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 수도원
구에릭 아빠스
(12세기 시토회 사부)
강론집
부유와 가난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두 빈손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하느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선행의 큰 보화, 경건함의 많은 열매는 우리 몸의 밭과 마음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갈아야 합니다. 그리고 보속하는 수도승 생활의 몰약, 기도와 예배의 유향, 관상의 황금을 그분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 “주님께 드려라, 신들의 아들들이여!”(시편 28,1) 차라리 욕정을 드리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쾌락과 허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머리의 두 딸이 만족을 모른 채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져오라! 가져오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잠언 30,15 참조). 그러면 무엇을 주님께 바쳐야 하겠습니까? 황금인 ‘주님의 영광’을, 유향인 ‘흠숭’을, ‘주님께 당신 이름의 영광’(시편 28,2)과 그분의 묻히심(요한 19,39)을 위한 몰약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난한 자의 부유한 청빈
그러면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베드로의 아들은 나에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금과 은은 없다”(사도 3,6), “외제 유향과 몰약 주머니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그러면 당신은 빈손으로 주님 앞에 가려고 하십니까? 새로 태어나신 임금님께 예물로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 풍요한 가난이여, 오, 부유한 벌거벗음이여! 이것은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자진하여 받아들임을 전제로 합니다! 어떤 보화를 당신에게 넘치도록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황금이 아니라 최고의 황금, 불로 정련된 황금입니다. 몰약과 유향뿐만 아니라 “상인들이 사고파는 온갖 향수입니다”(아가 3,6). 그리스도의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이렇게 넘치는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까?
“나는 옳은 길을 가고 바른 길 한가운데를 걸으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안겨주고 그의 금고를 가득히 채워준다.”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있는 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고, “부귀와 영화, 재산과 정의”(잠언 8,20-21)도 함께 가지게 될 것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아름답고 고귀한 것, 구원의 진귀한 보화,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형제들이여, 이 자부심(교만)은 세상을 멸시하고(insultantium)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exultantium)이들이 누리는 영예입니다. 왜냐하면 성인들이 보화에 비교 할 만큼 가난을 가졌듯이 그들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 겁쟁이들아, 왜 당신들은 나와 함께 이런 재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까? 이런 자부심을 겸손의 스승께서는 결코 나무라지 않으시고, 만일 여러분이 용감하게 세상을 멸시하고, 여러분의 궁핍에 대한 사랑과 그 영예에 비교하여 세상의 영예를 쓰레기로 여긴다면 그분은 그 자부심을 오히려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가난을 자랑한다면 진정 당신은 완전한 부자입니다. 당신을 축하하는 대신 사도는 “나는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라며,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갖추게 되었고 특히 언변과 지식에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은총의 선물을 조금도 부족함 없이 받았습니다.”(1코린 1,4-7)라고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완전히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묵시 3,17).
- 실제로 바오로가 제자들에게 축하하는 보화들 속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새로 탄생하신 그리스도께 합당한 예물로 드릴 수 있는 황금, 유향, 물약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보물을 드릴까?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나는 그런 것을 받아본 적도 없고, 그런 황금이나 유향, 몰약과 같은 보화를 내 재산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다.’라고. 그리고 당신은 ‘나는 가난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겨우 빵을 구걸해서 먹을 정도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바칠 것이 없다고 믿습니까? 보십시오, 당신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까!(루카 15,13 참조)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죄인을 나무라지 말라.”(집회 8,5)고 지혜로운 현인은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에게 자신을 시험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여 주저하지 말라고, 아버지께서 주신 유산이 아직 조금 남아 있지 않은지, 그 남은 것을 가지고 새로 시작하여 전부를 다시 얻을 수 없는지 자문해 보라고 권고해 주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 안을 파보라고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진귀한 보물은 땅속 깊은 곳에 그냥 숨어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보화를 얻기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팔라고 강요하는 이유는 바로 그 보화가 밭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마태 13,44). 이스라엘 사람들 열 명은 밭에 보화를 숨겨둔 것이 있으니 제발 살려 달라고 애걸하여 살인자의 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예레 41,8).
아, 이 얼마나 위대한 선행의 보화들이며, 얼마나 많은 경건의 열매가 인간 육신의 밭 속에 묻혀 있는지, 또 그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얼마나 더 큰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지, 누가 애써 그것을 파내려고 노력만 한다면! 나는 이것을 플라톤이 가르친 개념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영혼이 육신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기능을 배웠으나 육신의 죄 속에 묻혀 망각되어 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절제와 열심한 노력으로 다시 파서 꺼내주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인간이 지닌 이성과 자연적인 능력이 모든 덕의 양성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마음으로 되돌아간다면(이사 46,8) 그리고 육체의 훈련으로 당신을 다스린다면(1티모 4,8) 당신이 바라는 고귀한 보화를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첫 시작부터 황금이나 유향을 얻지는 못할지라도 불필요한 것이 아닌 몰약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받으신 몰약을 불필요하다거나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가져온 몰약을 그분의 묻히심을 위한 상징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고(마태 2,11), 그들이 예수의 시체를 향료(몰약)로 발라드림으로써 비로소 장례를 완전히 끝내주기를 원하셨습니다(요한 19,39).
몰약 : 유익한 아픔
- 만일 당신이 좀 더 자세히 듣기를 원한다면 나는 당신 마음 안에 있는 몰약은 아픔이고 당신의 육체 안에 있는 몰약은 힘든 노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지 이 두 가지는 모두 보속하려는 정신으로 하였을 때 그렇습니다. 우리가 두 가지 모두를 몰약이라고 한다면, 단지 그것은 이름의 어원학 상 혹은 그 맛이 그렇기 때문만은 아니며, 오히려 그의 의학적인 효력 때문일 것입니다. 몰약은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이 굉장히 쓴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효력으로 말하면 다른 유용한 특성을 제쳐놓고라도 우선 부패를 예방해줍니다. 맛은 이보다 더 쓴 것이 없습니다. 죄인이 보속해야만 하는 자신을 슬퍼하는데 고통만큼 효력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는 영혼의 슬픔 속에서 그의 세월을 생각하며(이사 38,10)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나를 죄인으로 다루지 마소서”(욥 10,2). 이 모든 슬픔은 다른 것이 아닌 몰약이며, 한편 이것은 호화로운 삶의 부패에서 그를 보호하여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막아주고, 다른 한편 마땅히 그가 치러야할 보속으로 결코 죽지 않는 구더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나누어가짐
그러면 이것은 육체적인 노고 중에서 어떤 것을 말합니까? 그것은 단순히 어떤 하나의 몰약이 아니라 완전한 몰약덩어리를 말합니다. 세속에서 갓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규칙적인 단식, 철야기도, 매일의 육체노동, 거친 옷,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가혹하게 느껴지리라 믿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한데 묶어서 짐처럼 지고 가도록 그들에게 짊어지웁니다. 그들은 극심한 괴로움 속에서 이 몰약덩어리를 지고 갑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은 아직 “가슴에 품은 유향꽃송이 같은 내 사랑”(아가 1,12)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나누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서는 마치 위통을 약쑥즙으로 진정시키듯이 마음의 괴로움을 외적 고통을 통해서 진정시킬 수 있음은 감미로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단 음식을 포식하여 소화불량에 걸린 위를 쓴 음료로 깨끗하게 하듯이, 안일하게만 살아온 이들의 쓰라린 양심은 다른 무엇으로도 안되고, 그가 살아온 정반대의 삶, 즉 엄하고 규칙 바른 생활을 통해서만 고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자주 마음의 고통인 몰약의 술을 마시게 되면(시편 59,5), 그 효력은 죄인이 그의 죄를 통회하면 할수록 더 큰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쓴 몰약의 술을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 27,34). 왜냐하면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힐 만한 죄를 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의 포도나무의 열매로 빚은 쓴 포도주를 그분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분은 참 포도나무의 열매로 만든 새 포도주를 그의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의 나라에서 마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26,29).
육체의 훈련
- 더욱이 티모테오와 같이 완덕에 나아간 사람에게는, 경건함에 비교하면 육체적인 훈련이 가져다주는 이익은 대단한 것이 못될지 모르나(1티모 4,8), 이렇게 우리처럼 거칠고 불완전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경험으로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질박한 삶의 쓰라림과 우리 생활의 괴롭고 힘든 노동이 부패에서 우리를 건져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나 2,7). 만일 매일 힘들게 노고를 치르는 사람들의 손에서 몰약이 뚝뚝 떨어지지 않는다면(아가 5,5), 여러분의 마음과 몸에는 온통 구더기가 우글거리리라는 것을 아마 상상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치한 생활이 벌레입니까? 나는 그보다 더 독하고 해로운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아부하며 꿈틀 꿈틀 기어들어 와 미소를 머금고 물어뜯고, 달래주면서 관통시켜 버리고,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파멸로 이끕니다. 영적인 태만과 슬픔 역시 벌레가 아닙니까? “옷을 갉아먹는 좀처럼” 그리고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처럼 상심(슬픔)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 먹습니다”(잠언 21,25).
그러므로 전 생애에 걸쳐 그의 손에서 이런 벌레들을 죽이는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 사람은 복됩니다. 지금 벌써 육신의 장례를 위해 미리 향유를 바른 그 사람은 진정 복됩니다(마르 14,8). 그의 몸입니까, 아니면 예수의 몸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의 몸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몸은 예수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6,15).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이렇게 향유를 바른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 벌레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르 9,43). 그것들에서 생성해 나오는 그 벌레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유향 : 경배와 봉헌
- 몰약, 아주 질이 뛰어난 순수한 몰약(집회 24,20; 아가 5,5), 당신은 왕들이 주님께 예물로 드린 것과 같은 것을 가져가지는 못하더라도, 지혜의 황금 아니면 경배의 유향을 드리기에 당신이 가진 재산이 충분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당신의 부서지고 꺾인 마음(시편 50,19)과 보속의 괴로움으로 모진 쓰라림을 맛본 몸은 주님께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은 설명이 있을지 모르나 초보자의 맏물은 몰약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진보한 사람의 예물은 유향이며, 최종적으로 완덕에 나아간 사람이 드리는 예물은 황금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복음사가가 제일 먼저 이 귀하고도 값비싼 것을 그들이 지닌 높은 가치의 순서에 따라 나열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마태 2,11). 요컨대 다른 곳에서도 진보의 순위에 따라 유향을 몰약 앞에 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기가 치솟듯이 몰약과 유향 냄새 풍기며”(아가 3,6), 그리고 “나는 몰약산으로 가리다. 유향 언덕으로 가리다”(아가 4,6).
만일 몰약이 유향 보다 앞서고, 인간적인 약함에 도움이 되는 것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결코 그것은 작은 진보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축제의 예물로 바치는데 합당한 제물이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 사람은 부서지고 꺾인 마음의 제물(시편 50,19)과 업신여김을 받은 육신을 봉헌하여, 이제는 흠숭의 유향과 함께 찬미의 제물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계약에 따르면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 위에 큰 위로가 내려지고 재를 뒤집어썼던 사람에게 빛나는 관을 씌워주고, 상복을 입었던 몸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줄 것이고, 침울한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이사 61,3). 그러면 슬퍼하던 사람들은 “당신께서는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꿔주셨고, 제 좌절의 자루옷 푸시어 저를 기쁨으로 띠 두르셨나이다. 이제 제 영혼은 더 오래 슬퍼하지 아니하고 당신을 노래하여 잠잠하지 않으리다.”(시편 29,12-13)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야훼를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고 나의 하느님 생각만하면 가슴이 뛰고, 그는 구원의 빛나는 옷을 나에게 입혀주셨고 정의가 펄럭이는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이사 61,10).
기쁨과 찬미의 옷
- 이 냉혹한 겨울에 자신의 가난한 옷차림을 불평하며 “이 가혹한 추위에서 누가 우리를 구해 주리오!”하며 비탄에 빠진 형제들이여, 왜 여러분은 이런 구원과 기쁨의 옷, 찬미의 망토를 입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면 그 영혼들은 주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시편 33,3). 여러분을 감싸주는 찬미의 망토는 모든 찬미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그분께서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마태 24,37) 여러분을 덮어주고 따뜻하게 감싸주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해주시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망토가 너무 짧아서 양쪽을 다 덮을 수 없다고 당신은 말합니까? “여러분을 대하는 우리 마음이 옹색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색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2코린 6,12-13). 그러면 그 망토는 여러분을 덮고도 남을 만큼 넓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손은 우리를 구하기에 짧지 않습니다.”(이사 59,1) 만일 우리의 불합리한 행위가 그분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일은 그분에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자들이여, 이 망토는 따뜻합니다. 그분은 따뜻함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내면만 따뜻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면도 따뜻하게 해주십니다. “남풍이 땅위로 불어오면 너희의 옷도 따뜻하여지지 않겠는가?”(욥 37,17). 그렇습니다. 그 때에 불화살이 뼈 속에 박히고(애가 1,3) 훨훨 불타오르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왕들과 함께 바친 유향에다 이 불화살로 불을 붙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기도는 주님의 면전에 분향으로 여겨질 것이고(시편 140,2) 제물의 그 향긋한 냄새를 맡으신 분께서(창세 8,21) “네 옷의 향기는 유향의 향기 같구나!”(아가 4,11)라고 당신에게 말씀하시도록 하십시오.
황금 : 관상의 지혜
- 지혜의 황금에 관해서는 이미 말했듯이 완전한 사람의 예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거기에 도달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은 사람 외에는 이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묵시 2,17). 그러므로 지혜를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완전한 사람들에게 지혜를 말하십시오(1코린 2,6). 그리고 그가 가진 금으로 여러분의 귀에 귀걸이를 만들어 거십시오. “나는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필리 3,12-13). 참으로 위대하고 복된 사람입니다, 지혜를 찾았고, 넘치는 명민함을 가진 사람! 영원한 것의 관상 안에서 지혜를, 세속의 것을 분별함에 있어서 명민함을 가진 사람!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을 좀 더 겸허하게 표현한다면 그는 자신과 타인을 통치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황금은 제물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유향이나 몰약 보다 더 진귀한 것입니다. 사람이 바랄 수 있는 모든 덕이나 은총 또한 이것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혜롭고 덕이 충만한 사람, 모든 것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은 그의 주된 예물인 숭고한 관상의 황금이나 그의 지혜로운 분별을 예물로 드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는 유향과 자신을 포기함 안에서 드리는 몰약의 예물 또한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새로 태어난 임금님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예물로 바칩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우리가 예물을 바치고 싶어 하는 그분께 간청합시다. “여러분 중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느님께 구하십시오.”(야고 1,5).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그분께로부터 오는 것”(야고 1,17) ‘그것들은 나의 선물, 내가 준 것’ 이라고 빛의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광이 세세 영원히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