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1월의 말씀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

님, 저의 힘이시여.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저의 하느님이십니다.”(시편 18). 고백을 받는 이는 행복하겠지요. 허나 더 큰 행복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음이 그것입니다. 또한 그 고백이 받아들여졌다면 온 세상을 얻는 기쁨이겠지요. 그런데 “나의 고백”이 아니라 바로 “나”를 이미 먼저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면!

새로운 한 해, 동녘의 햇살이 비치는 길을 따라 아래로, 낮은 곳으로 마음을 움직여 땅을 느끼고,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일출의 하늘이 아직 캄캄하고, 소외되어 배척당하는 두려움 때문에 닫힌 문 안에서 떨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죽음의 오랏줄이 나를 두르고 멸망의 급류가 나를 들이쳤으며, 저승의 오랏줄이 나를 휘감고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덮쳤네.”(시편 18). 구체적인 상황은 다를지라도 시편 예언자의 하소연과 울부짖음이 바로 그들의 통곡입니다. 주저앉은 이들에게 다가가 함께 소리 높여 주님을 부릅시다.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저를 버리지 마소서. 당신의 길을 저에게 가르쳐주소서.”(시편 27). “당신을 뵙고 싶어서 죽든지, 당신을 뵙고 나서 죽든지 상관없습니다.”(12세기 시토회 수도승 생 티에르 윌리엄). 예언자들과 우리보다 앞서 신앙을 고백했던 이들의 타오르는 열망은 하늘 구름이 되어 우리 위에 은총의 비를 내려줄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아픔에도 불구하고 스며드는 희망으로 마음땅이 따뜻해지겠지요. 삶이란 혼자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함께 사는 경이로운 선물임을 알아차리게 되지요. 함께 그분을 갈망하고 그분을 찾으면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입을 한껏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시편 81,11).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자비가 필요한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을 여전히 먼저 선택하시어 자애로이 바라보시고 꽉 껴안으십니다. 마음이 부서지고 고통 중에 넋이 꺾인 이들에게 아무런 이유없이 한계도 조건도 없이 당신을 내어주십니다. 말씀 자체이신 분께서 그러하듯 성경의 말씀 역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기에 앞서 이미 그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복음, “기쁜 소식”인 것이지요. 믿음 안에서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먹으며, 말씀 안에서 사랑으로 기도드릴 때 우리는 시편 예언자와 함께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주님, 정녕 당신께서 저의 등불을 밝히십니다. 저의 하느님께서 저의 어둠을 밝혀 주십니다. 정녕 당신의 도우심으로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시편 18).

지거 쾨더(Sieger Köder,1925~2015)<하느님과 함께 성벽을 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