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 수도원
구에릭 아빠스
(12세기 시토회 사부)
강론집
깨어있음과 신뢰
그리스도인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기쁨으로 충만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오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활기 넘치고 능동적인 기다림이며 항상 주님을 모시려고 준비하는 기다림입니다.
기쁨 가득한 기다림
- “우리는 구세주를 고대하고 있습니다.”(필리 3,20). 사실 그렇습니다. 기다림은 의로운 이의 기쁨입니다.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는”(티토 2,13)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이제 제가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라고 의인은 말합니다. “저의 희망은 오직 당신께만 있는데?”라고(시편 38,8). 그리고 주님을 향하여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제 희망으로 제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줄을 저는 압니다.”(시편 118,116). 저는 이미 당신과 함께 있는 존재이옵니다(시편 38,8 참조). 이미 우리의 본성은 당신이 받아들이시고 봉헌하심으로써 당신 안에서 영예롭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왜냐하면 “당신께로 모든 육신들이 모여오기 때문이며”(시편 64,3) 지체들은 완전한 번제물이 되기 위해서 그들의 머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수도승의 기다림
주님에게서 평안한 마음을 선사받은 사람은 더 큰 신뢰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소유하고 있는 가장 작은 것조차 당신 안에 있나이다. 저는 저의 모든 재산을 하늘나라에 보화로 쌓아두었습니다. 그것들은 제가 당신에게 드린 것이거나 아니면 당신을 위해서 포기한 것들입니다. 저의 모든 재산을 당신 발아래 놓았습니다. 당신은 능하시고 제가 드린 모든 재산을 잘 보존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2티모 1,12) 오히려 그것을 저에게 백 배로(마태 13,8) 갚아주실 것이며 영원한 생명(마태 19,16.23)까지 덧붙여 주실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복됩니까! 여러분은 위대한 분의 권고에 따라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았습니다(마태 6,20). 그리하여 여러분의 재물은 지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여러분의 마음을 그것들과 함께 썩어 없어지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의 재물을 따라가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생각과 뜻이 위에 있는 것을 붙잡고 또한 여러분의 기다림이 구세주께로 향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사도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오실 구세주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필리 3,20)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실망 없는 기다림
오, 만백성이 기다리는 분!(창세 49,10) 당신께 바라는 이들은 아무도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시편 24,3). 저희 선조들은 당신을 고대하였고, 세상이 생겨날 때부터 모든 의로운 이들은 “당신께 신뢰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았나이다.”(시편 21,6). 이제 당신의 성전에서 그들은 자비를 받고, 즐거움과 환호의 합창단과 함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 받을지어다.”라는 찬양노래를 힘차게 부릅니다!(시편 117,26; 마태 21,9) “내가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내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시편 39,2). 그들은 육신의 비천함 안에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심을 깨닫고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구원해 주시리라 믿고 기다리던 우리 하느님이시다.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가 믿고 기다리던 주님이시다. 기뻐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하자.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이사 25,9)고 말합니다.
세상 것을 초월하는 기다림
- 고대 의인들의 교회가 첫 번째 오심을 기다렸듯이 새로운 교회는 두 번째 오심을 기다립니다. 그들이 첫 번째 오심에서 구원의 확증을 고대하였듯이, 두 번째 오심에서는 보상의 열매를 고대합니다. 기대로 가득 찬 희망 안에서 그들은 지상의 범주를 뛰어넘어 기쁘고 불타는 열정으로 천상 것을 추구합니다. 다른 이들은 이 지상생활이 줄 수 있는 행복을 좇아 달려가느라고 주님의 권고를 경시합니다. 그들은 세상이 던져주는 약탈물을 차지하려고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복됩니다, 주님께 신뢰를 둔 사람, 오만한 자들과 거짓된 변절자들에게 돌아서지 않는 사람!”(시편 39,5). 그들은 더러운 쓰레기처럼 그런 자들의 길을 멀찍이 피해 가고(지혜 2,16 참조) 거만한 자들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마음을 낮추어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낫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잠언 16,19). 이들은 자신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합니다. “저의 몫은 곧 주님이십니다. 제 영혼은 다짐하며, 제 몸은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바라며 찾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십니다. 주님께서 건져주시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애가 3,24-26). 제 영혼이 당신 구원을 기다리다 지치오며, 주님, 모든 것 위에 당신 말씀에 희망을 두옵니다.”(시편 118,8).
확신에 찬 기다림
“희망이 끊어지면 마음이 병든다.”(잠언 13,12)는 말씀이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갈망으로 인해 지쳐있지만 맺은 계약에 대해서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상상을 초월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련이 겹칠수록, 미루어지면 미루어질수록 저의 희망도 쌓여갑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분이 꼭 오실 것이며 저를 속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설령 쉬 오시지 않더라도 기어이 오시고야 말 것이니 저는 기다리겠습니다(하바 2,3 참조). 그분이 정한 날, 약속한 그 날을 넘기시더라도! 그렇다면 정한 때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때는 형제들의 수가 채워진 때이며(묵시 6,11), 그분께서 자비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뉘우침의 시간이 다 찬 때를 의미합니다(로마 2,4; 묵시 2,21).
이사야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천상의 회합에 참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심판의 날을 미루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은혜 베푸실 날을 기다리신다. 너희를 불쌍하게 여기시어 도우러 일어나신다. 너희를 보살피심은 그분에게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공평무사하신 하느님, 복되어라, 그분을 기다리는 자여!”(이사 30,18)라고 말해줍니다.
지체하심을 유익하게 사용하라.
- 그러므로 당신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거든 심판이 지체함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잘 대비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죄인이라면 보속을 하는데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성인이라면 성성 안에서 더욱 성화되어, 믿음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종이 악하여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려니 생각하고 다른 종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만 한다면 생각지도 않은 날, 짐작도 못한 시간에 주인이 돌아와서 그 꼴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그 종을 내치고 위선자들이 벌 받는 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가슴을 치고 통곡할 것입니다”(마태 24,48-51). 우리는 이런 악하고 불충실한 종에 대한 절망의 소리를 이사야에서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지체하시게 되면, 불신자들과 조소하는 자들은 주인이 보낸 사절에게 “명령에 또 명령을, 명령에 또 명령을, 규칙에 또 규칙을, 규칙에 또 규칙을,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이사 28,10)이라고 빈정댈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런 자들이 어떤 벌을 받게 될지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들이 예언자를 조소하여 한 말을 그들에게 하신다. ‘명령에 또 명령을, 규칙에 또 규칙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이것도 기다리고 저것도 기다리며,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이런 말을 들으며 걸어가다가 뒤로 자빠져라. 뒤통수가 깨지고 그물에 걸려 잡히어라”(이사 28,3). 그들은 믿음에서 멀어져 뒷걸음질 치다가 뒤로 자빠지고 넘어져 깨어지고, 죽음을 초래하는 쾌락에 걸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데도 보속도 하려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의 그물에 걸려 영원한 멸망에서 깨지고 맙니다. 솔로몬은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죽을 날을 모른다. 모두들 그물에 걸려든 물고기 같고 덫에 치인 새와 같은 신세라, 갑자기 액운이 닥치면 벗어날 길이 없다.”(전도 9,12)고 말합니다.
참을성 있고 충실하게 기다림
주님께서 설령 지체하시더라도 우리의 믿음이 미지근해진다거나 인내심이 약해져 지쳐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잠깐 믿다가 시련이 닥치면 곧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처럼 되어서도 안됩니다(루카 8,13).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주신 것을 시험하시고 시험하신 것을 상주시는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우리를 부르십니다. 누가 믿거든 믿는 것을 보려고 조급해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희망한다면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합니다. 주님은 믿음 안에서 그와 혼인한 신부에게마저도 호세아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당신은 오래 동안 나를 기다려야 하오. 다른 남자와 어울려 불의한 관계를 맺지 마시오.”(호세 3,3)라고.
백성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합당한 일입니다. 아직 천상의 것은 알지 못하면서도 더는 지상의 것과 접촉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지상적인 것과 어쩌다 접촉하게 되더라도 손끝으로만, 다시 말하면 영혼의 가장 작은 부분으로만! 이는 부패하기 쉬운 자연본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에 종속되어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접촉해야 합니다(로마 8,28 참조).
격언에 ‘초조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은 기다리기 힘들어 한다’는 말이 있으나, 나는 ‘느긋하고 여유 있게 매달려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 영혼은 열렬히 고대하며 매달림을 선택하겠습니다. 그 안에서 나의 뼈들은 죽음(욥 7,15)을 기다릴 것이며, 십자가상에 매달려 죽기까지 열렬히 기다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열렬히 기다림
- 오, 주 예수님! 당신의 생명을 스스로 바치실 때가 오자, 죽음의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실 때가 되자 당신의 영혼은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렇게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요한 12,32) 저희를 당신께로 끌어당겨 땅위에 높이 매달리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죽기 전에는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요한 19,33). 이는 저희 또한 죽기까지 십자가상에서 참아 견디어 그것을 디딤돌 삼아 보다 쉽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여기 저희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저희는 당신을 고대합니다. 엘리야가 와서 저희를 내려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엘리, 저희의 주님이 오시어 저희를 받아주시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마태 27,46-47 참조).
믿음 안에서 기다림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주님께서 이 계명 저 계명을 주신다 해도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의 명령을 온전히 믿겠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니 도와주십시오(마르 9,23). 그러면 저는 여기서 굴복하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며 믿는 것을 보게 될 때까지 변함없이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믿나이다.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여러분도 그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 바라라, 굳세어라, 네 마음 든든 할지어다. 주님께 바라라.”(시편 26,13-14)는 말씀을 믿으십시오. “불행하다 인내심을 잃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집회 2,16 참조). 만일 주님께서 그들을 심하게 다루신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분이 참을성 있게 기다리라고 명령하시더라도 다른 곳에서는 빨리 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한편 그분은 큰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라는 느낌을 주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심한 이들을 격려하시며,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충고하시고, 게으른 자들에게는 자극을 주십니다. “자, 내가 곧 가겠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자기 행적대로 갚아주기 위해서 상을 가지고 가겠다.”(묵시 22,12)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는 “너의 구원이 서둘러 온다. 왜 너는 슬픔에 짓눌려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특히 짓눌려있는 우리 각 사람을 위해서, 그들이 고통 중에 있든지 사랑 안에 있든지. 그러므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이미 가까이 와 계시고 문 앞에 와 계신 심판주를 경외함입니다(마태 24,3). 나를 위해서, 어쩌면 당신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오시기를 여전히 지체하시는 그분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갈망하는 그 주님께서는 기어이 오시고야 말 것입니다(하바 2,3). 그분은 애쓰며 노력하는 이들의 휴식과 보상이시며,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의 포옹이시고 모든 이를 위한 감미로움입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세대대에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