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집3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있어 공동의 집은 대한민국이다. 그 공동의 집에 최근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세월호이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모두에게 일종의 거룩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이 사건은 국민적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진실규명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기사는 그 보도들을 통해 접하리라 생각하고, 기도로 그들을 동반하며, 한 가지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이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것은 국민적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레너드 라루 선장이 고백하듯이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이 하느님이셨다면 세월호의 선장은 누구였을까? 그는 이준석 선장이 아니다. 누가 그 세월호 선원들에게 그렇게 비열하게 행동하도록 압력을 넣었을까? 이 사건이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 어른들 역시 이렇게 “품위있게” 행동했으리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증거자료가 여기 있다.

레너드 라루. 그는 선장직에 올라 배를 하나 공급받는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건조한 지 5년된 7,600톤급의 그 배는 선원 십 여명을 태우고 물자를 공급받는 화물선이었다. 그에게 내려진 명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몰아 일본으로 가라는 것. “우리 배는 특명을 받고 있었고 특명 조항에는 ‘목적지: 동해 한반도 흥남’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한 채, 1950년 12월 19일 그는 흥남에 정박한다. 거기서 그는 14,000여명의 운명을 바꾸어놓는, 어쩌면 한국의 인물지형을 바꾸어 놓는 운명을 만난다. 흥남 부두에는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피난민들이 몰려 있었다. 영하 20도. 자동차 엔진이 얼어터지는 추위라고 미군들은 기록했다. 피난민들은 배에 태워줄 것을 애원했다. 불과 10킬로미터도 안되는 곳에서 중공군이 포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냥 버려두고 갈 수도 있었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전략상 후퇴하는 미군이 빠른 퇴각을 종용했다. 중공군의 포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 여기 있소.’ 하고 불을 훤히 밝히고 사람들을 태우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게다가 그 바다는 기뢰밭이었다. 화물선의 승선 정원은 열 두명. 레너드 라루 선장은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을 태우시오. 타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그 때 우리 선원 열 명은 침묵했습니다. 그 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연료상자를 싣는 강철판이 놓여 있을 뿐이었지요. 물도 화장실도 먹을 것과 의자, 의료품도 없었지요. 그 배에 우리가 가진 무기라고는 권총 한 자루뿐이었어요. 일단 항구를 떠난다 해도 철저한 보안 때문에 그 배는 어떠한 것과도 무전 교신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기뢰는 바다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고 우리에게는 기뢰를 탐지할 어떤 장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 옆으로 그물망을 내렸습니다. 그것을 사다리 삼아 사람들을 올라오게 했지요. 노파들과 어린아이들이 강풍에 흔들리는 사다리에 대롱거리면서 매달려 올라와, 갑판으로부터 오층 아래 깊이로 이동했어요. 다시 모인 피난민들은 지하 사층으로 이동되었고 다시 뚜껑이 덮였습니다. 1950년 12월 22일 저녁 아홉시 경에 시작된 승선은 밤새도록 진행되어 다음날 동이 트고 다시 정오가 될 때까지도 계속 되었어요. 신기하게도 더 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어디선가 공간이 생겨나는 것 같았어요. 미국군함이 계속 포를 쏘아대며 철수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었어요. 네이팜탄이 항구에 쏟아지고 항구 자체가 사라졌어요. 그리하여 배는 불빛 하나 밝히지 못한 채 항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별빛과 신의 가호만을 의지한 무모한 항해.

그 항해 중에 다섯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선장님, 한국인들은 나이든 여자가 산부인과 의사보다 더 침착하게 아이를 받아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국 여인의 가슴에서 우유보다 더 풍성한 젖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산모를 걱정하는 선장에 대한 선원의 답변이었다. 배는 남쪽으로 사흘간을 항해했다. 거제도에 도착해 뚜껑을 열었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각오했다고 한다. 약탈, 식인, 아사(餓死)와 동사(凍死) 전염병 혹은 살인. 그런데 놀랍게도 단 한 사람도 상하지 않았다. 그건 기적이었다. 그들이 하선하는 데만 다시 이틀이 걸렸다. 한국인들은 그 힘겨운 상황에서도 약한 이들에게 먼저 하선을 양보했다. “팔꿈치로 밀치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들은 난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품위를 간직한 사람들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들이 모두 하선한 후 레너드 라루 선장은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인 것을 알았다. 그의 말만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저는 때때로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 작은 배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태우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많은 위험을 극복했는지를. 그해 크리스마스에 한국의 검은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메시지가 저에게 전해옵니다.”(공지영-푸른 사다리 中).

메러디스 빅토리호 아래로 내려졌던 그물망, 하느님이 키잡이였던 그 배에서 내리워진 연대의 그물망을 우리 공동의 집인 대한민국에 드리울 때이다. 하느님이 키잡이이신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토록 품위있는 사람들의 후예인 우리가 그렇게 품위없이 행동하게 만들었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게 하는 연대의 그물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