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6년 8월의 말씀

2016.08.성철스님

자기 전문가

인간 전문가

먹고 잠자고 세수하고 대화하고 일하고 화장실 가는 일상의 일들. 수도원이란 곳은 사람이 끊임없이 들고 날고 그러면서 온갖 역동이 일어나는 곳인데, 수도원을 떠나는 이들은 대체로 위의 것들에 문제들이 있는 듯합니다. 혹시 수도원이란 곳에서 가장 귀한 기도 시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귀한 것은 대체로 누구나 귀하게 여기는 법이라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할 때면 1년 정도 지나면 성인, 성녀가 되는 줄 알고 거룩한 1m짜리 얼굴을 하고 다니는 우스꽝스런 시기도 있어, 그런 시간들을 통과하며 수도 연륜이 깊어질수록 일상의 귀함에 눈을 뜨게 됩니다. 일상에 푹 젖음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대면할 수 없고, 자신을 모르면 이웃도 하느님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일상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는 위대한 스승입니다. 일상의 사소함, 비천함, 낮추어짐, 잊혀짐에서 처음부터 자유로운 대영혼(?)은 없습니다. 김 호석 화백은 이런 일상의 한 순간, 한 점보다 짧은 순간을 기가 막히게 포착하였습니다. 세수하는 성철스님입니다. 특별할 것도 기이할 것도 없는 매일 아침의 세수하는 장면을 독수리의 눈으로 포착하였습니다. 세숫대야에 비친 얼굴, 그것은 성철 스님의 얼굴이자 화백의 얼굴이며, 보고있는 저 자신과 이 그림과 글을 보게 될 모든 이들의 얼굴일 수도 있습니다. 일상이 비춰주는 나의 얼굴, 그 앞에서 얼굴 돌리지 않고, 세숫대야 속 들여다보듯 그렇게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복됩니다. 자기혐오나 자기도취에 빠짐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는 일! 그 일 하나 때문에 수도승은 일생을 바칩니다.

자기전문가, 인간전문가, 세상전문가! 세상의 어떤 매력적인 일도 다 포기하고 오직 이 일에만 투신하겠노라 삶을 건 이들이 있습니다. 온갖 전문가들로 가득한 지금의 세상 안에 자기자신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떤 이는 심리학을 하는 분들을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심리는 인간존재의 한 부분일 따름입니다(심리학이 현대인들에게 끼친 공헌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신 성철 스님의 말씀을 이런 의미에서 한 부분 나름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자기 존재를 안다는 것 자체가 일생을 걸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적당히 다른 것과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직업도 가지지 말고 자신만 들여다보라는 말로 알아듣는다면 시작부터 잘못 꿰는 것입니다. 평생 농사일로 얼굴 검게 탄 시골 어르신들, 존재 전체를 남김없이 자식들에게 던져 넣으신 분들은 누구보다 자기전문가들입니다.

일상의 작음에 자신을 투신하고 일상의 지리멸렬함에 인내하고 일상의 잔혹함에 부서지고 일상의 소박함에 웃음 짓고 일상의 위대함에 엎드릴 수 있는 그런 이가 그립습니다. 기이할 정도로 개인이 부풀어 팽창해버린 현대 세계 안에서…. 이런 이에게 하늘의 문은 스스로 걸어 다가옵니다.

<그림자 놀이>

세숫대야 물

비친 그림자

참 정답기도 하네

오순도순 마주 보며

속내 환히 보일 때

물 속 푸른 하늘

언 구름 녹아

정겨운 봄비로 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