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5년 8월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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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오르는 빵

“나

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요즘 가장 많이 와닿는 이 말씀처럼 그림을 보는 순간 제 몸에도 불이 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지거 쾨더의 ‘부활 아침의 주님’이라는 그림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이 장면 바로 전 예수님은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숨어있는 제자들이 함께 모인 곳에 나타나셨고, 그들에게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뒤에도 제자들의 마음은 타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는 베드로의 말에 다른 6명의 제자들도 함께 호수로 나갑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그 방에서 말씀하셨지만 그들에게 아직 이 말은 마음을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해도 우리의 마음은 아직 무겁게 가라앉아, 그저 생계 걱정이나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무거운 마음 속에는 자신의 사명, 예수님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 이런 것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요. 매일 성체를 모시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귀로 들어와도 마음은 천근 만근 쇠붙이 같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호수로 나가 그물을 던지지만 헛수고만 할 뿐입니다. 밤새 헛수고로 지친 그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빈손이 아닙니다. 지치고 무기력해진 그들을 먹일 양식을 손수 준비하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차가운 음식이 아니라 숯불 위에 따끈하게 구워주십니다. 그 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수평선 저쪽 하늘을 물들이는 붉은 태양빛보다 더 뜨겁고 더 붉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주님이십니다.”하자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들고, 그 불은 그의 얼굴 반쪽과 몸을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아직 배에 그대로 남아있던 다른 여섯 제자들의 얼굴도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밤새 헛수고만 한 그들이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그대로 하자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아마도 이 때 벌써 그들은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분이 주님이심을! 주님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참되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아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의 마음속에 이 불은 타오릅니다. 자신의 계획, 자신의 능력,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는 이들은 그 일이 성공하는 한에서만 마음에 생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획을 주님의 힘으로 이루는 이들에게 성공과 실패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주님을 떠나있는가, 주님의 불이 자신 안에 타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일을 성공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하지만 실패한다 해도 그것 또한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을 것이며, 이 실패가 오히려 그들의 마음 안에 이 불을 지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참으로 원하는 것은 이 불이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온통 훨훨 태우는 것입니다. 사방이 온통 꽉 막혀버린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들, 궁지로 내몰린 노동자들, 정권 유지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 돈밖에 관심이 없는 기업인들, 취업난에 몰려 실망에 빠진 청년들, 하루하루 심해져가는 환경오염과 그것에 눈감는 세상! 이런 세상에 불이 타오르기를! 모세의 불꽃처럼 타올라도 태워 소진시켜버리는 일 없는 이 불길이 타올라 너도 나도 함께 이 불로 물들기를! 자기 테두리, 자기 가족,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이 이 불길 속에 남을 위하고, 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변모되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이 불을 품고 불타는 빵으로 각 사람에게 오십니다. 이 불타는 사랑에 뛰어들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