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집 6

진보와 보수가 함께 연대하는 집

 

“투쟁과 묵상은 같은 원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대가 기도한다면 그것은 사랑에서 비롯한 것이며, 그대가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책임을 감당하면서 투쟁한다면 그것 역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떼제의 로제 수사-연대를 일구는 사람).

교회는 늘 이 양자가 공존하는 집이다. 성서의 인물사에서 신약과 구약의 획을 긋는 세례자 요한을 나는 특별히 좋아한다. 그를 엄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는 음악가의 보호자로 간주되고 있다. 요한의 찬가 Ut queant laxis 로 계명법(Sol-mi-sation)이 급속히 보급되었다.

악보

                              Ut(=Do) que-ant la-xis  re-so-na-re fi-bris             Mi– ra ge-sto-rum               Fa-mu-li ……

요한은 지금의 한국 교회 상황에서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 음악가의 주보일만큼 감미로운 사람이요, 사막으로 피해가 기도하며 고행하는 은둔 수도승이요, 때가 차자 사람들에게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을 가리킨 요한이 무엇 때문에 희생되었는가?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정치권 인사인 왕에 대해 지적한 단순하고 사실인 말 때문이었다. 우리 시대에도 이 말을 외칠 사람이 교회 안에 필요하다. 세월호가 침몰해가는 7시간 동안 지도자가 어디에 있었는가? 밝혀지지 않은 이 사실에 대해 “당신이 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라고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지게 해야 한다.

교회는 진보와 보수의 양날개로 날아오를 수 있지, 한쪽 날개의 퍼덕임을 꺽어버리면 날아오르지 못한다. 부도덕함에 대한 지적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사랑”이라고 교황이 표현한 영역과 맞닿을 수밖에 없다.

북한과의 관계 안에서 정부를 견제하고 교육하는 사람이 교회일 수밖에 없게 될 때, 교회는 정부를 거슬러 당연한 불법까지도 감행해야 할 것이다. 진보적 그룹이 이 일들을 수행해 나갈 때 배수진을 치며 보호할 온화한 보수 그룹이 어른으로 있으면 교회는 교회 밖 양떼에게 그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올 때를 예상하며 많은 이들이, 국민적 추앙을 받았던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한다. 성 베르나르도가 어려운 시대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국가 권력자의 조언자요 대항자였으며, 교회의 목자인 동시에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개입으로 교회 밖 사람들의 목자이기도 했다. 로마를 방문했을 때 그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왜 사제들이 사회 문제에 관여합니까?”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전한다. “왜 사제들이 사회문제에 관여하는가를 묻기 이전에, 그럴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상황이 어떠한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육영수 여사는 자주 나를 박 대통령과 만나게 했다.” 현명한 여인이었던 이 영부인은 남편 주위에 옳은 말을 해줄 사람을 두고자 했던 것이다. 추기경은 정신적 지주였던 부인의 죽음 이후 박 대통령이 더 곤두박질쳐 갔다고 말한다. 그가 지도자층과 어떤 교류를 가졌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학생들이 데모하다 명동성당으로 피해 들어오자 추격해 들어온 경찰에게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먼저 맨 앞에 있는 나를 잡아가고, 내 뒤에 서 있을 사제들을 잡아가고, 그 뒤에 있을 수녀들을 잡아간 후에야, 학생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윤락가에서 몸을 팔던 여인들의 재활을 돕는 “막달레나의 집”에 사복을 입고 들르곤 했는데, 무릎에 벌렁 눕기까지 하던 어느 자매의 몸짓에도 절도를 갖춘 자애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그의 서재에는 기인 중광스님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최종태 화가가 그 방에 들렀을 때 그림에 대한 평가를 묻자 ‘그는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했다는 화가와의 일화가 전해진다. 추기경은 “나에게도 불교의 피가 흐른다.”라는 말을 했는데 종교간 대화에 대한 그의 열린 자세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전 국민적 추모행렬이 이어졌던 것은 교회 안에서 진보와 보수를 아울렀던 그의 넓은 품 때문이었고, 교회 밖의 양떼에게 지극한 관심을 기울이며 어려운 사회문제에 약자를 위한 횃불을 밝혀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교회는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하느님께 신성한 존재인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 서서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며, 북한과의 관계문제에서 정부의 박해를 각오하고 북한에의 지원과 대화를 터나갈 지도층이 필요하다.

노련한 정치가였던 김대중은 “수구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곧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라는 두려운 말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지금 우리 시대가 그러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교회와 세상을 향해 취했던 자세가 그립고 절실한 이유이다.

밭 담당을 하던 시기에 멧돼지에 대한 전의(戰意)에 불타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모든 농부가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공동의 집 5

 

유순하고 겁 많기 그지없는 아이 – 멧돼지

 

밭 담당을 하던 시기에 멧돼지에 대한 전의(戰意)에 불타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모든 농부가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고구마가 한창 커가던 시절, 수확시기를 생각하며 흐뭇함에 젖어 일하러 나간 밭에 전날 밤 멧돼지가 다녀가셨다. 고구마 밭은 엉망으로 뒤집혀 있었고 무성히 자란 잎사귀로 덮인 밭에서는 아무런 수확물도 나오지 않았다. 밤마다 내려와서 무화과 나무 밑을 파헤쳐 뿌리를 드러내놓고, 매실밭 거름 준 것을 난장판을 만들고, 죽순도 다 캐먹고, 잔디밭을 뒤집어엎고 … 기가 막혀서!! 그 녀석들이 입힌 피해를 어찌 다 일컬으랴! “빌어먹을 놈들! 내 멧돼지 바베규를 해 먹으며 이 원한을 갚고야 말리라!”

최근 멧돼지가 도심까지 출현하며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거나 농부들을 공격하여 부상을 입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무엇이 멧돼지로 하여금 사람을 공격하게 했으며 도심을 활보하게 했을까. 상위 포식자가 없어 개체 수가 늘어난 까닭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과 책임은 역시 인간에게 있다.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전까지 숲은 야생동물의 터전이었다. 사람들이 영역을 넓히면서 상대적으로 야생동물의 영토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 아래 잡목으로 이루어진 구릉지는 야생동물과 사람과의 완충지대로 DMZ, 즉 비무장지대인 셈인데, 이 비무장지대를 인간이 개발하고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분쟁은 시작된 것이다. 도로 건설로 인해 동물들의 이동을 차단한 것도 한 원인이다. 이동 통로를 잃은 동물들은 도로로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빈번한 로드킬Road kill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저돌적(豬突的)이라는 말이 있다. 성난 멧돼지가 들이닥치듯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멧돼지는 의심도 많고 겁도 많다. 평소에는 사람을 먼저 발견하고 먼저 피하는 순한 녀석이다.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할 때는 짝짓기 때와 새끼를 데리고 다닐 때다. 짝짓기 시기에 갑자기 등장한 사람은 암컷을 해치려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게 멧돼지의 습성이다(‘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中 겁 많은 멧돼지-도연스님 著).

나의 불타는 전의를 시들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하는 것은 언제나 이 진실이다. 모든 게 멧돼지 탓이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탓이다. 상위 포식자인 호랑이를 멸종시킨 것도 우리요, 도로를 끝없이 뚫는 것도 우리다. 멧돼지를 집단 살육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더 큰 생태계 교란을 가져올 것이다. 원래의 생태계 질서를 되돌려 주는 것, 언제나 이 시각에서 시작하고 마쳐야 한다.

우리 뒷산을 오르다보면 심심치 않게 멧돼지와 마주친다. 약간의 위협적인 울음소리로 내게 공포심을 일으킨 것 외에 아직까지 그 애는 나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나만 보면 산이 뒤흔들릴 정도로 줄행랑을 치기에. 내가 너무 저돌적豬突的이라서 그런가?!

공동의 집4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원전보유와 핵무기가 국가의 가장 큰 방위(防衛)와 에너지원이라고 믿는 우리 시대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을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이 되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와 국민의 생명위협, 그것도 한 세대에 끝나지 않는 지속적인 고통을 유발한다는 핵폭탄 선언과도 같은 경종을 울렸다. 역사상 가장 큰 원전사고로 불리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11배 규모요, 세계에서 기술력이 가장 탁월하다고 불리는 일본에서 발생한 원전사고! 많은 나라가 이 일에서 배우고 원전이 아닌 안전한 에너지원에로 돌아서는데 불행히도 우리나라와 중국 등의 정부는 여기서 배우지 못한다. 이것은 다음 원전사고 대상지가 우리나라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환경연합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전임 일본 총리 간 나오토는 원전 이후의 자신의 변화된 마음을, 예언자적인 예리함과 겸손함으로 말한다. 총리직 수행 시 일어난 이 큰 사고에서, 국민을 책임지는 사람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그릇된 원전에너지 중심적 사고가 이 큰 사고를 불러오는 데 일조했음을 인정하며, 미래 세대를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지진 당시 일본에는 54개의 원전이 있었다. 사고 후 지난 1년 반 동안 원전을 단 1기도 가동하지 않았다. 1W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은 부족하지 않았다. 국민 경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다. 절전하며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업과 개인이 사용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광열비 0인 주택을 짓고, 조명도 LED를 사용하며, 지붕에 솔라판을 설치하여 에너지가 자급되는 집이 판매되고 있다. 기업들이 위험도가 낮은 화력을 이용한 자가발전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태양광을 이용한 신재생 에너지로 전체 전력의 30%를 충당하는 독일은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이며 2050년까지 에너지의 80%를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이 나라들은 신재생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사용 개발하고, 부족 부분은 멈춤이 쉬운 화력 발전소에서 충당한다. 이러한 기술이 차세대 에너지원이 될 것이므로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기술보유에 있어 후진국이 될 것이다. 17세기까지 인류는 목재 에너지를 사용했으며, 18세기에는 석탄, 19-20세기에는 석유를 사용했다. 원전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것은 최근 70년 전부터이다. 그 사이에 이루어진 환경파괴는 끔찍할 정도이며 피폭된 인류가족들이 세대에서 세대를 거쳐 겪을 고통도 가혹한 것이다.

21세기가 끝날 때는 신재생 에너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값싸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비롯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간 원전은, 싸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위험성을 간과한 채 꾸준히 독보적 에너지원 자리를 차지해 왔으나 그 사후관리가 10만년에 이른다. 이 처리비용을 생각하면 결코 싼 에너지원이 아니며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부담은 너무 큰 것이다. 원전은 이미 낡은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도 원전을 줄여가기 때문에 개발 기술이 점점 뒤떨어져 가고 있다.

일본에서도 이미 수소 연료를 이용한 도유타 자동차가 발매되고 있다. 꿈이 아니다. 아직 조금 비싸지만 미래를 여는 자동차가 될 것이다. 이 수소는 풍력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 함께 조금씩 절전해가며 신재생에너지 연구에로 방향을 전환할 때이다. 이 신재생 에너지가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는 마음 아파하며 아베정부가 원전에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히틀러의 유럽지배를 막기 위한 무기로 미국에서 개발되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주민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거친 이 비인도적 살상무기가 에너지원인 원자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과학적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고 히로시마 주민들의 피폭 결과가 철저하게 비공개로 숨겨졌다. 방사능을 맞으면 마치 총을 맞은 듯 DNA 구조가 한 번 흩어졌다가 다시 결합하는 과정에서 각종 기형을 유발하고 암이나 백혈병 같은 심각한 병에 쉽게 걸리게 된다는 정보들이 제대로 주어졌다면 인류 전체가 이 일을 막기 위해 연대했을 것이지만 모든 것은 철저히 숨겨진 채 진행되었다.

일본의 정경구조를 보아도 이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도쿄전력과 정치인 간에는 정경유착 관계가 맺어져 있다. 문제는 은퇴한 정치가가 도쿄전력의 간부가 되고, 도쿄전력에서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이 100여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언론까지 연결되어 있다. 그 힘은 상상을 능가한다. 히로시마 원전사고 후 도쿄전력측은 아무런 책임자 처벌을 받지 않았다.

아인슈타인도 일한 적이 있는 원자력 연구 세계 최고기관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물리 책임자 Hans peter durr는 말한다. “과학적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인류가 경험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나를 포함해서 해결할 만한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Helen caldicott 역시 말한다. “5년 내지 15년 사이에 나타날 피폭 숫자는 관동지방의 인구밀도로 생각할 때, 수백만 명에 달할 것입니다.” 미국의 로무 아이트 상원의원 또한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을 시찰하고 쇼크를 받았다. 위기감이 없다. 도쿄전력이 말하듯이 연료봉 이동에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그 사이 지진이 온다면 섬뜩하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은 방사능 양으로 치면 핵발전소 1개의 1000분의 1밖에 안된다. 후쿠시마 사고는 원자폭탄 몇 천개가 터진 것과 비슷한 방사능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핵폭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죽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4호기에 문제가 생기면 히로시마 원폭의 5-10만발 정도가 된다.

국립 암센터 암전문의 니시오 마사미치왕의 인터뷰 내용이다. “정부에서 어린이가 1년에 피폭당할 때의 최대 허용선량을 간단하게 20배로 높인 것과 식품에 함유된 방사성 물질의 허용량 끌어올리기에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기준치를 설정하고 있으니 기준치 이하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검사를 받은 아동의 40%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2013년 7월 18일자 뉴스는 전한다. “최고농도 방사능 수증기가 공기 중으로 유출되고 있다. 시간당 2000밀리시버트의 방사능이 유출되는데 이것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이 녹아내린 뒤의 방사능 수치와 같다. 1밀리시버트는 성인 기준 1년간 허용된 방사능 한계치이다. 그런데 시간당 2000밀리시버트씩 공기 중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사능 수증기가 단지 거기에만 머물러 있을까?

방사능 오염수가 계속 바다 쪽으로 유출되고 있다. 도쿄전력은 차단했다고 방송하고 있지만 해결책이 없는 상태이다. 영토의 70%가 방사능 피해지역이다. 이것은 세기를 두고 기형생태계와 기형아 속출, 암같은 심각한 질병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시대인이 문제가 아니고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셋슘(방사능) 수치가 높은 수산물이 잡히고 있다. 얼마 전 방사능 기준치 250배가 넘는 물고기가 잡혔다. 정부는 기준치 이하를 설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의학적인 안전 기준치가 아니다. 음식을 통한 내부피폭이 체르노빌 방사능 환자의 90%였는데, 이것은 음식을 통해 들어가 내부에서 증식을 하기 때문이다.

행성 탐사의 난제 해결과 핵전쟁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NASA 훈장을 수상한<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1934-1996)이 말하는 핵의 위험성에 관한 논지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핵전쟁을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핵 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은 단 한 나라도 빠짐없이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누구나 핵전쟁이 미친 짓이라고 알고 있지만 국가는 국가대로 핵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그럴듯한 구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음울한 인과의 고리를 보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독일인들이 핵폭탄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독일보다 먼저 만들어야 했다. 미국이 갖고 있으니 구 소련도 핵폭탄을 가져야만 했고, 그 다음에는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의 나라들이 가져야 했다. 아마 20세기가 끝날 즈음에는 수많은 국가가 핵폭탄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핵폭탄은 만들기 쉽다. 핵분열 물질은 원자로에서 쉽게 훔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핵폭탄 제조 기술은 거의 가내 공업의 범주에 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블록 버스터block buster라고 불리는 초대형 고성능 폭탄들이 위력을 발휘했다. TNT 폭약 20톤으로 만들어진 초대형 고성능 폭탄 하나가 대도시의 구역block 하나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모든 도시에 투하된 폭탄의 총량이 TNT 200만 톤, 즉 2메가톤이었다고 한다. 이 폭탄들은 1939년과 1945년 사이에 영국의 코버트리, 네델란드의 로테르담, 독일의 드레스덴, 일본의 도쿄 등지의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져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2메가톤이 되려면 초대형 고성능 폭탄이 10만 개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2메가톤은 20세기 후반에 개발된 수소 폭탄 하나의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지구에는 수만 개의 핵폭탄이 있고 이것들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미국과 구 소련의 전략 핵미사일과 핵폭탄 1만 5000여 개가 상대방의 표적을 항시 겨냥하고 있게 될 것이다. 핵탄두와 핵탄두의 대치. 그러므로 이 행성의 그 어느 곳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이 요술 램프들은 누군가 비비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요괴들이다. 이 가공할 무기에 갇혀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TNT 1만 메가톤을 훨씬 넘는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여섯 해나 지속된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TNT 200만톤이 쓰였는데 미래의 핵전쟁에서는 불과 수 시간 이내에 TNT 100억톤 전부가 집중 파괴에 쓰일 것을 상상해 보라.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가족 하나하나에 초대형 고성능 폭탄이 한 개씩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나절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을 1초에 한 번씩 겪어야 하다니.

핵폭탄이 폭발하면서 생기는 충격파는 투하 지점에서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한순간에 뭉개 버린다. 핵폭발에 동반되는 불기둥, 감마선 그리고 중성자에 노출되는 즉시 사람의 육체는 내부 속속들이 아주 철저하게 구워진다. 미국은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낼 수 있었다. 이 핵 공격에서 살아남은 한 여학생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지옥의 밑바닥 같은 암흑 속에서 엄마를 부르는 학우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교각 옆에 파놓은 큰 물통 안에는 온몸이 발갛게 구워진 갓난아기를, 한 어머니가 자신의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고 힘겹게 흐느끼고 있었다. 또 다른 어머니는 화상을 입은 자신의 젖을 아이에게 물리면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물통 안에 있는 학생들은 머리만을 물 위로 내민 채, 두 손을 애원하듯 움켜잡고 비명을 지르며 부모를 찾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성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짝 그슬려 곱슬곱슬 뒤말린 흰 머리카락은 온통 재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세상에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은 곧이어 있었던 나가사키의 경우와 다르게 지표에서 멀리 떨어진 고공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낙진의 문제가 비교적 덜했다. 그러나 1954년 3월 1일 마셜 군도 비키니 섬에 있었던 수소 폭탄 시험은 예상보다 훨씬 높은 파괴력을 나타냈다. 폭발 지점에서 159킬로미터나 떨어진 작은 산호섬 롱애러프도 거대한 방사능 구름으로 덮였다. 그 섬의 주민들은 핵폭발이 서쪽에서 떠오르는 태양 같았다고 증언했다. 폭발한 지 수 시간 후 방사능 낙진이 롱애러프 섬에 눈송이가 내리듯 떨어졌다. 평균 방사능 조사량이 175래드였는데, 이 값은 보통 체격의 사람이 사망할 수 있는 치사량의 반이 조금 못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산호섬이 폭발지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음식물을 통해 방사능 동위 원소인 스트론튬이 체내에 축적되고 방사능 요오드가 갑상선에 차곡차곡 쌓였다. 어린이의 3분의 2와 어른의 3분의 1에서 갑상선 이상, 성장 장애, 악성 종양 등이 발견되었다. 마셜 군도의 주민들은 특수하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파괴력은 겨우 13킬로톤이었다. TNT 1만3000톤에 해당하는 위력이었다. 비키니 섬 실험에 쓰인 것은 15메가톤급이었다. 전면 핵전쟁, 다시 말해서 수소 폭탄을 이용한 전쟁이 발작적으로 일어나면 전 세계의 모든 도시에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100만 개가 떨어지는 셈이다. 히로시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TNT 1만 3000톤이 수십만 명을 살해했으니 전면 핵전쟁에서는 1000억의 인명을 죽이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20세기 말 세계 인구는 약 50억에 불과하다. 핵폭탄의 충격파, 열폭풍, 방사능의 직접 조사와 낙진이 지구의 모든 사람을 깡그리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전면 핵전쟁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낙진의 위험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스트론튬 90의 90퍼센트가 소멸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96년이다. 세슘 137의 90퍼센트가 소멸하는 데에는 100년 즉 1세기가 필요하다. 요오드 131의 경우에는 한 달이 지나면 90퍼센트가 소멸된다.

핵 공격에서 비록 몇몇 사람이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묘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핵폭발은 지구 상층 대기의 질소와 산소의 결합을 촉진시켜 오존의 상당량을 파괴시킬 것이다. 오존층의 파괴로 태양 자외선이 지구 대기로 침투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이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태양 자외선은 피부암을 유발하는데 피부암은 특히 백인종에게 위험하다. 더욱 두려운 것은 지구 생태계에 가져올 변화이다. 하지만 변화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자외선은 곡식의 수확량을 격감시킬 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을 죽일 것이다. 미생물의 어느 종이, 어떻게, 어떤 내용의 피해를 우리에게 가져다줄지 현재로써는 알 길이 없다. 미생물의 멸종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생물이 거대한 생태계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생태계 피라미드 맨 위층에서 겨우 아장거릴 줄만 아는 지극히 불안한 존재가 아닌가.

전쟁 상대국끼리 핵공격을 감행하면 자연히 지구 대기에는 먼지의 양이 증가하고 먼지의 증가는 태양 복사의 유입을 차단하여 지표의 온도를 낮춘다. 온도의 변화 폭이 비록 적더라도 이것은 농업 생산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방사능에 노출되면 곤충보다 새들이 훨씬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새의 멸종은 곤충의 창궐을 동반하므로 농업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될 대혼란이 핵전쟁이 불러 올 재앙의 한 본보기라 하겠다. 괴질과 역병 또한 가공할 재해이다. 괴질성 세균이 지구 전역에 번질 것이다. 인류는 20세기 말로 들어오면서부터 전염병으로 많이 죽지는 않게 되었다. 전염성 세균이 지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세균에 대한 인체의 저항력이 그만큼 향상됐기 때문이다. 핵폭발에서 방출되는 방사능 물질이 인체의 면역 체계를 온통 흔들어 놓아 병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장기간에 걸친 돌연변이의 결과로 새로운 종류의 미생물과 곤충이 나타나면 핵전쟁의 질곡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이라도 신종 미생물과 곤충의 공격에 대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퇴행성 돌연변이의 연속 속에서 가공할 신인류가 태어날 수도 있다.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극히 일부는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성격의 문제가 우리를 수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엄청난 수의 화상환자,시력을 상실하고 지체가 절단된 불구자의 긴 행렬, 각족 질병, 괴이한 전염병, 공기와 물에 오랫동안 만연할 유해성 방사능, 악성 종양에 대한 공포, 사산아의 출산, 장애아의 출생, 적당한 치료법의 부재,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자기파괴의 길을 걸어온 문명에 대한 허탈감, 이 모든 재앙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감. …… 우리야말로 핵전쟁의 인질이다. 지구상 모든 사람이 핵전쟁의 볼모로 잡혀 있다. 인질로 잡힌 우리가 먼저 핵 및 재래식 무기와 전쟁에 대해 연구하고 그 다음에 우리의 정부들을 계몽해야 한다.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과학 기술의 개발과 연구는 결코 게을리 할 수 없는 우리의 절대 의무이다.

우리는 지금 “자비의 해”를 보내고 있다. 이 해의 제정 배경이 되는 폴란드의 하녀 출신 성녀 파우스티나 코왈스카 수녀는 이런 신비로운 말을 했다. “폴란드는 큰 죄를 짓고 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가 거기서 돌아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 끝내 그들이 악한 생활방식에서 돌아서지 않는다면 전쟁의 큰 화를 입게 될 것인데 그 고통은 클 것이다.” 그녀의 사후 1년이 지나자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다. 하느님의 의노를 막아서며 전쟁을 막고 있었던 한 의인이 사라진 땅에!

하나의 신비로운 영상을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칼 세이건이 경고하는 이 무서운 위협 앞에, 우리는 각자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큰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불러들이는 “선한 생활과 기도와 희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여린 씨앗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전능 앞에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로 나설 것이다. 그러한 전면적이고 보다 고통스럽고 내적인 돌아섬 후에, 거대한 탈핵 연합을 구축하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전자(前者)가 무기력해 보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전제될 때에만 하느님의 자비로 승리가 가능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제안이 비현실적이고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거절당할 때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입니까?” 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전 지구적으로 비현실적이고 인간 본성에 반하는 제안 즉 “먼저 선한 생활과 자비를 청하는 작은 기도를 바치자”고 제안하며, 고요히 손에서 손으로 작은 내면의 촛불을 건네며, 세상 곳곳을 밝혀나가야 한다.

공동의 집3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어 공동의 집은 대한민국이다. 그 공동의 집에 최근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세월호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모두에게 일종의 거룩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이 사건은 국민적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진실규명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사는 그 보도들을 통해 접하리라 생각하고, 기도로 그들을 동반하며, 한 가지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이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것은 국민적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레너드 라루 선장이 고백하듯이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이 하느님이셨다면 세월호의 선장은 누구였을까? 그는 이준석 선장이 아니다. 누가 그 세월호 선원들에게 그렇게 비열하게 행동하도록 압력을 넣었을까? 이 사건이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 어른들 역시 이렇게 “품위있게” 행동했으리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증거자료가 여기 있다.

레너드 라루. 그는 선장직에 올라 배를 하나 공급받는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건조한 지 5년된 7,600톤급의 그 배는 선원 십 여명을 태우고 물자를 공급받는 화물선이었다. 그에게 내려진 명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몰아 일본으로 가라는 것. “우리 배는 특명을 받고 있었고 특명 조항에는 ‘목적지: 동해 한반도 흥남’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한 채, 1950년 12월 19일 그는 흥남에 정박한다. 거기서 그는 14,000여명의 운명을 바꾸어놓는, 어쩌면 한국의 인물지형을 바꾸어 놓는 운명을 만난다. 흥남 부두에는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피난민들이 몰려 있었다. 영하 20도. 자동차 엔진이 얼어터지는 추위라고 미군들은 기록했다. 피난민들은 배에 태워줄 것을 애원했다. 불과 10킬로미터도 안되는 곳에서 중공군이 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냥 버려두고 갈 수도 있었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전략상 후퇴하는 미군이 빠른 퇴각을 종용했다. 중공군의 포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 여기 있소.’ 하고 불을 훤히 밝히고 사람들을 태우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게다가 그 바다는 기뢰밭이었다. 화물선의 승선 정원은 열 두명. 레너드 라루 선장은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을 태우시오. 타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그 때 우리 선원 열 명은 침묵했습니다. 그 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연료상자를 싣는 강철판이 놓여 있을 뿐이었지요. 물도 화장실도 먹을 것과 의자, 의료품도 없었지요. 그 배에 우리가 가진 무기라고는 권총 한 자루뿐이었어요. 일단 항구를 떠난다 해도 철저한 보안 때문에 그 배는 어떠한 것과도 무전 교신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기뢰는 바다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고 우리에게는 기뢰를 탐지할 어떤 장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 옆으로 그물망을 내렸습니다. 그것을 사다리 삼아 사람들을 올라오게 했지요. 노파들과 어린아이들이 강풍에 흔들리는 사다리에 대롱거리면서 매달려 올라와, 갑판으로부터 오층 아래 깊이로 이동했어요. 다시 모인 피난민들은 지하 사층으로 이동되었고 다시 뚜껑이 덮였습니다. 1950년 12월 22일 저녁 아홉시 경에 시작된 승선은 밤새도록 진행되어 다음날 동이 트고 다시 정오가 될 때까지도 계속 되었어요. 신기하게도 더 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어디선가 공간이 생겨나는 것 같았어요. 미국군함이 계속 포를 쏘아대며 철수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었어요. 네이팜탄이 항구에 쏟아지고 항구 자체가 사라졌어요. 그리하여 배는 불빛 하나 밝히지 못한 채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별빛과 신의 가호만을 의지한 무모한 항해.

그 항해 중에 다섯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선장님, 한국인들은 나이든 여자가 산부인과 의사보다 더 침착하게 아이를 받아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국 여인의 가슴에서 우유보다 더 풍성한 젖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산모를 걱정하는 선장에 대한 선원의 답변이었다. 배는 남쪽으로 사흘간을 항해했다. 거제도에 도착해 뚜껑을 열었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각오했다고 한다. 약탈, 식인, 아사(餓死)와 동사(凍死) 전염병 혹은 살인. 그런데 놀랍게도 단 한 사람도 상하지 않았다. 그건 기적이었다. 그들이 하선하는 데만 다시 이틀이 걸렸다. 한국인들은 그 힘겨운 상황에서도 약한 이들에게 먼저 하선을 양보했다. “팔꿈치로 밀치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들은 난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품위를 간직한 사람들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들이 모두 하선한 후 레너드 라루 선장은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것을 알았다. 그의 말만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저는 때때로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 작은 배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태우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많은 위험을 극복했는지를. 그해 크리스마스에 한국의 검은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메시지가 저에게 전해옵니다.”(공지영-푸른 사다리 中).

메러디스 빅토리호 아래로 내려졌던 그물망, 하느님이 키잡이였던 그 배에서 내리워진 연대의 그물망을 우리 공동의 집인 대한민국에 드리울 때이다. 하느님이 키잡이이신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토록 품위있는 사람들의 후예인 우리가 그렇게 품위없이 행동하게 만들었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게 하는 연대의 그물망을!

공동의 집2

 
 

큰오색딱따구리

 

산이 건강한지 아닌지를 측정하는 지표종(指標種 indicator species)인 큰오색딱따구리가 우리 산에 산다. 만세!
생명과학과에서 강의하며 우리 땅의 생명을 아름답게 지키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김성호 교수의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사진과 글을 읽은 뒤였으므로, 그 애를 만날 날 나는 기뻐 뛰었다. ‘반갑다, 정말 반갑다. 이름을 알고 있는데다 네가 얼마나 숭고하게 아기를 키우는지를 책에서 보았기 때문에 너를 무척 존경하고 있었어.’ 크기가 앙증맞은 쇠딱따구리, 드러밍 속도가 엄청난 -1초에 20번 가량으로 추정할 수 있다니 가히 신기(神技)에 가까운지고- 청딱따구리도 우리 산에는 있다. 先人들이 탁목조(啄木鳥)라고도 불렀던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아 집을 지으나, 결코 싱싱한 나무의 생명을 해하지 않는다. 나무는 기꺼이 그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새는 고마운 마음으로 둥지를 쪼며 나눔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동의 집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건강한 숲에서만 만날 수 있는 큰오색딱따구리의 개체수가 현격하게 줄고 있다. 그 원인을 분석한 김성호 교수의 글을 읽어보자.

 
“새끼를 키우기 위해 가져오는 먹이를 분석해보면 근래 큰오색딱따구리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적잖게 설렜습니다. 특별한 먹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딱정벌레 애벌레에 대한 의존도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수컷이 가져오는 먹이의 98퍼센트가 딱정벌레 애벌레이며, 암컷의 경우는 92퍼센트에 이릅니다. 결국 먹이의 95퍼센트 정도가 딱정벌레 애벌레입니다. 딱정벌레 애벌레에 대한 의존도가 무척 높습니다. 딱정벌레 애벌레가 서식하는 곳은 건강하고 오래된 숲입니다. 오래되고 건강한 숲이 아니라면 딱정벌레 애벌레가 서식할 수 없고, 딱정벌레 애벌레가 없는 곳에서 큰오색딱따구리가 새끼를 키워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결국 큰오색딱따구리의 개체 수가 감소한 것은 오래된 숲이 그만큼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딱정벌레 애벌레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높은 큰오색딱따구리는 점점 사라지는 숲을 등 뒤로 하고 더 안쪽 깊은 숲으로 쫓겨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글 출처 =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이 애들에게 있어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것은 일종의 재앙이다. 더 쫓겨가고 더 쫓겨가서 살곳이 없게 되면, 그렇게 많이 멸종해간 다른 모든 동식물과 함께 이 사랑스러운 새도 멸종해 갈 것이다. 그렇게 많은 생물종을 멸종(滅種)시킨 인류가 이 귀여운 한 종(種)의 생물을 멸종시키면서 자신들의 미래는 안전하고 쾌적한 것이라고 노래할 수 있겠는가. 경제적 성장을 무한대로 이루기를 원하면서, “배곯던 시절의 서러움이 무엇인지 너희는 아느냐?”고, 죽어가는 한 종(種)의 생물체에게 훈계할 수 있겠는가? 그들도 인류 공동의 집에서 그들의 한 몫을 누릴 가족이다. 그 가족에게서 집을 빼앗는 것은 언젠가 우리도 우리의 집을 빼앗길 날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은 힘겹게 오르는 것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날아다니고 싶다면, 이미 비행기가 있지 않은가?
예수께서는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피해가셨다.’ 라고 성서는 말한다. 예수님은 산으로 피해가셨다. 사람들의 야욕을 피해가신 곳은 산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산마저도 인간의 경제성의 야욕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게 될 프로젝트-케이블카가 준비 중이다.
 

공동의 집1

 
 

다람쥐

 
산길을 오르다 다람쥐를 만난다. 언제부턴가 그 꼬마는 나를 알아본다. 아주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자기를 보라고 작은 소리를 내거나 소란을 피운다. 힘겹게 산을 오르느라 자기를 몰라볼 때면.
한번은 계곡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작게 새가 우는 소리를 냈다. 눈을 마주치며.
한번은 나무에 꼭 매달려 있었는데 내 눈길이 가서 멎는 위치였다. 나도 그 애 앞에서 선율이 고운 노래와 춤을 추었다. 내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애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리막에서 한번은 내 옆으로 그 애가 쏜살같이 그냥 달려 내려갔다. 서운한 마음에 ‘오늘은 만났는데 인사도 안하는구나!’ 했는데, 그 애는 내 눈길이 주로 닿는 둥그런 돌 위에 올라가, 돌길을 달려내려 오느라 정신이 없는 내 눈길에 자기 눈을 맞추었다. 한참을 응시하다가 귀여운 꼬리를 살랑 흔들며 저 가던 길을 갔다. 이 애들은 우리와 사귀기를 원한다.
 

산은 힐링의 성스러운 장소이다. 산은 허리 디스크를 앓은 나에게 힘겹게 능선을 타서 치료를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안에 있는 찌꺼기를 모두 거두어내는 숭고한 땀을 흘리는 치료로 마음과 몸에 건강을 되돌려주었다. 기계문명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그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로 치유의 영기(靈氣)를 내뿜어 주었다.
 

산은 나와 다람쥐의 공동의 집이다. 우리 공동의 집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기쁨에 함께 하려면 힘겹게 산을 오르자. 케이블카로 산에 올라 유흥을 즐기는 일은 다람쥐와 우리의 공동의 집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산마저 유흥가를 만든다면 인류는 어디에서 고요와 성스러운 휴식과 수행처를 얻어 만날 수 있겠는가?
 
한국 사회 전체가 “공사중”이다. 산을 올라도 얼마나 많은 공사가 진행 중인지! 양쪽 산을 끊는 도로 공사, 산 중턱 전체를 파헤쳐 푸른 나무가 아니라 붉은 흙이 드러난 곳! 아무리 깊은 산중을 가도 인간의 공사 소음이 울려퍼지지 않는 곳을 만나기 어렵다. 3공화국에서 경제개발5개년 계획으로 체계적으로 추진했던 경제적 유통망으로 한국사회의 도로 유통망은 이제 충분하다. 더 이상의 도로는 필요치 않다.
先人의 지혜를 배울 때이다. 그들은 정복하여 돈 버는 대상으로 자연을 보지 않았고 자연의 일부로서 겸허하게 살다 죽어, 이 아름답고 치유하는 산을 후손인 우리에게 물려주지 않았는가!
 
우리 후손은 돈만 많이 물려주면 행복한 기괴하고 비뚤어진 세대인가? 우리 후손들 역시 우리처럼 자연의 아름다움과 선함 속에서야 행복할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소중한 것을 우리가 받은 그대로 손상 없이 물려주자.
 
先人들의 지혜를 배울 때이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산천은 내 방에 들일 수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