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9월의 말씀

다 함께 탄식
다 함께 기도

“불

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더위와 추위, 빛과 어두움, 안개와 구름, 땅 위의 모든 것들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다니엘서 3장). 하늘 바람 곳간은 며칠째 열리지 않고 밤조차 낮처럼 뜨거운 날이 계속되고, 우리는 시간경 기도때마다 선풍기 날개 소리에 행여 시편 기도의 노래가 파묻히지 않도록 입술과 아랫배에 더욱 힘을 주었습니다. 그 여름도 지나갔군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릴 때면 옷의 소금꽃을 씻어 말리며 기도합니다. “이 모든 고난과 위험도 이렇게 깨끗이 씻어 주소서.” 초록 꽃대를 쑤욱 뻗으며 순백의 향을 퍼뜨리던 수도원 길섶의 백합들도 9월 햇살 아래에서 시들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낯선 새 한 마리 텅 빈 안마당에서 콕콕콕 언 땅을 두드리더니 늦봄부터는 식구들을 데리고 여기서 지냅니다. 책에서 이름을 찾으니 후투티! 텃새인 딱새들은 낯섦과 다름을 내치지 않고 함께 어울립니다. “기도와 일”을 졸음의 바다에 빠뜨리던 어느 날, 긴 부리로 창문을 톡톡, 고개 드니 신비한 머리 깃털을 세우고 흑백의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건너편 벚나무로 날아갑니다. 고맙다, 새야. 봉쇄의 일상은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탄식하는”(로마 8,22) 희망의 기도에 끊임없이 동참하는 것임을 새삼 퍼뜩 깨닫습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나에게 다다랐다.”(탈출 3,7-9).

지금 비록 비탄과 애통 속에 있어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숨과 탄식, 울음과 통곡, 말도 아닌 옹알이일지라도 성령께서는 다 들으시고 우리 안에서 기도하십니다(로마 8,26-27). 그리고 순교 성인들의 삶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탄식하는 우리의 기도에 함께 하여 주시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죽음 앞에서 남긴 한 마디 한 마디는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내 일생에 누님만큼 천주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오. …… 내 죄가 무수하다면 또 한편으로는 천주의 자비도 끝이 없으니 이것이 내 오직 하나의 희망이오. 내 힘만 가지고는 한순간이라도 꿋꿋이 견디지 못했을 거요. 참말이지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 힘은 아무것도 아니고 천주의 보호하심이 모든 것을 이룬다는 것을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인정하오.”(순교자 이 순이의 동생 이 경언의 옥중서한).

시들어 버릴 꽃이 늘 다시 피는 것도, 새가 나는 것도 사랑하는 존재를 향한, 가야 할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있어서입니다. 시련 속에서도 그 그리움 한 자락은 놓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깊은 구렁의 짙은 어둠보다 더 질기고 강하게 당신의 심연에서 우리를 끌어당기며 기다리고 갈망하는 그분께서 우리를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산들이 밀초처럼 녹아내리듯”(시편 97,5) 온 땅의 재앙도 마침내 끝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느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히브 5,7) 올리셨습니다. 성부께서도 사랑하시는 당신의 외아들을 죽음에 던지심으로써 온전히 죽음에서 부활시키시고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자녀로 차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음이 시작된 거기에서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패배한 인간을 나무에서 승리하게 하셨나이다.”(성 십자가 현양 축일 감사송).

알브레히트 뒤러 / 1520 / 의자 위의 성모님과 아기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