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6년 10월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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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의 DNA

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멋진 비상, 멋진 깃털! 이것만으로도 이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어느 정도 채워주는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만, 이것만이라면 사진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꿩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이 그저 멋진 비상만을 그린 것은 아님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물론 예술이란 것이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면 보는 이 각자의 주관성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 작품 하나 나오기까지 작가가 거쳤을 사고의 궤적, 느낌, 심지어 삶의 행적까지를 함께 할 때 보는 이에게도 창조적 영감이 작용하여 삶의 바닥까지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것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을 무시하고 자기 식대로만 본다면 주관적 왜곡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삶의 바닥에까지 영향을 받는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날개가 퇴화되고 몸집만 커져 사냥꾼들이 노리는 1호가 되어버렸음에도 깃털만은 제대로 화려해서 절로 탄성이 나오게 만듭니다. 산 바로 아래 자리잡은 수녀원에서는 가끔 꿩들이 나타나 먹이를 찾고 운이 좋으면 꺼벙이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마저 볼 행운도 누립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꿔거꿩하는 요란한 소리를 터트리며 비상하는 멋진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말이 비상이지 얼마 못가 머리가 땅을 향하는 모습은 화려한 깃털에 대비되어 더 짠한 마음이 들곤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생겨나곤 했습니다. 꿩이란 존재는 저 화려한 모습만으로 충분한가, 사냥꾼에게 쉽게 표적이 될 화려함은 왜 퇴화되지 않았을까, 불어난 몸집에도 비상을 향한 본능만은 사라지지 않고 남은 이유는 뭘까? 물론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이 물음들이 모두 생존과 관련되어 나선형으로 서로 얽히며 올라가고 내려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태생부터 생김생김이 화려한 이들,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뭇시선 속에 살아가는 이들. 혹은 태생부터 신체 어딘가에 흠을 지니고 세상에 나온 이들. 이들 각자에게 비상이란 어떤 것일까요?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비상이란 무슨 의미를 지닐까요? 비상을 하지 않고서도 한 존재로 살아감이 가능할까요? 굳이 답을 얻으려하기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물음들 앞에 가만히 머물러봅니다.
화려한 외모에, 인기절정인 연예인의 삶이 비상의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 시대에는 참으로 많을 듯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시대의 우상이요, 말 그대로 아이돌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마약 논란에 휩쓸리는 이들이 대부분 연예인인 것을 보면 사태가 그리 단순하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도시의 한복판에서 도시의 화려함 가장 바깥에 있는 버림받은 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버림받음을 스스로 선택한 이들, 촉망받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온생을 바치는 이들. 이들 안에는 비상의 열망이 없는 것일까요? 오히려 그 어떤 화려한 삶을 사는 이들보다 더 크게 타오르고 있지는 않을까요? 화려한 공작이든 땅위를 기는 뱀이든 아예 땅속에서만 살아가는 두더지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든 이 비상의 DNA가 없는 존재는 없어 모든 생명체는 무기물까지도 함께 어우러지는 생명의 잔치를 향해 비상의 얽힌 나선형을 그려가고 있는 야무진 꿈을 꾸는 10월입니다.

날자 곧 하강의
밭은 상승

무거운 몸
화려한 깃털보다
더 짙은
비상의 DNA

꿔겅 꿔겅 꿔거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