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4월의 말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처음, 땅은 텅 비었고 어둠이 덮인 깊은 심연 위에는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시간인 듯한 곳에서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주님에게서 받은 모든 것을 돌려드리고 마지막 남은 숨을 맡기고 계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 두기”의 재앙 앞에서 자식은 속수무책이었건만 하느님께서는 함께 가까이 계셨군요. 몸으로 낳은 자식들에게 살과 피를 남김없이 내어주고 이제 텅 비었습니다. 만지면 산산이 부서질 것같이 한 점 무게도 없고, 붙잡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빈손, 오직 통째로 삼킨 그리움만 목에 걸려 있습니다. “끝”인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의 모습입니다.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무덤으로 달려간 여인들이 본 “빈 무덤”을 생각합니다. 투명해지는 어둠을 뚫고 소리가 들립니다. “정녕 그대는 아름답구려, 나의 애인이여, 아름답구려.”(아가 4장). 신랑은 당신에 대한 애틋하고 오롯한 그리움을 간직한 신부를 맞이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생명의 시작입니다. 그 경이로운 돌문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그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그리움으로 열렸습니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며 밀쳐 댑니다(마르 5,24-34). 주님은 그 모두에게 한결같이 좋으신 분이시며, 자비는 당신의 모든 피조물 위에 미치십니다(시편 145,9).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련한 이와 넋이 꺾인 이, 당신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먼저 굽어보십니다(이사 66,2). 그 군중 속에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우상에 흔들리며 절뚝거리던(1열왕 18,26) 걸음을 멈추고 생명이신 한 분 주님께로 돌아섰습니다. 이제는 그분 뒤에 서서 자신의 고통을 내맡깁니다. 그러자 그분은 영원에서부터 마치 처음처럼 사랑으로 다가오시며 말을 건네십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마르 5,30).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하늘은 땅에 닿아, 하느님을 외면한 채 쏟아부었던 헛되고 무의미한 고생을 유의미로 바꾸어 주십니다. 치유된 여인은 분명 주님의 그 눈길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아파하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다정한 말을 건네고 이웃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은총은 그렇게 닮아가고 부활의 “알렐루야!”처럼 퍼져나가는 것이니까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백성의 큰 무리도 따라갔고, 그중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면서도(루카 23,27), 자신의 슬픔에 함몰되지 않은 한 여인이 있습니다. 베로니카, 그녀는 자신이 겪는 고통에서 빠져나와 예수님의 고통에 다가갔습니다. 자신의 눈물보다는 타인의 눈물과 땀, 피를 닦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수건에 당신 얼굴을 인장처럼 새겨주십니다. 고통(passio)의 땅에서 연민(compassio)을 발견하는 용기있는 이들에 의해 땅은 열려 구원의 꽃이 피어납니다(이사 45,8). 바로 이 부활의 자리, 인간의 울음과 하느님의 울음이 만나 의로움이 열매 맺습니다. “누가 내 헐벗은 몸에 옷을 입혀 주었느냐? 누가 굶주리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누가 내 갇힌 몸을 풀어 주었느냐?”(마태 25,31-46). 고통을 돌본 이에게 새겨진 그 얼굴은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빛이 되는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엘 그레코 / 베로니카의 베일에 새겨진 예수님의 얼굴(16C) / 톨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