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11월의 말씀

행복하여라,
용서하는 사람아!

리는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반드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아침과 저녁기도, 미사 때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그 이유를 “이는 흔히 일어나는 마음의 가책 때문이니, 기도문 가운데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언약을 바침으로써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허물에서 자신들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이다.”(규칙 13장) 라고 합니다. 우리를 참행복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고 말씀하십니다. 행한 대로 되돌려 받는 이 자비는 용서입니다. “행복하여라, 용서하는 사람들! 그들은 용서받을 것이다.” 남을 심판하거나 섣불리 유죄판결을 하지 않으며 용서의 마음을 지닌 자비 깊은 사람은 하느님을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기도가 아니면”(마르 9,29)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벙어리, 귀머거리의 더러운 영이 우리에게 달라붙어서 용서를 청할 용기와 받아들일 겸손한 입과 귀를 막아버리니까요. 용서할 대상은 이미 없는데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응어리가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알아차릴 때는 주님께로 피신하여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 달라붙어야지요. “주님, 믿음을 주소서.”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이면 아무리 큰 증오의 산도 주님 자비의 바다에 던져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가능합니다. “주님은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신 분,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신 분.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신 분,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 위에 미치기”(시편 145,8-9)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우러 오시면 울게 됩니다. 가까이 오시어 당신 현존의 향기로 우리 죄를 어루만져주시면 더 많은 눈물이 흐릅니다. 그 눈물은 기도입니다. 양식입니다(시편 42,4). 눈물의 빵은 우리의 믿음을 튼실하게 지켜주는 거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심으로써 사랑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이 덮인 이!”(시편 32,1). 크게 탕감받은 사람은 더 극진한 사랑을 드러냅니다(루카 7,36-50). 그는 예물을 놓아두고 서둘러 달려갑니다(마태 5,23-24). 이제 주님께로 함께 달려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지난 9월에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도가 우리 수도원의 성전을 가득 채웠습니다. 수도 서원 50년에 이른 젬마 수녀의 금경축을 기쁨으로 함께 기념한 미사의 감사송은 우리 서원의 길이 더 철저한 “그리스도 추종”이기를 재촉하였습니다. “동정녀의 뿌리에서 피어나신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시며 완전한 정결의 삶을 몸소 보여 주셨나이다. 또한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받드시고 저희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시며 순종하시어 당신을 가장 감미로운 제물로 아버지께 봉헌하셨나이다.” 아빠, 아버지!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소서. 온누리의 임금이신 평화의 왕께서 오시면 일용할 양식, 용서 그리고 구원이 저희 모두에게 흘러넘칠 것을 믿나이다.

프라 안젤리코 / 십자가의 그리스도 <표지 : 뒤러의 기도하는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