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증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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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은 가톨릭 전례에서 여왕이신 마리아의 축일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그 해에 연중 주일의 전례가 우선하게 된 이 전례의 빛에 조명되어, 크리스토퍼는 잊어버리고 있던 텍스트를 옮겨 쓰도록 충동 받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텍스트가 의미 깊게 느껴집니다. 크리스토퍼에게 있어 이 텍스트를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텍스트가 지닌 현재의 진실성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그를 재촉시키게 됩니다.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어제, 종이 뭉치 속에서 텍스트를 발견하여 옮겨 쓰고 있다.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당신의 몸과 피, 외침, 그리고 눈물 때문에 나는 태어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길은 열려 있다.
괜챦아. 오직 나에게 남아 있는 것,
그것은 당신께 의지하고
따르는 일.
이러한 말들, 오늘은 진짜일까요?
나는 당신께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이 의탁에
나를 끌어 들이는 것은
그 <부인>” (일기, 1993년 8월 22일)
그 일요일 오후에, 살해 뉴스가 전해지고, 이것은 크리스토퍼까지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알제에서의 살해. 허다한 살해 이후의 사건. 이 수첩은 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나의 전존재는 꿰뚫어졌다.”
다음 날인 23일 월요일, 아직은 위험 범위 바깥쪽에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는 주님께 불리우고 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의 몸이란 것은, 이 폭력에 우리를 드러내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 보아서는 그 대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 나라를 위하여 한 사나이가 자신을 바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말씀하셨지요. 내 좋은 내가 있는 곳에 있다. 진실로 당신을 따라야겠습니다.” (일기, 1993년 8월 23일)
공동체의 연피정은 12월 중순에 끝났습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묵상과 양심 성찰의 결실인 결의를 고찰하고, 다음과 같이 자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삼손과 함께 공동체의 피정을 할 수 있었다. 검토해야 할 점으로 무엇이 남아 있는가? 과연, 내 안에는 행동으로 취할만한 결정적인 결심이 있는 것인가? 기도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한 문단으로 당신이 나에게 주신, 공경을 드러냄이 마땅하올 점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몸에 익혀, 비틀거리는 일없이, 그 지점까지 가야만 하겠습니다.
불가능한 결의, 그렇습니다. 나는 그것을 택했습니다. 당신으로부터 받은 것이지요. 사랑이 나를 그렇게 시킵니다.
이것은 내 몸이다. 내어 준 것.
이것은 내 피이다. 흘려진 것.
당신의 말씀을 따라, 그 일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당신의 힘이 나를 꿰뚫으시기를.
그리고 이 결의 - 당신의 것 - 이 나를 초월해 갑니다.
부인 곁에서 (이 분의 살에서 태어나신 아드님인 당신은, 내가 이분을 ‘어머니’라 부르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저희 집으로 모시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내 결의란 정말 단순합니다. 나는 있다.
결의는 죽음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일기, 1993년 12월 22일)
자기 봉헌으로 향하는 길은 장래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이 길은 성체 제의와 예수의 마리아를 통해서입니다. 크리스토퍼가 여기에 동의했을 때, 마리아의 말을 자신의 것으로 한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며칠 후인 12월 31일 유기서원 기념일, 크리스토퍼는 서원식 때에 있었던 원장 강화를 상기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이슬람교의 달력으로 아쿠우라의 날로서, 특별해 자선에 바쳐진 날입니다. 즉 부유한 사람들은 자기 수입의 10%를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라고 불림 받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신부는 아틀라스 수도원이, 벌꿀의 연간 수입 중에서 10%를 매우 가난한 사람과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 서원식 강론 안에서도 이날, 당시 장상이었던 장 바티스타 신부는 참석하신 크리스토퍼의 양친에게, 열둘의 자녀 중에서 한 사람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젊은 수도자는 “오오, 주님, 저를 받아 주십시오. 당신 말씀을 따라서 저는 살겠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만, 이 자기 봉헌은, 우리가 죽을 때에 비로소 완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크리스토퍼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1976년 12월 31일, 아쿠우라의 날, 장 바티스타 신부는 나의 열둘의 형제, 자매 중 한 사람을 봉헌하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죽는 날이 진정한 서원날이라고도.
당신의 손에, 마리아
당신의 손에, 알제리아의 교회여.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사랑’에 나를 바친다.
그 사랑은 나를 ‘사랑받는 자’라 부른다.
당신 안에 봉헌된 자라고 부른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마리아와 알제리아 교회를 통해서 바치는 자기 봉헌이라는 이 말은, 며칠 전의 성탄절 새벽에 공동체가 GIA의 무장그룹의 방문을 받은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GIA의 리더는 사얏트 앗티야인데, 이 같은 그룹에 의해 15일 전 수도원 부근에 살던 12명의 크로아치아인이 살해된 사실에서 특별히 큰 충격을 남겼습니다. 31일 같은 날, 공동체는 일련의 투표를 하여, 그 곳에 머무르는 것에 의견의 큰 일치가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복녀 마리아 가브리엘라 사게두는 에큐메니즘의 세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우리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복녀가 자기의 생명을 그리스도인의 일치 때문에 바친 것에서 복녀를 영적 에규메니즘의 모델로서 자주 소개하셨습니다. 우리는 4월 22일에 복녀의 축일을 기념합니다. 크리스토퍼는 이 날 복녀를 자주 상기하여, 친밀하게 이탈리아어로 부르고, 두려움과 떨림을 느끼면서 복녀의 도움을 간청합니다.
“마리아 가브리엘라, 미아 소레라(나의 자매여), 감히 당신께 청하게 해 주십시오.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당신의 팔을. 당신은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나도 거기에 이를 수 있을까요. 오늘일까요.”(일기, 1994년 4월 22일)
1994년 이 일 년 동안, 8명의 수도자와 사제가 폭력적인 죽음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그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앙리, 에스텔, 카리닷드, 쟝, 샤르리, 크리스티안. 그들은 모두 당신의 말씀 안에서 살아있습니다. <나는 있다>” (일기, 1994년 12월 28일)
특히 12월 27일의 4명의 백의선교회(아프리카 선교회) 사제의 죽음은, 크리스토퍼에게 순교에 대하여 고찰시키고 있습니다. 순교에 대해서는 이미 공동체의 대화 안에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7월 17일 크리스티안 신부는 아프리카의 첫 순교자들을 회상한 묵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묵상은 알제리아의 현대 순교자들에게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 순교자들은 “희망이 숨겨진 증인들”이라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의 고찰은 토마스 베겟트의 텍스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만, 토마스 베겟트는 칸타베리의 대주교였으며, 교회에 대한 충실함으로 말미암아 1170년 12월 29일에 살해되었습니다. 토마스에 대하여 그리고 토마스와 함께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의 순교는 사고(事故)가 아니다. 더욱이 한 사람의 그리스도 신자의 순교는 사람이 그 의지와 노력의 결과로 리드가 되듯이, 순교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의 결과가 아니다. 순교는 결코 인간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순교는 하느님의 도구가 된 사람의 순교이며, 그 사람은 자기의 의지를 하느님의 의지 안에 위탁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순교자는 자기의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대한 위탁안에서 자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순교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이미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순교를 감수한다는 영광조차도.” (일기, 1994년 12월 28일)
그러나 크리스토퍼의 묵상을 훨씬 더 많이 차지했었던 다른 사항이 있었습니다. GIA가 백의선교회 사제들에게 계획한 것은, 단지 그들을 살해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선교사들을 인질로 삼으려고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일은, 바로 후에 아틀라스의 일곱 형제들에게 일어날 일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크리스토퍼는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에 답하려고 애씁니다.
“(크리스티안 쉐이세르에게) 그들의 진짜 의도는, 살인마적인 광기에 사로 잡혀서 당신을 인질로 취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나에게 말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알고 싶습니다. 나는 이 과정이 어떻게 계속 될 것인지, 줄곧 이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제에서? 티비리네에서? 인질이란, 다른 사람들 대신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자유로운 약속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희생자)가 위치한 입장이 사랑과 자유로 가득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가능하십니다. 그리고 제한이 없는 ‘형제’이고 ‘아들’이신 예수님의 역할에 우리들을 참여시켜 주십니다. 나는 당신들의 벗으로서, 당신들, 살해자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일기, 1995년 1월 4일)
여기서의 결론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어느 날엔가 그리스도신자로써 인질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적대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7월 25일, 교회는 전통적으로 데시우스 황제 치하의 박해 시대에 러시아에서 목이 잘린 로미안 병사 순교자, 성 크리스토퍼를 기념합니다. 7월 25일은 또한 제베대오의 아들, 복음사가 요한의 형제 대 성 야고보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아주 오래된 전통은, 여기에 834년의 크라비호(스페인)에서의 전쟁터에서 이슬람교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11세기 이래 유럽과 전 지역으로부터 이 ‘그리스도의 병사’를 존경하기 위하여 산티아고 데 콘포스테라 성당에 순례의 길을 잇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에 대한 전쟁과 승리의 이야기 줄거리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날, 1995년의 그 수호 성인의 축일에, 크리스토퍼 신부가 매우 특별한 은혜를 간청했을 때에 완전히 무시되고 맙니다. 당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신 고난 받는 종이신 사람의 아들 예수님께 이슬람의 땅에서 자기 자신을 거듭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마르 10,45 : 이사 53,11 참조)
“나는 이 날, 당신께 종이 되는 은총을 청합니다.
그리고 나의 생명을 내어 줌을
여기서
평화의 대가로서, 생명에의 대가로서
예수는 나를 끌어당기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사랑의
당신의 기쁨 안으로” (일기, 1995년 7월 25일)
자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속량하려고 바치는 종은, 자기가 타자(他者)이상의 자라든가, 타자보다 우월한 자로 간주하는 자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성탄절, 하느님이 갓난 아기가 되신 계절은 작은 자가 큰 사람이 된다는 가르침을 배우기에 합당한 시기입니다. 이러한 확신을 얻어, 크리스토퍼는 성탄절 며칠 전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그저
‘예’라는 그것만이,
여기서의 불가능을 이행하는데 충분하시기에,
부디,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일기, 1995년 12월 21일)
1995년의 성탄절이 다가 왔습니다. 크리스토퍼는 작년 5월 10일에 살해된 앙리 베르제의 카샤비아(낙타털로 만들어진 큰 두건이 부착된 투니카)로 구유를 만들었습니다. 두건은 동굴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거기에는 성가정 동상이 안치되었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감동적이고 웅변적입니다. 크리스토퍼는 이에 대해서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보라, 어린양을. 주님은 이곳에 계신다. 이제 곧 혼인이 거행된다.
카샤비아의 동굴에, 살인보다도 강하게, 거기 계신다.
주님은 우리들 사이에 탄생하셨다.
우리들 생명 안에서
봉헌되시기 위하여.” (일기, 1996년 1월 6일)
이 ‘갓난 아기’의 갓 태어난 생명은, 살해나 죽음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머지않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하늘에서는 환희와 승리의 노래가 올려 퍼집니다.(묵시 19,1-10 참조) 그러나 아직은 기어서 올라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때문에 마치 성조 이사악처럼, 수사 크리스토퍼가 모리아 산으로 오를 때 던졌었던 질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창세 22,7 참조) ‘번제물로 사용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일기, 1996년 1월 17일) 아직은 싸움의 때인 것입니다.
“어린 양과 그 위의 비둘기는, 내 안에서 내 생명과 싸우고 있는 짐승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주려고 와 주십니다.” (일기, 1996년 1월 18일)
1월의 마지막 무렵, 28일에 크리스토퍼는 예언자적인 행동을 위한 허가를 구합니다. 그것은 일요일, 주님의 날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수도원장과 사제직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제로 서품되고 5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오늘 아침, 크리스티안과 대화에서 내 청을 표명했다. ‘만약 내가 죽으면 스토라를 쿠쿨라 위에 걸치지 말아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 표시는 이미 초월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에겐 성령이 그 일을 완수하시도록 맡길 뿐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나를 알제리아의 더 새롭게 서품된 사제로 만들어 주십니다.” (일기, 1996년 1월 28일)
표시를 넘어 선 곳에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성령이 희생자를 완전히 다른 도유자, 또 한 사람의 그리스도, 또 한 사람의 메시아로 변모시켜 거룩한 부음(기름부음)을 완수시켜 주시도록, 성령의 활동하심에 열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제적 봉헌물은 이제는 이미 2년 이상이나 성령을 애타게 간청하는 자가 되어 있습니다.
3주일 후, 또 하나의 다른 예언자적인 행동이 있습니다. 이번엔 허가를 구하기 위한 청이 아니라 이미 실행된 것입니다. 폭력의 배경은 그것을 분명하게 하며,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시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거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폭력과 유혈이 이 나라에서는 또 반복되고 있다. 나는 정원의 어떤 곳에다 나의 두 번째 십자가를 묻었다. M.E. 수녀가 만들어 내게 준 것이다. T모양을 한 프란치스코회의 십자가다. 내 목에는 베르나르도(돔부 수도원)가 만든 십자가로 되돌아 왔다. 티비리네에서 심겨질 때가 언제 올까요? 내 사랑하는 분, 당신께 심겨 질 때는?” (일기, 1996년 2월 19일)
이는 매장을 선취한다는 뜻이 아니라, 땅에 심겨지는 것을 선취하는 것입니다. 만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는다면,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3월 19일 전세계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 축일이 다가옵니다. 이 날은 강한 마리아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다시 크게 열릴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더욱 ‘제물’로 변모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때입니다.
“마리아께 나를 봉헌한 기념일이다. 그렇습니다. 나는 모든 성인과의 친교 가운데, 성 요셉과 함께, 마리아, 당신을 계속 선택하렵니다. 그리고 나는 가난한 사람과 죄인과 함께, 예수의 손에서 당신을 받습니다. 당신 가까이에 나 있습니다. 봉헌된 자로서.” (일기, 1996년 3월 19일)
‘제물’임을 아는 것은 복된 것, 크리스토퍼는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나는 성체 제의를 집전할 수 있었기에 기뻤다”라고. 그리고 또 “나는 요셉이 시편 100편을 요셉과 아기가 함께 노래하듯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사랑과 정의를 나 노래하리이다. 주님, 당신을 향하여 찬양 노래 읊어 올리리이다. 완전한 길에 대하여 해명하렵니다. 언제, 나에게로 오시렵니까. 티없는 마음을 지닌 채로 내 집안에서 걸으오리이다.” (일기, 1996년 3월 19일)
이것은 함께 합창한 심포니의 최종 악장입니다. 예수, 요셉과 크리스토퍼는 함께 노래합니다. “티없는 마음을 지닌 채로 내 집안에서 걸으오리이다.” 이것이 일기의 마지막 말입니다.
여기까지의 모든 사랑은, 자상하고 충실한 마음에서 생겨나와 1968년 5월 프랑스 혁명의 시적 마음에서 생긴 깨끗하고 달콤하고 맑은 물인 크리스토퍼의 일기가 그 수도원장의 유언서를 보완하고,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비할 데 없는 명확함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이 일기는 자기 봉헌을 향한 성장의 감동적인 증언입니다.
현대 우리들의 영적 유산의 보화인 두 문서인 크리스티안 신부의 유언서와 크리스토퍼의 일기는 우리 형제들의 영광스런 ‘수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쇠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하는 가운데 있음을 분명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 이 글은 1997년 5월 21일 당시 본 수도회 총장 Dom. 베르나르도 올리베라가 각 수도원에 보낸 회람 “그들의 추억을 생생하게 보존하면서”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