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9년 12월의 말씀

하느님의 약속, 임마누엘

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보시니 그 빛이 좋았습니다(창세 1,3).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 중 유일하게 “빛”만이 “좋다”라는 서술어를 가지고 있네요! 빛 중의 빛이 오늘 우리에게 아기로 오셨습니다. 이 빛은 다른 빛들을 없애거나 흩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 곁으로 하나되게 모으십니다.

방에서 본 별(자연의 빛)이 박사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박사들(이성의 빛)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9-11). 지혜롭고 똑똑하다는 박사들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세상의 크고 힘있는 권력 앞에서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고, 이웃으로부터 소외당하여 변두리에 내몰린 “목동”들도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달려갑니다. 우리도 함께 달려가 빛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며 기억하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배고픈 이들, 까닭없이 고통받고 아파하는 이들,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 삶의 의미를 모르며 절망 속에 사는 이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과 울음을 멈출 수 없는 그 가족들을 가슴에 담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낯선 목소리에 귀기울여 마음을 열고 한 걸음 내딛고 먼저 손을 내밀면,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시간”은 우리 모두를 위한 “구원의 오늘”이 됩니다.

디 내 말을 들어라, 너에게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너는 낯선 신을 경배해서는 아니 된다. 내가 주님, 너의 하느님이다. 너를 이집트 땅에서 끌어 올린 이다.”(시편 81,10-11). “나 이제, 둥지 위를 맴도는 새들처럼 너희를 지켜 주리라. 지키고 건져 주며 감싸고 구원해 주리라.”(이사 31,5). 어느 신에게서 이렇게 애절하게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분을 만날 수 있겠는지요? 동구 밖에서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느님, 하느님께서 인간을 찾으시는 방법은 신적 사랑의 인내, 오직 “기다림”이십니다. 이제 그 기다림이 궁극에 달하여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함께 있겠다는 당신 자비의 약속은 돌봄, 베풂을 초월하여 입장의 동일화를 취하셨습니다. “사람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아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꿈이 아닙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사랑이며 어둠을 밝힐 유일한 빛이십니다.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등불이 되어 주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여. 저희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Champaigne, Philippe de <목동들의 경배> 1630 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