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집 5

 

유순하고 겁 많기 그지없는 아이 – 멧돼지

 

밭 담당을 하던 시기에 멧돼지에 대한 전의(戰意)에 불타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모든 농부가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고구마가 한창 커가던 시절, 수확시기를 생각하며 흐뭇함에 젖어 일하러 나간 밭에 전날 밤 멧돼지가 다녀가셨다. 고구마 밭은 엉망으로 뒤집혀 있었고 무성히 자란 잎사귀로 덮인 밭에서는 아무런 수확물도 나오지 않았다. 밤마다 내려와서 무화과 나무 밑을 파헤쳐 뿌리를 드러내놓고, 매실밭 거름 준 것을 난장판을 만들고, 죽순도 다 캐먹고, 잔디밭을 뒤집어엎고 … 기가 막혀서!! 그 녀석들이 입힌 피해를 어찌 다 일컬으랴! “빌어먹을 놈들! 내 멧돼지 바베규를 해 먹으며 이 원한을 갚고야 말리라!”

최근 멧돼지가 도심까지 출현하며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거나 농부들을 공격하여 부상을 입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무엇이 멧돼지로 하여금 사람을 공격하게 했으며 도심을 활보하게 했을까. 상위 포식자가 없어 개체 수가 늘어난 까닭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과 책임은 역시 인간에게 있다.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전까지 숲은 야생동물의 터전이었다. 사람들이 영역을 넓히면서 상대적으로 야생동물의 영토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 아래 잡목으로 이루어진 구릉지는 야생동물과 사람과의 완충지대로 DMZ, 즉 비무장지대인 셈인데, 이 비무장지대를 인간이 개발하고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분쟁은 시작된 것이다. 도로 건설로 인해 동물들의 이동을 차단한 것도 한 원인이다. 이동 통로를 잃은 동물들은 도로로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빈번한 로드킬Road kill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저돌적(豬突的)이라는 말이 있다. 성난 멧돼지가 들이닥치듯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멧돼지는 의심도 많고 겁도 많다. 평소에는 사람을 먼저 발견하고 먼저 피하는 순한 녀석이다.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할 때는 짝짓기 때와 새끼를 데리고 다닐 때다. 짝짓기 시기에 갑자기 등장한 사람은 암컷을 해치려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게 멧돼지의 습성이다(‘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中 겁 많은 멧돼지-도연스님 著).

나의 불타는 전의를 시들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하는 것은 언제나 이 진실이다. 모든 게 멧돼지 탓이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탓이다. 상위 포식자인 호랑이를 멸종시킨 것도 우리요, 도로를 끝없이 뚫는 것도 우리다. 멧돼지를 집단 살육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더 큰 생태계 교란을 가져올 것이다. 원래의 생태계 질서를 되돌려 주는 것, 언제나 이 시각에서 시작하고 마쳐야 한다.

우리 뒷산을 오르다보면 심심치 않게 멧돼지와 마주친다. 약간의 위협적인 울음소리로 내게 공포심을 일으킨 것 외에 아직까지 그 애는 나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나만 보면 산이 뒤흔들릴 정도로 줄행랑을 치기에. 내가 너무 저돌적豬突的이라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