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5월의 말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수

도원에 입회하는 이는 일정 기간의 초기 양성기가 끝나면 수도승 서원을 발함으로써 하느님께 봉헌됩니다. 그리고 “충실한 정주定住와 죽을 때까지 숭고한 순종을 통해서 참된 생활개선에 정진할 의무”(트라피스트 회헌)를 지닙니다. 너무 무거운 율법 조항으로 느껴지시나요? 이 의무의 짐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기도, 노동, 독서의 일상 안에서 자매들과 함께 지는 것입니다. 때론 무게가 어깨를 누르기도 합니다. 허나, 놀랍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권리이며 선물임을 느끼게 되는 때가 옵니다. 은총입니다! 이 은총은 정주를 하늘나라로 옮기는 선배들을 통해서도 주어집니다.

지난 1월,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대축일’을 지낸 다음 날, 일본 천사원의 카지미르 수녀는 숨겨진 봉쇄에서 단순하며 평범한 80여년의 수도생활을 끝내고 하느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가 우리 시토회의 수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쩌면 기적이며 신비일 수 있습니다. 일생을 한 장소에서, 매일 같은 시간표에 따라, 성당과 작업장, 식당 그리고 공부방과 침실이 움직인 영역의 전부입니다. 그녀는 병실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돌봄을 받으며 침대에 누워있을 때 우리 후배들에게 더 많은 진리를 전해 주었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듯 편안한 아기의 미소를 짓고 있는 수녀를 만난 이들은 누구나 행복을 느꼈습니다. 늙고 병든 사람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에 놀랐습니다. 수녀의 손과 얼굴을 만지면서 감히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정공동체에서 만든 가락지 묵주를 끼고 “나를 구하신 하느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성모님의 손을 잡고 영원하신 아버지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있는 수녀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고 있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전구자가 되었습니다. 시토회에 흐르는 생명의 강은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품에 모신 이가 하느님의 약속을 품은 이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을” 달려갔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가 어머니가 되는 것과 늙은 석녀가 어머니 되는 것은 마찬가지로 터무니없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낯선 축복은 인간의 눈에는 어쩌면 수치와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은총의 고통 앞에서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타인의 고통을 방문합니다. 자기 고통의 충격에 함몰되지 않고 타인의 거룩한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던” 엘리사벳 태 안의 아기가 “즐거이 뛰놀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생명을 부릅니다.

초록의 생명 충만한 5월, 세상을 떠난 선배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원천에서 생명수를 길어 올립니다. “수녀들은 통회의 정신과 타오르는 열렬한 갈망으로 자주 기도에 전념할 것이며, 지상에 살고 있으나 마음은 천상 것에 이끌려 온전한 영적 갈망으로 영원한 생명을 희망한다. 그리고 지상을 순례하는 모든 이의 생명, 기쁨, 희망이신 동정 마리아를 늘 마음에 모실 것이다.”(트라피스트 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