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HTHILD VON MAGDEBURG 마그데부르크의 멕틸드
“당신이 나를 이끌어 주시면, 나 춤추리다.”
Margot Schmidt
마르고트 쉬미트 편역
9. 성령
이성과 은총
불변성(항구성)의 근원은 성령을 통해서 어느 때나 푸른빛이다
(Ⅴ,19)
너는 성령을 알아 모셔야 한다. 그분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고, 그의 영혼 안에서 모든 감미로움을 느끼게 해 주시고, 인간의 감각을 다른 어떤 스승보다 더 잘 가르쳐 주신다.
(Ⅶ,47)
하느님께서는 참된 지혜와 함께 세 가지 은사를 우리에게 주셨다:
첫 번째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으로써, 나에게 장엄한 영광에 싸여 계신 하느님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 지혜는 자연적인 감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것들로 인간은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즉 잃을 수도 얻을 수도 있다. 이 지혜 안에는 많은 배신한 평신도들, 거짓 사제들과 영적인 악질들이 있다. 자신을 이런 세 종류의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성덕만으로는 안된다. 하느님 사랑으로 바보가 되지 않고는, 자연적인 능력만으로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지혜는 은총에서 나온 것이며, 하느님의 모든 은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자신이 아무리 부유해도 자신을 가장 미천한 피조물과 결코 비교하지 않는다.
(Ⅳ,3)
무엇보다도 너는 잘 돌보아주는 성향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너는 호의적인 마음과 개방된 영혼이 될 것이며, 그 안으로 은총이 흘러 들어갈 것이다.
(Ⅴ,11)
주님, 사람들은,
육신의 힘을 유지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합니다.
만일 성삼위에게서 나오는 당신 신적 숨결이
황홀하게 불어내려
광풍처럼 영혼을 휘몰아치면,
거기서 육신은 완전히 힘을 잃게 되고
사람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먼저 지상적인 것과 꼭 필요한 것들을 옳게 먹지 않는다면, 왕다운 음식으로 식탁을 마련해 주는 것은 헛된 일이다. 나의 특별한 은사는 사람들에게 영혼과 육신 모두를 위해 특별한 존엄성을 부여한다.”
그렇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분의 권능으로 갑작스럽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은 그 자체로 너무도 고귀하고 하느님의 존엄한 우정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사람은 사라져버릴 것들 때문에 그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아주 작은 죄라도 범해서는 안된다. 오, 슬프다, 비천한 영혼이여, 어떻게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그분의 뜻에 따라 유용하게 쓰기도 전에 너에게서 쫓아 버렸단 말이냐, 네 안에는 하느님의 최상의 기쁨이 감추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네가 하느님의 거룩한 은총을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고 싶으냐?
그렇다, 네가 그것들을 환영하면
그것들은 네 자신을 가르칠 것이다.
외적인 덕들로
내적 갈망으로
너는 그것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겸손한 두려움으로 그것들을 간직해야 하고,
모든 곤란 속에서도 복종해야 한다.
네 안의 공간과 시간을 그에게 마련해 주어라,
그는 그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는 너를 하느님 안에 깊이 융화시켜서,
너는 그분의 뜻을 알고,
네가 얼마나 오래 따라야 할지,
그분의 넘치는 사랑이 네 자신에게서,
연옥에 있는 죄인들과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네가 어느 시간에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각 사람들의 곤경에, 그들이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네가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 알려 줄 것이다.
(Ⅵ,13)
이 책에 기록된 은총을
주님께서는 세 가지 방식으로 나에게 보여 주셨다:
제일 먼저 깊은 다정함으로,
그 후에는 친밀한 신뢰로,
지금은 엄청난 고통으로;
그 고통 안에 머물기를 나는 원한다,
다른 두 가지 것보다도 더.
유일한 이유는: 하느님의 다정하심과 신뢰는 영원한 것이고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들은 이 지상에서 모든 사람이 참으로 그것을 알아듣고 감히 그것을 부르기조차도 낯설어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적 기쁨 안에서 가장 두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갖은 비참과 곤란을 다 겪으셔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Minne의 본성이다. 그는 우선 감미로움 안에서 흐르고, 그 후에 인식이 충만해지고, 세 번째로 내버려지기를 열렬히 갈망한다.
(Ⅵ,20)
우리는 신적 은총을 인간적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에 열려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된다. 육적인 눈으로 보고 육적인 귀로 듣고 육적인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진리에 열려 있는 사랑하는 영혼에 비하면, 투명한 태양 앞의 촛불과 다르지 않다.
(Ⅵ,36)
오, 슬프다, 많은 남자들은 이런 것들을 하지 않는데, 이는 특히 교육을 통해서 자연적인 영리한 감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자신을 순수한 사랑의 힘에 내려놓는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Ⅱ,23)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아주 특별한 은총을 주고자 할 때는,
항상 가장 낮고, 가장 작고,
가장 깊이 숨어있는 장소를 찾았다.
산의 최고봉에는 나의 은총의 계시를 쌓을 수 없다.
나의 성령의 밀물은,
본성상 골짜기로 흐르기 때문이다.
(Ⅱ,26)
네가 이성으로 영리하다면
탐욕이 너를 불태워 덤빌 것이고,
네가 은총으로 영리하다면
어떤 악도 너를 잘못된 길로 이끌거나 배신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Ⅴ,11)
어떤 사람이 대단한 이성의 명석함을 지녔더라도, 초자연적인 것은 신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그는 맹인처럼 암흑 속을 헤맬 것이다.
(Ⅵ,31)
나는 인간적인 이성만으로도 내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탄한다.
(Ⅵ,26)
이성의 지식 안에
마음의 단순함이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에는 큰 성성이 찾아들 것이다.
(Ⅶ,43)
어린양이 아무리 희고 깨끗하더라도, 늑대의 난폭함을 자제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선택은 아무도 소멸시킬 수 없다.
(Ⅳ,6)
성령께서 내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세상 모든 목소리를 초월한다.
(Ⅶ,34)
교회의 힘과 아름다움
주춧돌(그리스도) 위에 가장 아름다운 동정녀(교회)가 세워졌는데, 우리의 사랑하는 여인 성 마리아 외에 이런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할 만하다 …. 그녀의 발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 그 보석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동정녀(교회)는 두 발로 서 있는데, 한 발은 거룩한 권능의 묶음, 다른 한 발은 풀음이다 ….
그는(동정녀=교회) 손에 큰 권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하느님께서 선택한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고, 사탄에게 빠져 있는 자들은 모두 자신에게서 쫓아 버린다. 아아, 그는 참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나는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에게서는 목에서 향유가 흘러나오는데, 그것은 자비이고, 죄를 씻는 향유이다 ….
그의 눈은 완전히 환희로 빛나고
희고 푸른 여명처럼(아침 노을),
떠오르는 태양 앞에 찬란히 빛난다.
그의 눈이 본성상 삼위일체이지만 하나이듯이,
성삼위도 그러하시다.
흰빛은 성부를
푸른빛은 성자를
투명한 태양빛은 성령을 나타낸다.
그들이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으리라.
동정녀(교회)는 그의 머리에 왕관을 썼고,
그 관은 붉은 금색으로 만들어졌다.
탁월한 충고이며 거룩한 행위로써
거룩한 가르침의 씨앗에서 싹튼 것이다 ….
그 관의 정점에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고,
그 안에는 자신들을 큰 사랑에 바친
강인한 이들이 거처한다.
그들은 보호자와 파수꾼들로서
가장 약한 이들을 강하게 해 준다.
(Ⅳ,3)
오, 영적인 이름이여, 너는 얼마나 모든 세속 이름 위에 뛰어난가! 그래서 너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그분의 전 생애 동안 충실히 지키셨고, 왕, 백작 그리고 귀한 신분의 모든 이름들 위에 놓으시어, 네 앞에서 이 모든 것들은 퇴색해 버리고 만다. 오직 영적 이름만이 들어 높여진다, 그것이 고귀하게 지켜지기만 한다면. 그렇다, 그 이름은 경의롭고 유일하게 성스러움으로 들어 높여졌다.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인 마리아 안에서 영적 이름으로 불리었던 첫 번째 사람들은 이 영적 이름 때문에 외부로부터 엄청난 멸시를 받았으나, 내적인 참된 성성 안에 이를 보존하였다.
이것은 사람들, 특히 외적으로는 자신이 성직자라고 하는 이들, 거룩한 척하고, 위대한 복종으로 겉꾸미고,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미사여구로 장식하여, 사람들이 정말 그들 안에 성령이 밀물처럼 흐르고 있다고 믿게 하는 이들에게 적대감을 주는 말이다. 아니, 이것은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자주 큰 속임수의 유혹이며, 사람이 그들 스스로 허락하는 것이다. 마음에 성령의 완전한 탄생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려움 없이 미사여구로 말한다. 그들은 어린양의 온유를 지니고 덕에 있어서 비둘기 같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친밀한 동료들의 모임에서 잔인한 곰이나 포효하는 사자로 처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앞에서 그들의 생활은 기만이며 하느님 앞에서와 그들과 친숙한 이들 앞에서는 파멸의 근원이 되는 완전한 거짓이다.
(Ⅴ,11)
교회의 쇠퇴
성교회가 우리 주님 앞에 다가가자, 그녀는 동정녀 같았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우리 주님 역시 그녀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자신이 직접 보아라, 이 동정녀를 내가 영원한 신부침상에서 끝없이 사랑해 주고, 나의 왕다운 팔로 끌어안고, 나의 신적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지를? 그녀는 인식에 있어 장님이고, 손은 마비되었고, 선행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지 않느냐? 그녀의 갈망의 발은 절름발이, 게을러서 나를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그녀는 불결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불순과 음란으로 더럽게 된 것이다.”
(Ⅴ,34)
오, 슬프다, 성교회의 왕관이여,
너는 얼마나 먹칠이 되어 있는가!
너의 보석은 너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네가 분노하며 거룩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너의 금은 음란의 불결한 늪에서 썩어,
너는 궁핍하게 되었으니, 참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의 순결은 욕망과 탐욕의 불길로 태워졌고,
너의 겸손은 육의 진창에 빠졌고,
너의 진리는 세속의 거짓 속에서 소멸되었고,
너의 덕행의 꽃들은 너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너의 열매는 죽어 버렸다.
슬프다, 거룩한 성직의 왕관이여!
너는 자신에게 남은 것 외에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그것은 성직권뿐이다.
그것으로 너는 하느님께 대항하고,
그분이 선택한 이들을 대적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미처 네가 생각하기도 전에
너를 꺾어 내리셨다 ….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의 나의 목자들은 살인자들이요 늑대가 되었다.
그들이 내 눈 앞에서 흰 어린양들을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늙은 양들은 죽을 병에 걸렸는데,
그들은 높은 산에서 자라는 신적 사랑과 거룩한 가르침인
싱싱한 목초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지옥행이 어떤지 알지 못하거든
썩은 성직자들을 보아라,
그들이 어떤 삶에서 지옥으로 직행하는지를,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그리고 다른 드러난 대죄로.
그러므로 마지막에 형제들이 오는 것은 필요하다.
망토가 낡으면, 당연히 춥다.
그래서 나는 나의 거룩한 신부,
거룩한 교회에 새 망토를 입혀 주리라.”
(Ⅵ,21)
신속한 전달자인 성인들
온 백성이 바른 신앙과 솔직한 고백성사에서 정도를 벗어나자 천상 아버지께서 두 아들(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을 함께 출생하게 하심으로써 자비를 베풀었는데, 이들은 우리의 자모이신 성교회가 낳아준 사람들이다. 그녀는 이 두 아들을 자신의 젓을 먹여 양육했는데, 그 두 유방은 젖으로 가득해서 결코 다 마실 수 없을 것이다. 이 유방은 구약과 신약이며, 그것으로 우리의 자모이신 성교회는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을 양육한다.
우리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구약과 신약을 통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사제로 서품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한 쪽 발만으로는 아무도 입궐할 수 없고, 오랫동안 복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Ⅴ,24)
약함은 인간에게 달라붙지만, 귀족에게는 성덕이 있었는데, 나는 성녀 엘리사벳이 땅에 묻힌 지 얼마 되지 않아 그토록 빨리 시성된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그에 대해 주님께서 나에게 설명하시며 말씀하셨다:
“파견자에게는 빠를수록 좋다. 엘리사벳은 성안에 앉아 있는 경건치 못한 여인들에게 보낸 나의 파견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 여인들은 음란으로 찢기고 오만을 뒤집어쓰고 늘 허영심에 부풀어 있어서, 법적으로라면 이미 지옥에 갔어야 마땅했다. 많은 여인들은 그들이 할 수 있거나 원하면 그녀의 모범을 따를 수 있다.
나는 성 도미니코를 이방인들에게는 파견자로, 무지한 이들에게는 스승으로, 슬퍼하는 이들에게는 위로자로 보냈다.
나는 성 프란치스코를 탐욕스런 성직자들과 오만한 평신도들에게 파견자로 보냈다.
그러나 새 순교자 성 베드로(도미니코회 수도자, 1252년에 살해됨)는 피의 파견자이다. 몸과 피에 거짓 그리스도교가 그토록 비참하게 얽매여 있다. 그들은 모두 순수하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틀렸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육을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
(Ⅴ,34)
마리아, 사랑스런 어머니, 나는 당신과 함께 십자가 아래, 나의 온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서 있습니다. 거룩한 통고의 칼이 내 영혼을 꿰뚫었습니다. 성직자들인 척하는 그들이 그토록 변덕스럽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 나는 당신과 함께 수인囚人이 되었습니다. 허위의 불충한 창녀가 하느님 말씀을 내 입에서 죽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복음사가 요한, 나는 참 사랑으로 당신과 함께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잠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장엄한 기적들을 보았고, 또 내 몸이 자주 내 자신을 초월하는 경험을 했습니다(황홀경을 말하는 것 같다).
베드로, 나는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나에게는 인간적으로 편안한 적이 결코 없었고, 예수 그리스도께 찬미 드린 후, 자주 영적인 고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나는 당신과 함께 놀라운 황홀경에 들어가서, 복된 집을 보았습니다. 그런 후에, 아직도 내가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놀랍습니다.
스테파노, 나는 당신 곁에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무리 앞에 날카로운 돌을 맞으면서. 크고 작은 돌들이 나에게도 떨어졌습니다. 착한 척하는 사람들이 내 등 뒤에서 나를 돌로 치고는 도망칩니다. 그들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내가 알아차리는 것을 그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보셨습니다.
라우렌시오, 나는 20년도 넘게 당신과 함께 소름끼치는 석쇠 위에 묶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나를 무사하게 해 주셨으며, 7년 훨씬 이전에 이미 불은 꺼졌습니다.
마르티노, 나는 당신과 함께 잊혀진 채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참사랑이 다른 모든 고통보다 나를 정신적으로 더 아프게 했습니다.
도미니코,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나는 당신의 일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죄스런 마음의 피가 불신하는 이단자들의 발 아래 쏟아지기를 많은 날들에 나는 열망하기 때문입니다.
카타리나, 나는 당신과 함께 논쟁에 나섰습니다. 지옥의 우두머리가 나를 타락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화려한 옷차림으로 나에게 다가왔는데, 그는 내가 자기를 천사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내게 책 한 권을 주며 말했습니다: “이 거룩한 물건을 받아라, 너는 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그때 내 영혼은 내적 지혜로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네 자신이 평화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나에게 평화를 줄 수 없다.”
마리아 막달레나, 나는 당신과 함께 광야에서 삽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는 모든 것이 나에게 낯설기 때문입니다.
(Ⅱ,24)
하느님을 상징하는 불의 비유를 멕틸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불의 빛나는 광채는 성인들이다.
그들의 삶이 교회에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많이 밝혔기 때문이다.
(Ⅵ,29)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