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3월의 말씀

하느님을 닮지 않은 방에서
빠져 나와

“행

 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로 큰 즐거움을 삼는 이!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정녕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의인은 영원한 기억으로 남으리라. 그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마음은 주님을 굳게 신뢰하네.”(시편 112). 시편 예언자의 이 노래에서 요셉 성인을 기억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는 침묵의 사람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보편적인 윤리, 도덕, 율법을 훌쩍 뛰어 넘은 사랑의 자리에 영원히 현존합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소돔을 내려다보는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듯이(창세 18,22), 낭패와 부조리한 현실을 맞닥뜨리는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나의 판단, 세상의 가치, 내적 욕망을 어떻게 거슬러 저항해야 하는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약자의 생명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를 배우라고 초대합니다. 요셉은 “남모르게”(마태 1,19)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어쩌면 의로운 그는 “더러운” 일에 연결되고 쉽지 않았나봅니다. 그러나 세상에 오시어 약한 것을 선택하시는 주님께서 요셉의 꿈에 당신 천사를 보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전혀 다른 길, 낯선 길을 선택합니다. 외로웠을 것입니다. 호적 등록을 위해 본향 베들레헴에 갔었건만 아는 이는 하나도 없고 몸 누일 여관방조차 얻지 못했습니다(루카 2,1-7). 자기 자신을 넘어(metabasis) 타인의 영역으로 들어가 기꺼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준 요셉을 하느님께서 친히 성령을 통하여 보호하십니다. “위험에서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시편 91). 꿈꾸는 능력을 지닌 요셉은 일몰, 밤의 시간에 하느님을 닮지 않은 방에서 빠져나와 하느님을 닮은 길을 걸어갑니다. 창조에 버금가는 능동적인 요셉의 숨은 응답이 없었다면 어머니 마리아와 아직 태중에 계신 우리 주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였기에 자신에게 일어난 독특하며 유일한 일을 진리 뒤편으로 묻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요구하시는 소명을 알아듣고 그대로 행하였기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위해 필요했던 마지막 “예”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경계를 정하여 소수자와 약자를 배척하며 심지어 혐오하는 이 시대야말로 “요셉”이 필요합니다. 타자를 보호하는 요셉의 자리에 우리가 들어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침이 오면,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두려워하지 마라.”고 인사를 건네시고, 주님 닮은 길을 따르도록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밤중과 새벽에는 아직도 제법 찬 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늦둥이 매화꽃잎이 허공에 기대어 향기를 뿜어 올리니 순간 하늘이 열리는 듯. 어머니 성모님의 마음에 기대어 함께 정성껏 기도 올립니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 속에 새겨져 있나이다.”(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화답송). 표지 사진 : 수정 수도원 큰 밭 매화 지거 쾨더(Sieger Köder, 1925~2015)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