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작품 선집
그의 메시지의 의미와 원천
성 베르나르도를 다룰 때 생겨나는 문제
성 베르나르도가 쓴 글들은 3,500페이지에 달한다. 이 전체 중 10퍼센트를 이루면서도 사고의 일관성을 지닌 구절들을 선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순서를 정해놓고 그에 따라 그의 작품의 배합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 출발에 있어 성 베르나르도는 결코 쉬운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문제 중 하나는 모든 것에 관해 그가 많은 말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한계가 없는 사랑의 논리로, 모든 것을 이것에로, 그 중심에로 끌어들인다. 선택된 텍스트들을 제시함에 있어 엄격히 연대순을 따르는 것은 전혀 만족하지 못한 결과를 빚을 것이다. 작품들 중 어떤 것들은 그 연대가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때로 그는 같은 시기에 아주 다른 작품들을 썼다. 체계적 질서를 채용하는 것은 주관적 요소를 함축하며 해석이 들어간다. 그러나 마지막 방법은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베르나르도 자신이 어떤 시스템을 채용하거나 요약을 남기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교수보다는 시인을 다루고 있는데 그는 자유롭게 모든 방향으로 자신의 생각을 던지며, 자신의 독자들을 그들의 필요와 경향에 따라 작품들을 조직하도록 남겨 둔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들을 제시함에 있어 타협이 필요해지는 듯하다. 처음에 베르나르도의 삶의 동기를 주는 교의적 원칙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초기 작품들 중 두 가지를 제시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그의 이 교의 전체가 그의 개인적 삶과 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성숙한 시기의 대작들 중 두 가지를 선택하여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 중간에, 다양한 다른 텍스트들이 그의 행동의 과정들이 그의 교의로부터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그렇듯 방대하고 다양한 작품 전체로부터 어떤 것을 추출하여 제시하고자 할 때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베르나르도는 시간의 귀중함을 깨닫고 있었고 여유롭게 글을 썼던 관상가였다. 지혜서에서 격언에 대해 말하면서 그는 “작가는 오직 시간과 함께 지혜를 얻는다.”라고 말하였다. 현대인들은 서두른다. 현대인들은 많이 읽거나 하지 않고 재빨리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싶어하며 심지어 기도조차 서둘러 한다. 고대와 중세 영적 작가들의 목적은 고찰을 위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들은 시적 성격을 지닌 회상을 통해 경험을 장려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우리들에게는 사고라기보다 환상과 같이 보이는 한 방식으로 상상력에 자유로운 고삐를 부여한다. 그는 상징들로 놀이를 하듯 글을 썼으며 엄격하게 신학적이라기보다 서정적인 성서적 주제에 변화가 주어졌다. 중세적 스타일은 때로 모호해 보이나 사실은 신비적이다. 고의적인 명확성의 결여는 무진장한 보물을 숨기고 있다. 성 베르나르도를 읽는 것은 그 독자가 플라톤과 같은 고대 사고의 영향을 받았든지 아니면 융이나 리쾨르(P. Ricoeur)와 같은 현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든지 불문하고 그에게 생각지도 않은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성 베르나르도의 작품들에 대한 주석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고 그의 작품들은 번역 때문에 아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간 지식이 진보함에 따라 어떤 실마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서문의 목적은 선택한 텍스트들이나 작품들의 요약을 사전에 주는 것이 아니며 혹은 작가의 사고 전체 내용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에 서문은 작품을 읽을 때 떠오를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시해야 한다. 추가하여 서문은 선택한 것들을 전체 작품이라는 맥락 안에 놓음으로써 독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하며, 당장에는 분명하지 않는 어떤 면들에 주의를 끌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서문은 독자들에게 개인적 발견의 기쁨을 허용해야 한다. 선택된 텍스트에는 없으나 그것들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어떤 것들을 토의할 수도 있다. 상세한 부분까지 다룸 없이 독자들을 격려하는 몇 가지 기본 사고들을 제공해야 하며 그들이 그 전체 작품을 읽게 해주어야 한다.
베르나르도에 있어 모든 것은 경험으로 시작하고 경험으로 끝맺는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간에 경험은 고찰의 대상이 된다. 하느님은 경험을 포함한 모든 것의 원천이지만, 인간 사고의 첫째 대상은 자기 자신이고 그의 유일한 개인적 역사의 경험이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과 자신의 말의 빛 안에서 그 역사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자신과 자신의 가련한 조건의 경험은 그를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하며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것은 또한 교회 안에서 그의 형제들에게 봉사하도록 불리움 받은 그 상황에 따라 사랑을 실천에 옮기도록 그를 인도한다. 성 베르나르도의 이러한 면들은 아무것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신학만 혹은 수행생활만 다루는 것은 그의 사고의 통일성을 깨트릴 수 있다. 베르나르도의 신학은 그것이 비록 사색적인 사고를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실제적이고 참되며 매일의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