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5월의 말씀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벽, 잠에서 깨우시니 독서기도를 바치기 위해 성당으로 갑니다. 움직이는 발과 눈을 뜨고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주님께서 기다리시며 우리를 당신께로 끌어당기시니 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복도에 달빛이 넘실거리고 안마당 위 하늘엔 별이란 별은 다 모여 멀리서 가까이에서 주님을 찬미하는 충만한 고요가 흘러넘칩니다. 우리 자매 중 어떤 이는 이 푸른 새벽, 가까움으로 다가오시는 주님 모습에 압도당하여 입회하였다고 합니다. 보물을 발견하였기에 가진 것 다 팔아 그 보물이 묻힌 밭을 산 것이지요. 불에 타는 데도, 타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주님께서 부르십니다(탈출 3장). 하느님의 산 호렙에서 당신 이름의 네 글자를 얼굴에 드러내시며 오직 모세만을 위하여 충만한 은총과 넘치는 기쁨 그 자체로 홀로 서 계십니다. “있다”는 놀라움, 전혀 뜻밖에 거기 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있음”에 경탄하며 대답합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가 절묘하게 만나는 영원의 순간입니다. 불꽃이 닿기만 해도 금방 타버릴 것 같은 덤불 속에 사시는 분께서(신명 33,16) 우리를 방문하시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림에서 구약 성경의 마지막 예언자 말라키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한 분이 아니시냐?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지 않으셨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말라 2,10). 모세를 부르신 주님께서 놀랍게도 오늘의 “나”를 건드리십니다.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시기 위해 “나”를 찾으시며 당신 가까이로 부르시고 사랑으로 끌어당기십니다. 온갖 풀과 꽃, 나무와 나무가 서로 기대며 출렁이는 신록의 아름다움을 빚는 5월, 잠시 멈추어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봅시다. 나의 크고 작은 일에 늘 함께 하시는 주님 얼굴을 발견할 것입니다. 구하여 주시고, 낫게 하여 주시고, 비탄을 춤으로 바꾸어주시는 주님께 시편 예언자와 함께 감사 기도를 노래하면 좋겠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노래하며 잠잠하지 않으오리다. 주 저의 하느님, 제가 당신을 영원히 찬송하오리다.”(시편 3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손을 뻗치시어 포옹하시고 나를 찾아 헤매시며 발견해 내시고 나를 불러주시고 초대하십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형제 자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도 꼭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더욱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진정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본회 전총장 베르나르도 올리베라). 부르시는 주님께 “예”라고 응답하며 그분의 길을 따릅시다. 두려움과 떨림은 어머니 성모님께 내어 맡깁시다. 어머니 슬하에 달려들어 도움을 애원하고 전구를 청하고도 버림받았다 함을 일찍이 아무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으시어 모두에게 넘치도록 충만한 당신의 선물을 누르고 흔들어서 후하게 주실 것입니다. 바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마르크 샤갈 (1968) <모세와 떨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