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 trappist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10월의 말씀

창한 숲 속에 누워 키 큰 나무들의 꼭대기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하늘에 닿은 가지들은 서로에게 햇볕이 잘 들도록 살짝 살짝 옆으로 자리를 양보하고 배려하여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놀랍도록 신비한 사랑의 질서입니다. 어느 나무의 잎들도 다른 잎에 내리는 햇볕을 탐내지 않고 방해하지 않습니다. 자연 과학자들은 이를 ‘Crown Shyness’(산꼭대기의 수줍음)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넉넉하며 한결같으신 사랑에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9월의 말씀

하느님, 당신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얼굴 위에 드러난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놀라운 당신의 은총!”(아틀라스 순교자 셀레스탱의 편지). 바다로 흘러가는 맑고 깊은 강물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은 결코 그 강에 시멘트를 쏟아 붓지는 못할 것이며, 폐수를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꿀을 빨면서도 꽃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 벌의 모습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은 타자를 넘어뜨리고 속이고 소외시키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어리석은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8월의 말씀

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니코데모는 예수님을 그곳에 모셨다.”(요한 19). 우리 수정 공동체는 지난 6월 24일, 창립자 중 한 분인 안드레아 수녀님을 수도원 안마당에 모셨습니다. 상실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이끄시며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의 놀라운 선물에 감사드리며 기뻐합니다. 우리도 “영원한 전구자”를 […]

너른 들

    너른 들   스러지는 법 작아지는 법 오해 속에 변명 않는 법 오류를 묵묵히 견디는 법 죽는 법   너른 들로 이끄신 손길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4년 5월의 말씀

  라 초상화입니다. 이 그림을 처음 대했을 때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아마도 이해되지 않을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십년 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집트 미라들만 전시된 방을 구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방 가득 미라들만! 그런 방이 몇 개나 되었던지? 이어진 여러 개의 방들 속 그 수많은 미라들, 으스스 썰렁했던 것은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4년 4월의 말씀

  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 석 창우 화백의 그림과의 첫 대면, 설명이 필요없이 그대로 마음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힘, 생명이라는 말이 이렇게 찰떡같이 붙는 그림, 만나기 쉽지 않지요. 이 화백의 모든 그림은 의자에 앉은 사람을 묘사한 것마저도 날아오를 듯 합니다. 이 힘, 이 생명력! 저기 저쪽에 있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힘참이 아니라,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4년 3월의 말씀

  한스 히르츠의 그림입니다.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습니다. 얽히고설키어 마치 맹목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한 방향을 향해 가는 벌레들의 무리같이 느껴지는 것은 좀 지나친 일일까요? 분기탱천하여 “예수”라는 공공의 적을 한 마리 짐승처럼 끌고갑니다. 너도 나도 서로 끌고가겠다고 아귀다툼, 아우성이 천지를 진동할 것 같습니다. 창과 칼, 쇠못 방망이까지 동원하고 갑옷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나섰는데, 대체 무엇을 무찌르겠다는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4년 2월의 말씀

  자가를 대하는 모습은 그 사람의 신앙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자이면서도 십자고상을 옆에 두는 것도 꺼림칙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가까이 하면 고난, 불행 같은 것이 자신에게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 덮친답니다. 반면에 어떤 성인들은 단식과 고행을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행으로 몸을 혹독하게 대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