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 trappkorea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11월의 말씀

리는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반드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아침과 저녁기도, 미사 때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그 이유를 “이는 흔히 일어나는 마음의 가책 때문이니, 기도문 가운데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언약을 바침으로써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허물에서 자신들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이다.”(규칙 13장) 라고 합니다. 우리를 참행복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10월의 말씀

처음에, 꼴을 갖추지 않은 땅은 황량하고 공허하였습니다. 바닥 모를 심연은 어둠에 덮여 있고 물은 일렁거립니다. “빛이 생겨라.”고 말씀하시기 전의 혼돈입니다. “어둠이 심연의 얼굴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 장엄하며 경이로운 혼돈입니다. 아름다운 명령의 말씀이 내리실 절묘한 그 순간을 “하느님의 영”이 머물고 견디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미리 모두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9월의 말씀

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더위와 추위, 빛과 어두움, 안개와 구름, 땅 위의 모든 것들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다니엘서 3장). 하늘 바람 곳간은 며칠째 열리지 않고 밤조차 낮처럼 뜨거운 날이 계속되고, 우리는 시간경 기도때마다 선풍기 날개 소리에 행여 시편 기도의 노래가 파묻히지 않도록 입술과 아랫배에 더욱 힘을 주었습니다. 그 여름도 지나갔군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릴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8월의 말씀

편 예언자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거듭거듭 “저희를 다시 일으켜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라고 기도합니다(시편 80편). 보고 싶은 얼굴, 듣고 싶은 소리가 따로 있는 것일까요? 어색하지 않게 손잡을 수 있을 만큼 친숙하며 부드러운 얼굴, 나의 꿈과 의지를 변경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부르심일까요? 그러나 정작 그분 얼굴, 그분 소리는 엄청 낯설고 당혹스럽고 모호하며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7월의 말씀

네딕도 성인은 “누가 수도 생활을 하고자 처음으로 찾아오면 그의 정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는지” 시험해보고, “그가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지(si revera Deum quaerit)”를 검증하고 식별할 것을 요청합니다(규칙서 58장).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합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시편 63,2 ; 42,2). 아름다운 성모 성월인 5월에 우리 공동체는 하느님을 찾는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6월의 말씀

새벽 산의 초록이 참 싱그럽습니다. “그리스도님, 여기 없는 이들과 앓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소기원을 바치고 독서기도를 끝낸 후 성당을 나오면, 이미 새들의 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 소리가 하늘을 두드리며 동녘 햇살을 깨우고 있습니다. 하루가 주님 안에서 열립니다. 촘촘한 그물로 맺어진 관계의 일상이 시작됩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애틋하지만 성가시기도 하고, 마주하고 싶지만 멀어지고, 온갖 겸손으로 순종하기도 하나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5월의 말씀

물이 찢어질 만큼, 두 척의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될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자 시몬 베드로는 그만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립니다(루카 5,1-11). 낯선 상황이네요. 어마어마한 양의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는 소리, 눈부신 비늘빛, 단지 억세게 운 좋은 날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닌가 봅니다. “몹시 놀란” 베드로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함께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4월의 말씀

처음, 땅은 텅 비었고 어둠이 덮인 깊은 심연 위에는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시간인 듯한 곳에서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주님에게서 받은 모든 것을 돌려드리고 마지막 남은 숨을 맡기고 계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의 재앙 앞에서 자식은 속수무책이었건만 하느님께서는 함께 가까이 계셨군요. 몸으로 낳은 자식들에게 살과 피를 남김없이 내어주고 이제 텅 비었습니다. 만지면 산산이 부서질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3월의 말씀

음서는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예언자는 “하느님의 가르침이 마음에 있어 걸음이 흔들리지 않는”(시편 37,31) 이를 의인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가슴속에”(시편 40,9) 즉, 내장속에 새긴 사람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새겨진 법을 버리는 것은 더더욱 어렵지요. 의로운 요셉은 가슴에 새겨진 율법, 앞날에 대한 자신의 계획, 세상의 이목에서 감히 이탈합니다. 같이 살기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2월의 말씀

대는 서둘러 나에게 빨리 오십시오. 데마스는 나를 버리고 …… 크레스켄스와 티토도 ……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2티모 4,9-16 참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리스도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긴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사도 역시 평범하고 일상적인 두려움, 불안, 정신적 고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