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7년 1월의 말씀

공동체의 근원 - 사랑의 품

공동체의 근원 – 사랑의 품

“춥

고 배고픈데 누군가 내 손에 쥐어준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그림입니다. 자꾸 보고 싶고, 한 명 한 명의 절묘한 표정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저 장면 속에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사촌, 육촌들이 키재기를 하는데, 어른들이 더 신이 났습니다. 아이의 관심, 꿈이 어른의 관심이 되는 사랑과 꿈이 가득한 그림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 모든 가정, 모든 공동체는 사랑이라는 모태,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불행의 바닥을 치는, 사랑이라는 말 따위 사치라고 외칠 그런 아픈 출생도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믿는 이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넉넉하고 사람 살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모태, 근원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 한 사람도 남김이 없이 모든 이 안에서 사랑이 식어버린다면 아마 우주의 모든 별들은 열과 빛을 잃고 우주 전체가 싸늘한 암흑으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신비요, 베일에 싸인 우주도 태어난 곳이 있음을 현대 과학은 미약하게나마 감지하고 있습니다. 우주가 태어난 곳이 있다면 그 우주의 꽃, 정점인 인간이 태어난 곳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한 명 한 명의 인간은 그저 우연히 어쩌다 태어난 목숨이 아니라, 사랑의 근원에서 영원으로부터 작정하신 그런 열렬함에서 세상에 존재합니다. 엄마, 아빠가 자신의 아기를 열렬히 원하는 그런 마음과 조금은 닮은 구석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존재하기를 원하는 그런 사랑의 근원이 있어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엄마 아빠를 통해 이 세상으로 오게 된 것이지요. 한 공동체 역시 인간 개인과 마찬가지로 어떤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영원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안에서 태어납니다. 역사를 통해 공동체의 탄생과 성장, 그 역할을 공부해보면 이 사실을 손에 잡힐 듯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올해 10월19일에 수정 공동체 탄생 30주년을 맞게 됩니다. 10월까지 열 달 동안 공동체의 탄생과 성장이라는 흐름을 여러 주제 아래 함께 나누어 볼까 합니다. 공동체와 가정 그리고 사회 단체들의 삶은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습니다. 봉쇄공동체 생활은 세상 어떤 곳보다 더 밀도 깊은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면이 있으므로 저희 삶의 여정이 다른 많은 분들과도 공감할 수 있는 교집합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혼에 직면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결혼도 안한 수녀님이 저희 생활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라는 질문들을 하시는데, 그만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곳에는 각 생활형태에 따라 다른 면도 많지만 공통점이 더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 지역, 각 나라에 퍼져있는 여러 공동체들을 품고 있는 하나의 카리스마를 살아가는 수도회 역시 이 사랑의 품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도회들은 오히려 사랑의 품 안의 어떤 요소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줄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이 됩니다. 한 수도회, 한 공동체, 한 가정, 한 개인이 자신이 태어난 곳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따뜻한 기억, 태어남에 대한 분명한 사명의식이 있을 때 그 삶은 하나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품을 닮아 사람을 품는 품이 넓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곳을 안다는 것은 돌아가야 할 곳, 최종 목적지를 안다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그 사랑의 품, 삼위일체 하느님, 하느님의 친교, 하느님의 비움, 하느님의 가족이심 안으로 우리 삶이 향하고 있음을 알 때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에 어울리는 맑음과 단순함을 지향하며, 세상 고귀한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그 모습을 얻으려 할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한 개인, 공동체들은 바로 자신의 근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품에서 나와 사랑의 품으로 돌아감을 아는 사람, 공동체 세상의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