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HTHILD VON MAGDEBURG 마그데부르크의 멕틸드
“ICH TANZE, WENN DU MICH FÜRST”
“당신이 나를 이끌어 주시면, 나 춤추리다.”
Margot Schmidt
마르고트 쉬미트 편역
1. 기록하라는 명령
하느님의 영광과 책이 가르치는 길들
나는 이제 이 책을[교회의 기둥들인] 성직자들에게 보낸다, 그들이 좋든 나쁘든. 왜냐하면 기둥이 썩으면 건물은 지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만의 것 나의 비밀을 계시하려는 것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원하는 사람은, 아홉 번을 읽어야 한다.
(서막)서
하느님의 자비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나 자신 스스로 선포하지 않으면 안된다[달리 하느님의 찬미를 널리 선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진정 그것은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뜨거운 오븐에 흰 제멜(빵)이 밀어 넣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Ⅲ,15)
이 책을 경계하라는 경고를 나는 사람들로부터 받았다:
만일 그것을 파묻지 않으면,
분서焚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그때 나는 어렸을 때 했듯이,
슬펐을 때 했듯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하는 분께 말씀드렸다:
아, 주님, 나는 이제 망했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였는데.
당신에게서조차 위로받지 못하고,
이렇게 슬픔에 빠져야만 되겠습니까?
당신은 나를 그렇게 하게 내몰았고,
당신 자신이 내게 그것을 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슬퍼하는 내 영혼에게 홀연히 나타나셨다.
그분은 오른손에 책을 들고 말씀하셨다:
“나의 연인이여,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아무도 진리를 태워버릴 수는 없다.
이 책은 삼위일체적이며
홀로 나만을 기록한 것이다.
그 책을 싸고 있는 양피지는
나의 순수하고 희고 의로운 인성의 상징이다.
말은 내 불가사의한 신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고 흐르듯
내 신성의 입에서 네 영혼 안으로 흘러들어간다.
말의 울림은 내 살아 있는 영을 나타내며
그로 인해 바른 진리가 밝혀진다.
이제 이 말 전부를 들어라,
그것이 얼마나 칭송받으며 내 비밀을 전파하는지를.
어떤 의심도 네 안에 품어서는 안된다.“
(Ⅱ,26)
이 책을 비추는 예언자들
우리 주님께서 이 책을 5개의 빛으로 비추어 주시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셨다.
모세의 큰 신뢰와 그의 거룩한 노고와 특히 그가 겪은 모욕, 죄 없는 그는 그것들을 참아 견뎠고, 그의 찬란한 기적들과 행복을 주는 가르침, 높은 산으로 올라가 영원한 하느님과 자주 나누었던 선택받은 사랑의 대화, 이 모든 것이 빛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이것을 주셨고 또 주실 것이며, 내가 그분의 가호 아래 부끄럼 없이 내 원수들의 악의에 찬 간계를 뚫고 지나갈 수 있게 하여 주셔서 사랑스럽게, 마치 모세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홍해를 건넜듯이 그렇게 날게 해 주실 것이다.
다윗 왕은, 이 책 안에서 시편과 함께 우리를 가르치고 탄원하고 청하고 질책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두 번째 빛이 되어 주었다.
솔로몬의 말은 빛을 낸다. … 아가서에서 신부는 도취된 대담함으로 말하며, 신랑은 그녀에게 더 없이 온화하게 말한다: “나의 귀여운 짝이여, 흠잡을 데 하나 없이 아름답기만 하여라.”(아가 4,7).
예레미야 역시 그의 몫의 빛을 비춘다. 그는 우리의 여인들로부터 비밀(세상에 없던 일을)을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예레 31,22 참조).
다니엘 또한 놀라운 지혜로 비추어 준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은총으로 그의 원수들 가운데서 몸과 영혼을 지키는 음식을 주셨다(다니 14,38). 같은 방식으로 내가 곤란에 처했을 때, 나같이 가치 없는 사람에게도 그 일이 일어났다. 나의 원수들은 그것을 조금 보았는데,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Ⅲ,20)
너희가 놀라워하는 것이 나는 놀랍다
[할레의 하인리히 수사, 라핀의 강사가 멕틸드 수녀의 언변과 저술을 놀라워하자 이에 그녀는 이렇게 응답한다]
“하인리히 선생님, 당신은 이 책에 쓴 용감한 말에 놀라셨지요. 나는 당신이 놀라워 하시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것은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같이 죄 많은 여자가 그것을 써야만 하기 때문이고, 참된 지식과 거룩하고 숭고한 명상을 (미천한) 말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나를 괴롭힙니다. 말이란 영원한 진리를 위해서는 너무도 미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서 내가 영원한 스승님께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었을 때 그분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에게 물어보아라, 사도들이 성령강림 후, 그들의 큰 좌절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토록 담대해질 수 있었는지를? 또 물어보아라, 모세가 어디 있었는지, 하느님만 보실 수 있었고, 그가 아무 것도 아니었을 때? 그리고 또 물어보아라, 다니엘이 어렸을 때, 어떻게 말을 했었는지?”[그가 어떻게, 늙은 사제들이 체포되고 수산나가 해방되게 할 수 있었는지를].
(Ⅴ,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