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2년 11월의 말씀

기뻐하며 주님 집으로 가리라.

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마음을 정하셨는데 천사들이 이를 알아차렸답니다. 천사들은 인간이 만약 하느님 모습으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다면 자신들을 이기리라는 걱정과 함께 질투심에 사로잡혔지요.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모상”을 훔쳤답니다. 사람이 결코 찾을 수 없는 곳에 감추고자 서로 모여서 대책을 궁리하였지요. 가브리엘 천사는 최고 높은 산봉우리에 감추자고 했고, 미카엘 천사는 깊은 바다에 감추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언젠가 인간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는 길을 알 것이고, 바다 밑까지 잠수하는 방법을 알아내어 결국 찾아낼 것”이라며 다른 천사들이 반대했지요. 숨길 장소를 찾지 못하여 끙끙거릴 때 우리엘이라 불리는 천사가 나서서 “나는 인간들이 끝내 찾지 못할 장소를 알고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하느님의 모상”을 우리가 찾지 못하는 바로 거기에 감춰 놓았지요. 그러나 천사도 하느님의 마음을 다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이 훔쳐 숨겼다고 안심하였지만, 하느님께서 사람과 더욱 가까이, 영원히 함께 계시고자 사람의 가장 내밀한 곳, 바로 그 사람의 영혼 안에 영혼으로 스스로 숨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으나(시편 8,6), 인간에게는 갈망을 주셨습니다. 그 갈망으로 당신을 찾아내기를 바라셨지요.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하느님 아닌 것을 쫓아다니다 결국은 하느님 앞에서 몸을 숨기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창세 4,14 참조)가 되었습니다. 영혼으로 가는 길, 주님께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 주님께서 홀로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기도하신 시간, 새벽의 하늘을 바라봅시다. 이제껏 하늘 높은 곳의 천둥, 번개같이 요란하게 번쩍거리는 것에서 크고 강하신 하느님을 부르며 우리의 요구에 응답하여 주시기만을 청하였던 모든 욕망을 그분께 벗어 던집시다. 고요이신 분께서 우리를 고요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수백, 수천 억 개의 별들을 창조하신 분께서 바로 나, 오직 나에게 이렇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은 자애를 베풀었다.”(예레 31,3). 그분의 목소리와 약속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여명이 어김없이 밝아오듯, 어두웠던 영혼의 하늘에 빛이 떠오를 것입니다. 시편 예언자와 함께 절망의 깊은 심연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합시다. “주님, 제 영혼이 당신을 애타게 찾나이다. 제 애원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를 가두고 있던 절망의 벽, 받아들일 수 없었던 두려움의 장벽이 무너지고 나는 이미 주님 자비의 깊은 심연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침묵이신 하느님께서 나를 침묵하게 하시고 당신의 부드럽고 여린 소리를 듣게 하십니다. 영혼 안에 계신 당신을 우리가 찾아내기까지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으신”(이사 62,1) 그분께서는 문을 두드리십니다. 문이신 분께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우리가 당신께 말을 걸고 당신께 문을 열어 드리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찾고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노래합니다.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찾나이다. 당신 계명을 떠나 헤매지 않게 하소서. 저는 이 땅에서 이방인일 뿐 제게서 당신 사랑을 감추지 마소서. 당신의 법규를 열망하여 제 영혼이 갈망으로 지칩니다. 제 영혼이 시름으로 녹아내립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저를 일으키소서. 헛된 것을 보지 않게 제 눈을 돌려 주시고 당신의 길을 따르게 하시어 저를 살려 주소서. 제 길을 되돌아보고 제 발길을 당신 계신 곳으로 돌리나이다. 고통을 겪기 전에는 제가 그르쳤으나 이제는 당신 말씀을 따르리다. 제가 고통을 겪은 것은 좋은 일이니 당신의 사랑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이 제 즐거움이 아니었던들 저는 고통 속에서 사라졌으리다. 주님, 당신의 구원을 애타게 그리는 이 몸, 길 잃은 양처럼 헤매니 당신의 종을 찾으소서. 저는 당신의 것, 당신의 사랑을 잊지 않았나이다. 제가 당신 말씀에 희망을 두니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이 저를 보고 기뻐하나이다.”(시편 119 참조).

인간을 그리워하는 하느님!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인간! 천사들조차도 알지 못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신비입니다. 한없는 두 그리움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안에서 채워지고, 또한 하늘 나라에서 한없는 충만함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움과 그리움이 만나는 그곳에서 신부를 반기는 신랑으로서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홀먼 헌트 / 세상의 빛(1853-1854),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