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5월의 말씀

만남,
두려움과 끌림

물이 찢어질 만큼, 두 척의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될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자 시몬 베드로는 그만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립니다(루카 5,1-11). 낯선 상황이네요. 어마어마한 양의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는 소리, 눈부신 비늘빛, 단지 억세게 운 좋은 날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닌가 봅니다. “몹시 놀란” 베드로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함께 일하던 어부들 중에는 두려움을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친 이들도 있었겠지요. “두려워하지 마라.” 베드로는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과연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난 것일까요?

누군가, 무엇인가를 대면하여 잠시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바로 그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세(탈출 3,1-6), 이사야(이사 6장), 의로운 요셉(마태 1,18-2,23), 파트모스 섬의 요한(묵시 1,9-20)이 그러합니다. 이들은 다소 차이는 있을지라도 무시무시한 두려움의 신비(mysterium tremendum) 앞에 압도당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신비(mysterium fascinans)에 깊이 이끌리어 자기의 실존과 운명을 내어 맡깁니다.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다가갑니다. 그리하여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응답하며 경외로운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나가 됩니다. 이러한 체험은 몇몇 선택된 이들만의 것일까요? 탈출기 19장을 읽으면 모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무서우리만큼 놀라운 하느님의 두려운 현존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느님을 배반하고 또 배반하여 주님을 분노케 합니다.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모세와는 다르게 “멀찍이 서 있었습니다.” 이 말을 성경은 두 번씩이나 전합니다(탈출 20,18.21). 죽음의 공포, 마지막 순간의 뒷걸음 때문에 하느님의 바다가 아닌 불안의 늪으로 빠져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경험에도 크든 작든 “몹시 놀라는”(루카 1,29) 낯설고 두려운 일이 생깁니다. 한낱 피조물인 인간의 약함과 불안, 때론 경외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과 불신 때문에 쉬운 길, 익숙한 자기 중심성으로 도망가기도 하지요. 경험을 정직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응시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하신 성모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그 경험이 두렵고도 떨리는, 그러나 한없이 매혹적인 하느님의 신비와 만나는 초대임을 알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께서 아무 자격 없는 나를 당신의 자비 안으로 맞아주셨기에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앞에서 기뻐 뛰나이다.”라고 노래할 수 있기를. 무엇에도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고, 오직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아버지 하느님께 매인 사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안드레아 델라 로비아 / 성모 영모 (15C) / 테라코타 / 라 베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