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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영성 역사 안에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12세기 수도 개혁 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새롭게 창립된 시토회의 발전을 고무하고 그 영성에 자신의 힘찬 비젼을 불어넣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에 거스르는 베드로 아벨라르도의 파괴적인 이성주의와 스콜라 철학의 영성의 자율성에 항변했는데, 다음 세기에 이 둘은 영적 경험과 이성의 지각 사이를 분리시키려 하였다. 그는 후기 중세에 흥했던 두 가지 신심을 촉진하였는데,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신심이었으며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영성에 있어 주된 추진력이 되었다.
서양 역사에 있어 사랑이라는 주제에 몰두하는 유례가 없는 한 세기 안에서, 베르나르도는 당대의 어떤 사람보다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 사랑에 대한 찬사 안에서 그는 음유시인이나 낭만적 소설 작가들을 반영한다. 그러나 세속 작가들과는 달리 그는 이 사랑을 그리스도께 대한 영혼의 사랑의 상징으로 보며, 이 사랑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에로의 여정을 그려낸다. 그리스도교 영성 안에서 사랑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고전적인 안내자가 될 정도로 그의 업적은 위대하다. 단테가 “신적 코메디”(The Divine Comedy)의 정점에서 자신의 영적 인도자로 베르나르도를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베르나르도는 그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데, 먼저 마리아에게로,그 다음으로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에로 일치시키는 하느님의 비젼에로 그를 이끈다.
그러나 사랑의 영성의 출현은 12세기 프랑스에서 그리스도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정말 그렇지 않다. 서방 영성 고전의 탐구자인 리차드 페이느(Richard Payne)가 관찰한 대로 세계 종교 안에서 사랑의 영성의 위대한 세기였다. 예를 들면 유대교에서 랍비들은 아가에 대한 신비적 주석을 쓰는데 새로운 열정을 보였다. 12세기 후반에 프랑스와 스페인에 카발라가 출현하였다. 이 복잡한 신비적 전통은 영성생활에 있어 사랑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론적인 체계와 실제적인 기술을 제공하였다. 이는 쉐키나(shekhinah) 혹은 하느님의 여성적 측면을 강조하였으며, 여성적 에너지와 남성적 에너지의 통합을 영성생활의 중심으로 보았다. 13세기에 이 전통은 하느님 사랑을 표현하는 중세 유대교의 신비적 텍스트인 Zohar 저술로 이어진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안식일에 남편과 아내의 성적 결합은 점차적으로 하느님의 남성적, 여성적 일치에 참여하는 거룩한 예식이 되어갔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 수피 스승들의 저작물 안에서 역시 사랑은 풍요롭게 피어났다. 이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신적 아름다움 안에서 사랑스럽다는 주제를 강조하였고, 이 신적 아름다움은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이슬람교 작가들은 마음을 사로잡는 문학적 기교를 지니고 사랑의 영성을 서정시를 통해 표현하였으며, 종종 신적인 사랑스런 분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하였다. 이 전통은 13세기 루미의 신비적 사랑 시에서 그 정상에 이른다.
힌두교에서 사랑의 길 혹은 신심은 이어지는 모든 역사를 통해 힌두교의 주된 길이 되는 발전의 단계를 얻게 된다. 더 이른 세기 남부 인도의 사랑의 신비가인 Alvar와 Nayanar의 영감을 받아 사랑의 길은 12세기에 Ramanuja에 의해 철학-신학적 기초가 놓여지게 된다. 북부 인도에 사랑의 전통이 퍼진 것은 이 시기였으며, 이는 힌두 영성의 주된 추진력이 되었다. 기타 고빈다(Gita Govinda)가 쓰여진 것도 역시 이 시기이다. 이것은 힌두교의 아가서에 해당되며 에로틱한 사랑이 영적 여정의 상징으로 경축된다. 초기 기원에도 불구하고 탄트라 전통은 이 시기에 전성기를 이루는데 하느님의 여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고, 에로틱한 경험을 끌어들이며, 사랑의 영성에 예식을 합치시킨다.
탄트라와 유사하게 불교에서의 발전은 북부 인도, 네팔, 티벳에서 일어났다. 12세기 일본에서 호넨은 불교의 순수한 땅의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와 그의 제자 신란은 조명에로 이끄는 것은 선의 엄격한 훈련이 아니라 아미다 부처의 자비나 자비로운 사랑이라고 가르쳤다. 이 전통은 일본 불교에서 주된 추진력이 되었다.
세계 전체의 영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특별한 역할을 해왔다. 세상의 종교들 안에 사랑이 새롭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일깨워졌을 때 그리스도교 안에서 사랑의 길의 영적 스승으로 나타난 이가 베르나르도였다. 세계 종교들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사랑에 부여한 탁월함으로 인해 이 중심 주제를 자기 인식의 새로운 차원과 그리스도인을 사랑의 첫 일깨움에서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인도하는 길 묘사에로 가져갈 특별한 재능을 지닌 스승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베르나르도 혼자 우뚝 서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럽 그리스도교 안에서 12세기에, 사랑은 세속과 수도생활 영역 안에서 모두 배양되었다. 궁정과 수도원 금역 양쪽 모두 안에서 흥성하였다. 12세기 전에 남부 프랑스에서 음유시인들은 낭만성을 일깨우기 시작했으며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의 영광과 슬픔을 노래하였다. 12세기에 이 사랑시는 흥성하였고 이 주제는 로망스라는 문학 장르를 통해 더 발전되었다. 이야기꾼들은 랜슬럿과 쥬느비에브, 트리스탄과 이졸데 사이의 비극적 사랑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베르나르도의 수도원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쓰여진 트롸(Troyes)의 크레티엥(Chretien)의 낭만적 소설을 통해 궁정의 기사와 숙녀들은 궁정 사랑의 신비의 한 부분이 된 신사적 예절과 세련된 감정을 훈련받았다. 서양 문화 안에서 낭만적 사랑의 신비에 크게 공헌한 이 세속적 움직임은 명백한 사랑의 영성을 산출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는 나중에 단테 안에서 활짝 꽃피게 될 그러한 영성의 씨앗을 보유하고 있었다.
12세기 프랑스에서 사랑의 영성을 산출한 것은 궁정이라기보다 수도원 금역 안에서였다. 이 둘 사이에 영향력을 주고받았는가? 학자들은 지금까지도 이 점에 대해 논쟁 중이다. 어떤 영향 혹은 상호간의 영향이었든 아니든 간에 다음 사실은 명백하다. 세기가 흐름에 따라 사랑은 이 시기 영적 작가들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베르나르도와 같이 많은 이들이 아가서 주석을 하였는데 예를 들면 셍 티에리의 윌리엄과 셍 빅톨의 리차드이다. 이 두 작가들은 또한 인간적 사랑의 빛 안에서 삼위일체를 해석하는 신학적 소책자를 저술하였다. 샤르트르의 플라톤파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빙엔의 힐데가르드는 사랑을 우주라는 배경 안에 놓았다. 이 사랑의 영성의 만개 안에서 베르나르도는 지도적 역할을 하였는데, 자신의 인격과 위치 뿐만 아니라 영적 지혜의 깊이를 통해 이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12세기 특징이 그러했던 것처럼 베르나르도는 경험 위에 자신의 영성을 세웠다. 아가에 대한 세 번째 설교 첫 부분에서 그는 자신의 수도승들에게 각자의 경험을 살펴보라고 명한다. “오늘”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경험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맥락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저작물을 통틀어, 그가 종교적 체험 특히 사랑의 체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데, 이는 사랑의 첫 일깨움으로부터 가장 사랑하는 분과의 신비적 일치까지 전체 스펙트럼을 망라한다. 이를 감정이나 감수성의 단순한 환기 정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베르나르도와 12세기 중요한 영적 작가들은 사랑의 가장 깊은 차원으로부터 즉 사랑과 지성이 함께 결합된 영의 수원지로부터 이를 끌어낸다. 더 나아가 베르나르도는 영적 길로 사랑의 원동력을 예리하게 깨닫고 있다. 그가 지적 뛰어남으로 그려낸 것이 바로 이 길이다. 쟌 러끌레르끄는 이 책의 베르나르도 입문에서 베르나르도의 독특하고 결정적인 차이는 개인적 주관적 경험과 보편적, 객관적 가르침을 함께 결합시킨 자신의 방법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성을 무시하거나 더럽히기는커녕 12세기 영적 작가들은 바로 종교적 체험이라는 영역 안에서 지적 자기 인식의 새로운 차원을 얻었다. 예를 들어 베르나르도와 동시대인인 셍 빅톨의 리차드는 사색적 영성 혹은 사색적 신비주의의 훈련을 발견하였다. 영성의 영역에서 지성의 이 새로운 폭발에 뒤따르는 격앙에 고무되어 리차드는 삼위일체에 “필요한 이유들”을 탐구하게 된다. 이는 좀 더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파 신학자들이 추구하기를 거부했던 지성의 확장이다.
베르나르도의 영적 작품 모두가 직접 사랑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의 저작물 전체에서 사랑은 단연코 우세한 주제이다. 그는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영적 여정의 정점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그의 모든 저작물은 이 과정의 어떤 단계의 묘사라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에반스는 이 책에서 영적 여정이라는 순서에 따라 발췌한 것을 정렬한다. 즉 “회심에 대해”, “겸손과 교만의 단계에 대해”, “숙고에 대해”- 이는 관상을 다룬다. “하느님 사랑에 대해” 그리고 “아가에 대한 설교” 이 책은 서간 선집으로 끝을 맺는데 이 또한 사랑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진다.
베르나르도의 사랑의 영성이 포괄적인 표현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가에 대한 설교에서이다. 이 설교들의 중심 주제는 친밀함이다. 즉 신부와 신랑 사이, 영혼과 그리스도 사이의 친밀함이다. 설교는 아가서 첫 절에 표현된 친밀함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된다. “당신 입의 입맞춤으로 입맞추어 주셔요.” 설교 7에서 베르나르도는 인간 사랑 중 가장 친밀한 것으로 남녀 사이의 사랑에 대해 찬사를 한다. 아가서는 왜 신랑과 신부의 이미지를 사용하는가? 그들이 연인이기 때문이며, 베르나르도가 설명하는 대로 연인들의 친밀함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기본적 태도를 아주 섬세하게 구별한다. 두려움은 노예를 자신의 주인에게 향하도록, 급료를 얻고자 하는 갈망은 노동자를 자신의 고용주에게로, 학생의 지식에 대한 갈망은 교사에게로, 아들의 존경심은 아버지에게로 향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입맞춤을 갈망하는 이는 연인이다. 베르나르도는 말하기를 “이 사랑의 애정은 자연의 은총을 뛰어넘는데 특히 그 원천 즉 하느님에게로 향할 때 그러하다.” 바로 이들의 사랑의 친밀함 때문에, 말씀과 영혼 사이의 사랑은 신부와 신랑 사이의 사랑보다 더 나은 표현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둘은 모든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의 상속재산, 하나의 테이블, 하나의 집, 하나의 침대, 하나의 육을 공유한다.”(Ⅰ.2)
신부와 신랑의 이미지를 통해 베르나르도는 말씀과의 일치를 향한 영혼의 움직임을 장황하게 그리고 뛰어난 세련됨으로 묘사한다. 자신의 청중을 신비적 애정의 정점에로 이끌기 위해 감각적 상상을 조화롭게 편성할 때 그는 자신의 열정적인 수사학적 재능을 충분히 활용한다. 설교 뒷부분에서 그는 신랑과의 일치라는 자신의 친밀한 체험을 뛰어난 섬세함과 솔직함을 가지고 묘사한다.
아가서에 대한 자신의 상징적 해석 안에서 베르나르도는 자신을 고대 전통 안에 두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흐름 안에서 3세기 오리게네스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아가서 주석 서문에서 오리게네스는 “이 책은 내게 마치 결혼축가와도 같아 보이는데 이는 솔로몬에 의해 연극 형식으로 쓰여졌으며, 솔로몬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자신의 신랑과 결혼을 하고, 자신의 신랑에 대한 신적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신부라는 역할 안에서 노래한다.”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오리게네스는 신부에 대한 두 가지 우의적 비유를 구별한다. “그녀가 그분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진 영혼이든 혹은 교회이든 그녀는 그분과 깊이 사랑에 빠져있다.” 비록 베르나르도가 개인 영혼에 대한 우의적 표현으로 신부라는 의미를 강조하기는 하지만 그도 역시 신부를 교회로 보는 두 번째 뜻을 발전시킨다.
교부시대와 중세시대에 우의적 표현은 공상력의 비약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현실이라는 틀과 정신의 본성이라는 기초 위에 성서의 더 깊은 차원으로 관통해 들어가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함에 있어 영적 의미가 물질적 상징 안에 새겨졌으며, 이는 성서와 전통에 의해 양육된 고양된 영적 감각에 의해 감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베르나르도가 말씀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영혼에 대한 가장 합당한 상징을 신부와 신랑 안에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부와 신랑 사이의 사랑은 영혼과 하느님 사이의 친밀한 사랑을 위한 자연적 상징이며 현실의 본성 그 자체 안에 세워져있다. 베르나르도가 감동적으로 묘사한 대로 다른 어떤 인간관계도 신부와 신랑 사이의 관계보다 더 친밀한 사랑을 얻을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우의적 표현의 두 차원 즉 영혼과 교회는 멋대로 지어낸 것이 아니다. 이 구별 안에서 개인과 공동체 상호 관계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기초를 감지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교회는 어떤 기구가 아니라 믿는 이들의 공동체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말씀이 각 영혼의 신랑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같은 말씀 안에 기초함으로써 서로 연결되기 때문에 말씀은 개인 상호간의 그리고 공동체 관계의 기초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들이 활성화될 때 일깨워지는 것은 바로 이 바탕이다.
이 간략한 관찰은 단지 베르나르도 영성의 풍요로움의 작은 부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탐구하는 독자들은 그의 가르침이 그의 열정적 감동과 함께 전달될 때 그리고 이것이 번역을 통해서도 빛을 낼 때 그의 가르침의 깊이와 세련됨에 감동받을 것이다. 12세기 그리스도교 영성만이 아니라 그 역사 전체 조망 안에서 그리고 세계 영성이라는 더 폭넓은 지평 안에서 그에게 걸출한 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특성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