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2월의 말씀

 

번갈아 일어남

찾아오심과 찾음

 

경을 펼치면 온통 인간을 찾으시는 하느님, 하느님을 찾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내 얼굴을 찾아라.” “주님, 당신을 찾고 있나이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우리를 찾고 계시는 바로 그 하느님을 찾아야겠지요. 허나, 성 베르나르도도 말하지만 우리의 찾음은 우리를 찾으시는 그분께 대한 응답일 뿐입니다.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온전히 드러내시지만 다 볼 수도, 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매번 새롭게 이끄심에 의지하며 한 걸음을 뗄 뿐입니다. 알았던 것이, 알아야 할 것이 전부가 아님을 잊지 않으며, 부재와 현존의 시간이 계속될지라도 인내로이 숨바꼭질을 해야 하겠지요. “번갈아 일어남”(alternatio)에 대해 말하는 사부에게서 지혜를 얻습니다. “번갈아 일어나는 것 가운데, 마음은 그것들 중 하나에 더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동요되고, 두렵고 굉장히 격앙된다. … … 그분을 붙잡아 두려고 생각하자마자, 그분은 빠져나갔다. 그저 갑자기 그분은 붙잡힘에서 다시 벗어나기 때문이다.”

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름다우심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또한 아름다운 주님을 찾아 나서야겠지요. 오른쪽 그림을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저는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우선, 제목이 ‘승천’이 아니라 ‘변모’입니다. 가운데 바위를 두고 위와 아래가 너무 달라 두 그림을 붙여 놓은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십니다. 다음 날 내려오시어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아이를 ‘제자들 앞에서’ 고쳐주십니다. 이를 전하는 루카 복음 9장 28절부터 43절까지의 말씀과 그림을 함께 번갈아 천천히 읽고 보기를 반복하면 겹겹의 층 깊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그림 그리고 각자가 나누게 될 마음의 대화를 기대하며 감히 말을 덧붙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시면서 영광에 싸여 아름답게 변모하셨습니다. 이 아름다움은 제자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힘이 있고, 또한 산에서 내려와 추하다고까지 느껴질 우리 현실의 세상으로 오셔야 합니다. 마음이 사로잡히고 정신이 압도당한 아름다움에만 머무를 수 없고, 그림의 아래쪽을 외면하거나 눈을 감을 수도 없습니다. 적나라하게 묘사된 우리의 현실이 불확실하며 추하고, 아무런 인간적인 대책이 없어도 우리는 그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리가 진정으로 찾고 닿아야 하는 깊이와 궁극의 희망은 어쩌면 부재와 상실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치유하실 분은 위에 계신 우리 주님이심을 가리키는 사람의 손가락을 따라가, 영광에 싸여 구름 위에서 하얗게 빛나시며 변모하신 주님을 다시 한 번 바라봅시다. 주님의 양팔은 십자가에 매달리실 모습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의 아름다우심이 당신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십자가에서 온전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미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2월, 주님을 찾는 여정에서 또 하나의 Alternatio를 발견하신다면 좋겠습니다.

 

 

라파엘로, <주님의 거룩한 변모> 16c, 410×279cm, 바티칸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