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5년 5월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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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부활의 빛

숭아꽃이 만발한 이 그림은 고난과 역경의 사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입니다. 봄의 색채와 힘찬 생장의 기운이 느껴지고,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고 싶은 봄의 기운 속으로 들어가게 해줍니다. 그런데 이 터져나오는 생명의 힘, 기쁨, 환한 색채를 드러낸 그의 이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그의 독특한 삶을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목사로 삶을 살고 싶어 신학교에 갑니다만, 라틴어 등 고전어에 막혀 1년을 고투한 후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맙니다. 그런 그를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선교학교로 보냈고, 그는 보리나주라는 탄광촌에서 선교활동을 하게 됩니다. 19세기의 탄광촌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열악한 조건이었습니다. 매일 직면해야 하는 지하갱도의 폭발위험, 지하의 숨막힌 공기 속의 살인적인 노동에 비해 턱없이 적어 입에 풀칠도 겨우 할 정도의 임금 등으로 인해 탄광촌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하였습니다. 그는 그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돈과 옷가지들을 전부 나누어주고, 자신은 포장지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적은 양의 빵과 몇 가지 음식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며, 거주지조차 빌렸던 세집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오두막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짓눌려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에게 회개를 강요하거나 복음을 의무지우는 위압적인 선교사가 아니라, 성서 속의 고난이 서린 인물을 광부들 안에서 보고 그들에게 그러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독특한 젊은이를 경계하던 마을 사람들도 티푸스가 퍼지자 의사도 포기한 중환자를 고흐가 돌보고 그들의 목숨을 살리는 그의 헌신을 보고는 그에게 흔들림 없는 신뢰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파업이 일어나자 턱없는 임금으로 비참한 밑바닥의 삶을 살아가던 광부들의 편에 서자, 광산 관리자들은 물론 선교위원회 지도층과 돌이킬 수 없는 긴장관계가 생겨나고, 결국 부르조아적인 감성을 지닌 그들로부터 선교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맙니다. 이 상황이 고흐에게 얼마만한 고통을 주었는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그로 하여금 삶의 또 다른 결정을 하게 만드는데, 늦은 나이에 그는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보리나주에서 확신하고 체험했던 예수와 복음의 철저함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이 확신을 표현하게 됩니다. 초기에 그가 그린 그림은 감자먹는 사람들, 직조공 등 당시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림의 색채는 그의 경험과 닮은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검은 색조였습니다. 그런 그가 프랑스로 가서 인상주의 그림과 만나고 그들의 색채에 경이를 느낍니다. 그는 인상주의의 가벼움은 따르지 않지만 색채의 신비와 대면하면서 그의 삶도 바뀝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남부 아를로 이사하며, 그곳의 밝고 상쾌한 날씨, 소박한 시골 사람들에 푹 빠져, 검은 늪에서 빠져나오듯 빛과 생명, 색채, 생기로 가득 찬 그림들을 그려냅니다. 그의 모진 인생 한복판 선사받은 부활의 체험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 밝음은 어둠과의 대면, 삶의 바닥에 내팽개쳐진 고립감, 세상의 냉혹함과의 힘겨운 투쟁을 뚫고 솟아오른 빛입니다. 아를에서 그는 고갱과 시도했던 화가공동체 삶이 실패로 끝나고, 귀를 자르는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정신병원생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만, 그가 체험한 이 생명, 부활은 결코 단절되지 않고 죽음 너머 그가 그토록 바라던 영원 안에서의 진정한 부활을 만발한 복숭아꽃 그림에서 감지하게 됩니다. 그의 그림들은 오직 이 죽음과 부활의 빛 안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