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 수도원
구에릭 아빠스
(12세기 시토회 사부)
강론집
주님 승천 대축일 강론
독수리의 날개 위에
영적 생활을 하는 우리는 이미 하늘을 향해 날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의 신비는 성사(sakramente)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 뒤에 매달고 높이 솟아오르는 비행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 사랑의 독수리 날개 위에서는!
제자들과 작별하시는 예수님
- “아버지, 제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이 사람들을 지켰습니다.”(요한 17,11-12). 수난 전날 저녁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승천 대축일에 이 기도를 듣는 것은 그다지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분은 자녀들을 아버지께 맡겨드리고 영원히 떠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천상에서 천사들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고 통솔하신 분이 지상에서는 작은 무리의 제자들을 모으셨습니다(루카 12,32). 이들은 주님의 육신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이성이 충분히 자라기까지 그리고 성령의 생활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 성장해야만 했습니다. 스승께서 그토록 큰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은, 그들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끊어버릴 수 있고 오직 그분께만 의존하여 세속적인 모든 희망을 버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육신으로 그들 가운데 계시는 동안 무조건 아무 때나 당신의 애정을 그들에게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나 스승들이 그러하듯이, 부드럽기 보다는 오히려 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떠나실 때가 되자 그들에 대한 사랑에 북받쳐, 간직해온 당신의 크신 자비와 선의를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성사 - 사랑의 확실한 구원의 증표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하셨다.”(요한 13,1)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폭포 같은 사랑을 제자들에게 쏟으셨습니다. 그 때 그분은 성체성혈의 성사를 그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작별의 위로를 주시려고 그들과 함께 새롭게 머물러 계시려는 그분의 힘을 경탄해야 할지, 아니면 그분의 사랑을 경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서 육신적으로 떠나시지만 그들과 함께 머물러 계실뿐만 아니라 성사의 힘으로 그들 안에 머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당신의 존엄하심마저 잊으시고 벗을 위한 사랑의 영예 때문에 자신을 낮추시는 불의까지도 감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주님께서는 -그런 주님 이십니다 - 종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이 하나의 행위로 그분은 겸손의 모범과 용서와 화해의 성사를 세우셨습니다.(주석 : 발 씻김은 시토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성사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
- 때가 되자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충분히 용기와 격려를 주신 후,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아버지께 그들을 맡기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저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제가 이 사람들을 지켰습니다. 그 동안에 오직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저에게 주신 이들을 당신의 이름으로 지켜주십시오. 제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 주시는 일입니다.”(요한 17,11-15).
그분은 더 많이 말씀하셨으나 여기에 모두 인용할 수 없고 또 설명해줄 시간도 없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세 가지 청원기도로 요약됩니다. 그 안에는 우리 구원의 총체, 완덕의 총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더 보탤 것이 없습니다. 그들을 악마에게서 지켜주십시오. 진리 안에서 성화시켜주십시오. 나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여 주시어,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24).
아버지와 함께 계신 우리의 중재자
심판자 앞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변호해 주고 옹호해주는 변호인을 가진 사람, 심판자와 똑같은 흠숭을 받으시기에 마땅한 분, 우리의 청을 대신 중재해 주시는 분을 모신 사람은 진정 얼마나 복됩니까! 아버지께서는 나의 청을, 입술의 소망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시 20,3).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하나의 의지, 하나의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한 분(마르 12,32)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청하시는 것이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성취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힘이 있고 그분의 뜻은 성취되어야만 합니다.(이사 55,11; 히브 4,12). 무엇보다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자 이루어졌고,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생겨났다”(시편 32,19). 그분은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있는 곳에 그들도 함께 있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24). 이것은 충실한 이들에게 얼마나 큰 확증이며, 믿는 이들에게는 또 얼마나 큰 확신입니까! 우리는 받은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의 잘못을 결코 범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들과 동료 제자들에게만 이 확증이 보장된 것이 아니고, 그들의 말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믿게 된 모든 이들에게도 보장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요한 17,20)라고 주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해 받는 고난 - 가벼운 멍에
-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특권까지도 받았다고 사도는 말합니다.(필리 1,29).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여러분은 잘못된 확신과 안일함에로 떨어지는 일없이 오히려 더 큰 열정을 불러일으켜서 죄악과 싸워 이기고 끊임없는 순교의 보상으로 월계관을 받게 되기 바랍니다. 끊임없는 순교는 쉬운 것 중 하나이며 영예롭습니다. 쉽다는 것은 우리의 힘을 넘어서까지 요구받지 않기 때문이고 영예롭다함은 무장한 힘센 자와 싸워 승리했기 때문입니다(루카 11,21). 그리스도의 감미로운 멍에를 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까?(마태 11,30) 그분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높이 오를 수 있는 날개를 지니는 것이 더 쉽지 않겠느냐고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올라가신 가장 높은 하늘까지 승천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명예롭겠습니까?(에페 4,10) 성인들은 젊음이 독수리처럼 새로워져서(시편 102,5),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솟구쳐 오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디로?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입니다.”(루카 17,37)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우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 형제들이여, 그런데 사람이 그날이 오면 즉시 그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까? 그가 지금 이미 매일의 훈련을 통해서 나는데 익숙해 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누가 그것을 가르쳐 주느냐고 묻습니까? 오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독수리처럼 그분은 새끼들에게 날라고 격려하시고 그들 위를 솟아오르셨고 그들 눈앞에서 높이 승천하셨으며, 그들이 오랫동안 바라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사도 1,10-11). 그분이야말로 순간적으로 쉽게 그들로부터 모습을 감추시고 눈 깜짝할 사이에 원하시는 곳으로 솟아오를 수 있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흔들어 놓고 파닥거리며 떨어지는 새끼를 향해 날아 내려와 날개를 펼쳐 받아 올리고 그 죽지로 업어 나르듯이(신명 32,11), 그렇게 그분은 사랑을 통해서 제자들의 마음을 끌어올리셨고, 그들에게 자신의 몸으로 모범을 보여주며 그들의 몸도 같은 방식으로 승천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원한 신비에 참여했던 사도 역시 또한 우리도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테살 4,17). “그분은 케룹 위에 올라 타 날아가시고 바람 날개 위에 떠 가셨도다.”(시편 17,11). 다시 말하면 그분은 천사들의 합창 속으로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약함을 헤아리시어 자신을 낮추셨고 날개를 펼쳐 떨어지지 않도록 받아 올리시고 그 죽지로 업어 나르십니다.(신명 32,11). 다만 조건이 있다면 여러분이 행실 나쁜 아들이 아니어야 하고, 지상으로부터 솟구쳐 올라 신선한 공기를 향유하는데 두려움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드높이!
- 어떤 사람은 관상 안에서 날으나, 적어도 여러분은 사랑에 의해 날으십시오! 바오로는 신비로운 영상으로 셋째 하늘까지 붙들려 올라갔고(2코린 12,2), 요한은 한 처음의 말씀이신 분께 왔습니다(요한 1,1). 적어도 당신은 힘이 다 빠진 당신의 영혼을 먼지 속에 뒹굴도록 버려두지 말고, 게으름으로 당신의 마음이 황폐해지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타락한 생활 속에 버려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당신 자신의 피로써 영원히 속죄 받을 길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히브 9,12) 대사제께서 “마음을 드높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응답하도록 합시다. 그곳에서 그분은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 앞에 중재자로 계십니다.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십시오. “마음을 주님께 들어 올립니다!”
그렇지만 만일 당신이 천상의 것에는 마음이 없고 지상에 있는 것들에만 마음을 쓴다면(콜로 3,1-2), “저를 위해 누가 하늘에 계시나이까. 당신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서 제가 바랄 것이 없나이다.”(시편 72,25)라는 예언자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무라십시오. 아, 얼마나 비참하게 나는 정도에서 벗어나 길 잃고 헤맸던가! 나는 또 나를 위해 천상에 마련된 큰 보화를 얼마나 멸시했던가! 내가 그토록 집착한 지상적인 것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그리스도, 나의 보화는 하늘나라로 승천하셨구나! 거기에 또한 나의 마음도 있어야 할 터인데(마태 6,21). 그곳에서 나는 최초의 시작을 받았고, 그곳에 나의 몫이 있고 상속이 있도다! 그곳으로부터 주님께서 구세주로 오실 것을 고대 합시다!(필리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