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7년 2월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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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배아-영원을 향하여

수정창립 30주년을 향해 2

 

“세

세상의 어떤 예술, 문학, 기술, 심지어 종교도 저 혼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 한 인간 개인도 그러합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첫 울음을 터트릴 때 그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 그리고…그리고 수도 없이 올라간 그 세대들의 흐름 속에 그 아기가 태어난 것입니다. 한 아이의 성격과 인간됨에는 그 수많은 세대의 면면한 흐름이 녹아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 흐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바로 그 아이만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세세대대로 이어진 흐름과 그 사람만의 독특함이 잘 어우러져 빚어진 한 사람의 삶은 자신과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시대 더 나아가 시대를 넘어서까지 한 흐름을 다시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작은 흐름들을 형성하는 풍요롭고 큰 흐름을….

이처럼 수도생활도 그러합니다. 수도생활이 가톨릭의 아주 독특한 면 중의 하나이지만, 당연히 가톨릭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수도생활은 그리스도교가 생기기 전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고, 그리스도교의 수도생활은 유일하고 독특한 면을 지니고 있지만, 이미 있었던 여러 삶의 형태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아들입니다. 즉 수도생활은 인간 존재의 심연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한 현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인간 각자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수도자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참으로 지당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수도생활이라 불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지닌 공통점을 한 번 살펴보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세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로, 수도생활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은 현재의 이 세상과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일종의 분리를 추구합니다. 분리됨으로써 이 세상이 지향하는 가치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가치, 참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치로 새롭게 거듭나기에 온몸, 온생을 바칩니다. 둘째는 금욕수행으로 독신, 가난, 단식, 절제 등 내적 깨어있음을 지향하는 요소들 또한 공통적으로 모든 수도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셋째는 신비적 갈망으로 절대자에 대한 깊은 의식과 이 절대자와의 통교에 대한 갈망. 이것이 수도승 생활의 가장 깊은 토대이며 이것은 위의 두 가지 요소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여기서 1월 소식지에서 나눴던 모든 것이 나오는 사랑의 근원, 모태와 연결이 됩니다. 신비적 갈망은 바로 이곳을 향합니다. 인간 존재와 모든 수도공동체들은 여기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근원을 향한 갈망, 목마름은 어느 세대에도 끊어지는 일 없이 세상이라는 강의 밑바닥을 흘러왔습니다. 세상의 흐름과 세상의 가치에 매몰되어, 존재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잊어버린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세상과의 분리, 금욕, 신비적 갈망이 자신 안에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음을 적든 크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심연에는 유일한 사랑의 근원을 향한 상승의 움직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잡아당겨내려 물처럼 바닥으로 스며들게 하는 힘도 작용합니다. 그 힘의 엄청남은 마치 사랑의 모태를 향한 힘을 눌러 찌그러트릴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힘이 아무리 막강할지라도 존재의 심연에 심어진 배아만은 결코 건드리지 못합니다. 사람으로 생겨먹은 존재 안에서 이것을 없애버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조차도…. 그 배아는 역사의 흐름 안에서 적당한 토양, 수분, 햇빛을 만나면 발아하여 수많은 이들이 그 근원을 향해 갈 수 있는 그런 카리스마를 형성합니다. 한 죽음이 다른 생명을 낳는 그 흐름 안에서 앞세대가 쌓은 영양분을 먹고, 앞세대를 이어받으면서도 앞세대를 넘어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여는 카리스마가 수많은 이를 불러모읍니다. 그림 속 터진 홍시처럼 감은 죽고 새싹이 돋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