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4년 5월의 말씀
영원한 생명 죽음의 공포
미
라 초상화입니다. 이 그림을 처음 대했을 때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면 아마도 이해되지 않을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십년 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집트 미라들만 전시된 방을 구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방 가득 미라들만! 그런 방이 몇 개나 되었던지? 이어진 여러 개의 방들 속 그 수많은 미라들, 으스스 썰렁했던 것은 죽은 몸들로 꽉 차 있는 느낌도 물론 있었겠지만, 영원히 살겠노라 온갖 처리 다해서 뉘여 놓았건만 바다 건너 이국까지 끌려와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 노출될 줄 죽은 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루브르만이 아니라 영국 국립박물관에는 여기 못지않게 더 많은 이들을 고이 모셔 놓았다(?)고 하네요. 이집트 박물관은 물론,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덴마크 국립박물관 그리고 스웨덴 국립 박물관에도 미라들이 있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미라들이 있을지? 아마 조사해보면 이보다 더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루브르에 누워있는 혹은 가끔 세워놓은 수많은 미라들은 거의 해골에 가까운 모습이라 키 외에는 차이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좀 망측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것 저것 구별하기 어려운 바짝 마른 명태, 더도 덜도 아닌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이 미라 여인의 초상을 보았을 때(보통 미라와 함께 초상화도 넣었다고 한다.) 그 바짝 마른 모습과는 도무지 연결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만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저 큰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습니다. 꼭 다문 입 때문에 눈에서 말하는 것이 더 강하게 전달되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니 그녀를 그린 화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요? 영원히 살기를 갈망하고 죽은 몸마저 보존했던 이들의 가슴에 타올랐던 불꽃, 영원한 삶에 대한 열망은 세대를 불문하고 누구의 가슴에나 타오르는 불일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있는 불로초 찾는 임금, 진시황은 기원 전 259년경에 태어난 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묘하게도 이 그림 또한 기원 전2-3세기 경 그려졌다고 하니 비슷한 시기 이집트와 중국에서 함께 타올랐던 그 불은 지금 우리 각자 안에도 타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신도 별 것 아니라 큰소리치는 지금까지도 진시황의 불로초가 어떤 것이냐에 대해 연구하는 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미라와 불로초는 어쩌면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보다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삶에 대한 집착만큼 영원한 생명과 거리가 먼 것도 없을 것입니다. 방부제로 썩어 없어지는 것을 영원히 막고, 불로장생하게 해줄 약초를 구한다 한들, 지금 이대로 영원히 사는 것이 축복일까요?
이 여인의 눈빛에는 표현하기 힘든 두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인의 눈빛일 수도, 화가의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둘 모두의 것, 우리 모두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긴낫을 휘두르고, 검은 두건 속에 자신을 감추면서도 교묘히 자신을 슬쩍 보여주는 검은 죽음의 사신 앞에 오싹함으로 떨고 있는 우리에게 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생명을 얻고자 하는 이는 그것을 잃고,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는 이는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이대로 나만 복되게, 온갖 것 소유하며 길게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의 생명, 자신을 온전히 내놓는 생명에 참여하는 것임을 믿는 이의 행복, 배짱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