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HTHILD VON HACKEBORN
하케보른의 멕틸드
DAS BUCH VOM STRÖMENDEN LOB
다함없이 샘솟는 찬미
모든 감각으로 하느님께
[41] 언젠가 주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오감으로 나를 찾아라. 그리고 마치 주인(초대자)이 매우 사랑하는 친구가 오기를 고대하며 창문과 문으로 내다보고, 고대하는 이가 어디쯤 왔는지 보일까 하고 기다리는 것과 같이 하여라. 이렇게 충실한 영혼은 창문과도 같은 오감을 가지고 항상 나를 찾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과 사랑스런 것들을 보았을 때, 그는 그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울까 생각하며,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께로 자신의 오감을 똑바로 향하게 해야 한다. 감미로운 멜로디나 그밖에 다른 어떤 소리로 감흥을 받았을 때도 생각하라: 아, 언젠가 너를 부르게 될 그분의 목소리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그러면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낭독되는 것을 들을 때 더욱더 신중하게 듣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혹시나 사랑하는 이를 듣게 되지나 않을까 기대하면서. 읽거나 노해하거나 이렇게 그는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구원을 자신이 하는 모든 말 안에서 찾게 될 것이다. 너의 사랑하는 이가 너에게, 방금 읽은 이 구절, 이 독서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혹은 무엇을 맡기시려는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감미로움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때까지 찾아야 한다. 후각과 촉각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기억은 ‘하느님의 영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언젠가 있을 그분의 입맞춤과 포옹은 얼마나 복될지’를 기억하고자 해야 한다. 우리를 위해 창조하신 모든 아름다운 것과 기뻤던 것, 매력적이었던 것, 이 모든 것이 그분의 선하심과 앎과 사랑에로 그를 매료시키고 움직이도록, 어떤 피조물을 즐기든지 늘 하느님과 함께 가졌던 기쁨을 변함없이 기억 속에 간직하고자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감각
[42] 영혼이 하느님을 찬송하고자 주님께 말씀드렸다: “오, 가장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이시여, 당신을 찬미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이에 대해 주님께서 응답하셨다: “내 마음을 보아라.” 그러자 아름다운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진 장미가 하느님의 마음에서 피어나 그분의 가슴을 온통 뒤덮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오감으로 나를 찬미하여라. 장미로 묘사된 이것을 네가 보듯이.”
이제 그녀는 하느님을, 그분의 사랑하시는 얼굴을, 그분이 아버지가 외아들을 바라보듯이 항상 인간을 지켜보신 그 얼굴을, 결코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항상 친절한 눈길로 인간을 격려해 주신 분을, 그분을 안식처로서 찾아갈 수 있었던 그 모습을 찬미하고 찬송해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두 번째로 그녀는 그분의 청각을 찬미해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분의 귀가 항상 인간을 경청하셨고, 인간의 가장 작은 중얼거림이나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이셨으며, 그것들을 천사들의 합창소리보다 더 기꺼이 들으셨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그분의 후각을 찬미해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분은 항상 인간에게 우정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것을 통해서 인간 역시 마음을 움직여서 그분에게서 즐거움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어떤 참된 선함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의 낙은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네 번째는 그분의 감미로운 미각을 찬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것은 미사성제에서 맛볼 수 있는 것으로써, 그분 자신이 영혼의 양식이 되시고, 그 양식 안에서 자신을 영혼과 한 몸이 되게 하셨으며, 우정의 친밀함 안에서 영혼 자신이 하느님의 음식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그분의 사랑스런 촉감을 찬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것으로 인해 사랑이 온전히 그분에게 쓰라린 아픔을 주었는데, 못은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창은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기 때문이다. 그때 그분의 감각이 비길 데 없는 고통으로 그분과 밀착되어 있었던 것처럼 영혼도 그분의 손과 발을, 그분의 온화한 마음을 말할 수 없는 환희와 함께 한 순간도 잊지 못하고 그분께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뜻, 네 뜻
[43] 미사성제의 본기도가 바쳐지고 성체가 높이 들어 올려진 순간, 주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나는 나를 전체로서, 내 안에 있는 모든 선함과 함께 네 영혼의 소유에 맡겨서, 항상 네가 바라는 대로 하게 둘 것이니, 그것은 오로지 너의 결정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전에 가졌던 그분의 뜻을 택하려고 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대로, 나는 너의 자유로운 처분에 달렸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주님의 뜻을 알아듣게 되었고 그분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그 무엇에서도 저는 제 이득을 바라지 않을 것이며, 아무 것도 찾지 않을 것이고, 당신께서 오늘 당신으로부터 당신 자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 자신을 통해서 찬미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더할 나위 없이 더 높게, 더 남김 없는 찬미를 드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삼중三中의 부르심
[44] 어느 주일에 그녀는 병 때문에 성체를 영할 수 없었다. 그것을 적잖이 서글퍼하며 주님께 말씀드렸다: “나의 주님,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그분이 대답하셨다: “오너라. 오너라. 오너라.” 그러나 그녀는 그분이 이 대답으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에게 그분이 말씀하셨다: “사랑을 통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너라; 입맞춤을 통해서 입에서 입으로 오너라; 합일을 통해서 영에서 영으로 오너라.” … 이에 영혼이: “아, 최상의 사랑이신 이여, 왜 당신은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제 안에는 선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하자 그분이 대답하셨다. “만일 꿀과 식초를 섞는다면 그 달콤함은 사라진다. 그러나 나의 달콤함은 섞여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달콤함을 잃지 않는다.”
어린아이처럼 마음에로
[45] 그녀가 한번은 어떤 사람을 위한 청원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사람의 영혼이 하느님 마음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손으로 하느님 마음을 부둥켜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어떤 곤란에 처하더라도 그들이 나에게서 위로받기를 원하거든 나의 성심을 꼭 끌어안아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자녀, 정배, 친구
[46] 그녀가 한번은 동료수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동료수녀는 하느님께서 그녀에게서 무엇을 가장 바라시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답을 받았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그가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게 언제나 그의 품으로 내닫는 아이처럼 나를 붙잡아야 한다. 아버지가 그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를 위해 유익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그를 그토록 사랑하시어 크고 귀중한 선물을 주시기 때문이다. 항상 나의 은총을 열렬히 갈망해야 하고, 내가 주는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기는 일 없이 사랑으로 크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신부처럼 처신해야 하는데, 그분이 그녀를 재산이나 아름다움이나 귀족신분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 때문에 선택하셨고 그리고 사랑으로 왕다운 신분에까지 승진시키셨기 때문이다. 이런 신부는 당연히 어느 누구보다 더 감사해야 하고, 더 충실하게 더 사랑해야 마땅하다. 만일 그의 신랑으로부터 혹은 그분 때문에 참아견뎌야 할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큰 충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그녀는 항상 내가 어떻게 조건 없이 그녀를 ‘세상 창조 이전에 선택했는지’(에페 1,4), 얼마나 고귀한 나의 피로 그녀의 몸값을 치르고 그녀를 구원해냈으며, 나의 특별한 사랑과 신뢰로 그녀를 불렀는지를 감사로 기억 속에 간직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그녀 자신은 친구가 친구에게 하듯이, 친구의 것은 무엇이나 자신의 것처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 안에서 그녀가 장려할 수 있는 한 하느님께 찬미를 드려야 하고,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조심성 없게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가 언젠가 무엇을 청했는데도 즉시 받지 못했거나, 그녀에게 익숙한 영적 위로의 은총이 거절되었을 때, 즉시 흥분하여 하느님이 자신을 버렸다거나 총애를 잃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충실한 아버지라면 아이가 청한다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주지 않을 것이며, 신랑도 신부에게 엄한 얼굴로 대할 때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를 가르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렇듯이 하느님께서도 영혼의 충실성을 시험해 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며, 그분이 그것을 모르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미리 다 알고 계신’ 그분께서 모든 성인들 앞에서 그녀를 증명하시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거울
[47] 어느 날, 주님의 여종이 가장 복되신 동정녀께 하느님의 일을 할 때 방해 받는 것에 대해 하소연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동정녀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가서 내 아들 앞에 경외심을 가지고 서거라.” 이 말씀에서 그녀는 인간이 하느님의 일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방해는, 그것이 사람들의 태도에서 오든지 자기 자신에게서 오든지, 눈길 하나라도, 받은 것이든 요구한 것이든, 과거에 일어났던 일의 추억이든, 이 모든 것들을 주님의 심부름꾼, 곧 전령傳令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들을 정중히 맞아들여서 하느님께로 방향을 틀게 하여 그분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를 통해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그녀는 주님의 발치에 엎드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을 때, 하느님의 무릎 앞에 두 개의 거울이 보였다. 그분의 옷은 온통 거울로 뒤덮여 있었고, 그분의 가슴부분에 특히 밝게 빛나는 거울이 있어서 다른 모든 거울이 먼저 거기서 빛을 받아 비추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그녀는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들은 우리에게 거울처럼 비추는 일을 맡고 있고, 그분의 마음에서 사랑의 모든 행위가 나온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분의 발들은 우리에게 그분의 열정을 비추어, 그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열정이 얼마나 미지근한지, 얼마나 인간적인 허영에 빠져 있는지를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무릎은 겸손의 거울로서, 그것들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려고 자주 무릎을 꿇으셨고, 사도들의 발을 씻기시려고 꿇었던 것을 비추어 준다. 거기에다 재와 먼지에 불과한 우리가 멸시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께 우리의 교만을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우리에게 불타는 사랑의 거울인데, 그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냉랭한지 비춰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입은 찬미와 감사와 사랑스런 이야기들을 비춰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말의 허영심을 알아볼 수 있으며, 또한 하느님 찬송과 기도 안에서 저지른 태만을 인식할 수 있다. 주님의 눈은 우리에게 신적 진리의 거울로서, 거기서 우리 불충의 어둠을 알아채고, 그것들이 우리를 어떻게 진리에 대한 인식에서 멀어지게 했는지를 알아보게 된다. 주님의 귀는 우리에게 순명의 거울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항상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셨듯이 그렇게 우리 기도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성찰서(고해성사 준비를 위한)
[48]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 사람은, 자기 상태를 성찰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털어놓아야 하며, 마치 그리스도께서 채찍질당하시고 십자가 앞에서 벌거벗겨지셨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채찍질당하시기 전에 벗겨지기를 원하셨듯이 그렇게 인간 역시 말씀 앞에 벌거벗겨지기를 원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사람은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 영혼의 얼굴을 그리스도의 공로의 거울 앞에서 관찰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자기비하의 거울 안에서 그는 주의 깊게 자신의 겸손을, 혹시 자신의 교만과 거드름으로 거스르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내의 거울 앞에서는 혹시나 불인내의 결점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지 자신의 인내를 시험해 볼 것이다. 그리스도의 순명의 거울 앞에서는 자신의 모습에서 불순종의 죄를 발견하게 되지는 않을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거울 앞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장상들에게 사랑 가득 했었는지, 그의 동료들에게는 얼마나 친절했고, 또 아랫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온유하게 그들을 대했는지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가 이런 아니면 이와 비슷한 것들에서 질책 받을 만한 것을 관찰했거든, 그것을 그리스도의 인성의 부드러운 수건으로 닦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형제이시며, 그분의 관대하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이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여 그분을 부를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신적 관대함을 고려하지 않고 거칠고 쓰라리게 자신의 얼룩(결점)을 문지르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너무 세게 문지르다가는 고치기보다 찢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얼굴이 우리 거울
[49] 그녀가 어느 날 성체 앞에서, 자신이 너무도 부당하고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너에게 마음의 준비를 위해서 나를 완전히 주겠다.” 즉시 그분은 그분의 마음을 영혼의 마음에, 그분의 머리를 그녀의 머리에 숙이셨다. 그녀가 그분께 말씀드렸다: “나의 주님, 당신 얼굴의 광채로 제 영혼의 얼굴을 비추어 주십시오.” 이에 대해 주님께서 그녀에게: “무엇이 네 영혼의 얼굴이냐?”라고 물으셨다. 그녀가 말이 없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삼위일체의 모상이다. 영혼은 그 모상을 내 얼굴에서, 마치 거울을 보듯이 보는 것이며,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책망 받을 만한 결함을 그 안에서 발견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 말씀에서 그녀는, 사람이 그의 기억을 세속적인 것들과 불필요한 생각(분심)들로 채운다면, 그 그림을 흐리게 한다고 추론하였다. 마찬가지로 그가 그의 시선을 세속적 영리함과 호기심에로 돌린다면 그분의 얼굴을 더럽히는 것이다. 만일 그가 끝까지 하느님의 뜻을 피하여 돌아선다면 그리고 하느님 대신 다른 것을 사랑한다면, 또 지나갈 헛된 것을 즐김으로써 자신을 달래려 한다면, 그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 상을 볼품없게 만들고 만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러므로 영혼이 육신 안에 머무는 동안은 자주 세속적인 것들로 더럽혀지므로 거울 속에, 즉 하느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 자신의 일그러지지 않은 모습을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고, 더욱이 주님의 성체성사에 참여하려고 할 때 그렇게 해야 한다.
주님 포도원
[50] 어느 주일, ‘나를 뿌려주소서’를 노래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주님께: “저의 주님, 어디에서 당신은 제 마음을 씻고 정화시키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주님께서 즉시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으로 자신을 굽히시어 한 어머니가 아들을 꼭 끌어안듯이 그녀를 안아주시며 말씀하셨다: “내 성심의 사랑 안에서 나는 너를 씻어 주겠다.” 그러자 그분께서 마음의 문, 지존하신 하느님의 보고寶庫를 열어 주셨고, 그녀는 포도원과 같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러 떨어지는 살아 있는 물의 흐름을 볼 수 있었고, 강줄기를 둘러싼 곳에 나무 12 그루가 서 있고, 그 나무에는 12 열매가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들은 성 바오로가 그의 서간에 나열한 12 덕목: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등등이었다(갈라 5,22). 물은 사랑의 강이라고 불렸다. 영혼이 그 안에 잠기자, 그 안에서 모든 얼룩이 씻어졌다. 강에는 수많은 금비늘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영혼들이었고, 모든 지상적인 쾌락으로부터 간택되어 모든 선의 근원이신 예수님 안에 깊이 잠긴 이들이었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들이 심겨져 있었는데, 한 그루는 곧게 위로 향해 서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땅을 향해 굽어져 있었다. 곧게 선 것들은 세상을 부산물과 함께 경시하고, 그들의 모든 감관을 하늘로 향하게 한 이들이며, 아래로 굽힌 이들은 그들의 죄의 먼지 속에 묻혀 있는 불쌍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땅을 파 엎고 계셨는데 마치 정원지기 같았다. 그녀가 그분께 물었다: “오, 주님, 당신의 삽은 무엇입니까?” 그분이 대답하시기를 “나의 두려움이다.”라고 하였다. 땅의 많은 곳은 딱딱했고, 다른 부분은 부드러웠다. 이렇게 딱딱한 마음은 죄로 인해 그렇게 딱딱하게 굳어진 것인데, 그들은 어떤 권고나 벌로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부드러운 마음은, 그들의 눈물과 통회로 그렇게 부드럽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의 이 포도원은 가톨릭교회이다. 나는 그 안에서 33년을 고생하며 수고하였다. 나와 함께 너도 나의 포도원에서 일하여라.” 그러자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합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물 대주기를 해줌으로써.” 즉시 영혼은 강으로 달려가서 물항아리를 어깨에 짊어졌는데,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 무거웠다. 때맞춰 주님께서 다가오시어 거들어 주시자 짐은 가벼워졌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이렇게 은총을 사람들에게 베풀면, 나를 위해서 하는 일들과 인내해야 할 일들이 모두 가볍고 감미로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은총을 거두면 모든 것이 무겁게 여겨질 것이다.”
포도원 둘레에는 천사들의 엄청난 무리가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천사들은 우리 가운데 건재하고 있으며, 하느님 교회를 지켜 주기 위해 주위에 둘러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