻”을 지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지요. “제 영혼 전부를 쏟아내어 당신께 감사드리며 거룩한 서원을 발하면서 저를 온전히 당신께 맡깁니다.”(복녀 가브리엘라). 하루하루 서원을 채워가노라면 때론 엎어지고, 오롯이 서 있는 그들 이름을 부르며 전구를 청합니다. 성전 마룻바닥, “놀랍고도 새로우며 낯선 영원의 순간에 접촉한 그날, 종신서원 부복”의 은총과 공동체 자비의 그릇으로 샘물을 퍼 올립니다. 여전하나, 새로워진 일상을 열고 닫으며 설렘과 두려움, 떨림을 회복합니다. “주님,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어느 날, ‘나는 누군가의 모든 것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나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다’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의 날선 칼날에 마음도 정신도 찢겼습니다. 고개 들어 시메온의 예언(루카 2,35)을 듣는 성모님을 바라봅니다. 꿰찔린 영혼은 침묵 안으로 들어가고, 흔들림 없는 어머니의 겸손 앞에서 나의 교만은 흩어집니다. “너는 주님의 전부이며 주님 또한 너의 모든 것이란다.” 내 손을 당신 가슴의 눈물로 씻어 주시고 영원을 만지게 하여 주십니다. 함께 다시 걷게 하십니다.

두초(Duccio di Buoninsegna) 14C <성전에 봉헌되신 아기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