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HELM VON SAINT-THIERRY
샹 티에르의 윌리엄
MEDITATIVE GEBETE
묵상 기도
다섯 번째 묵상 -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고 우리를 회심시키시는가.
들어가는 말
영혼은 예수님의 여러 가지 기도방법을 깊이 탐구한다. 그는 외딴 곳에서, 군중의 한 가운데서 그리고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셨다. 빌헬름은 외딴 곳, 고독한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고독한 마음은 이처럼 쉽게 발견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한다. 그의 수도서원의 십자가에 그분과 함께 못 박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고통을 참아 견디며 인자가 십자가에 달려 참아낸 수난을 끊임없이 함께 봉헌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속죄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고, 뉘우치기는커녕 보속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탄식한다. 사탄은 자주 그를 밀을 까부르듯이 유혹했으나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그를 지탱시켜 주었다. 그는 하느님 자비에 신뢰하며 죄녀처럼 용서를 청한다.
- 제 마음을 끊임없이 풍요로운 기도에 온통 쏟아 붓고 저를 훈련시켜 그것이 아주 저의 것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리하면 저는 주님, 나의 예수님, 하느님 아버지의 지혜이신 당신으로부터만 오로지 가르침을 받고 다른 스승을 찾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상에서 사람들에게 완전한 기도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신 당신의 그 기도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저는 당신이 이곳저곳에서 혼자 기도하셨고(마태 14,23), 가끔 둘러선 백성들 앞에서(요한 11,41-42; 12,27-29), 그리고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루가 10,21), 피땀을 흘리면서(루가 22,42-45)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루가 23,34.46) 기도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서 기도하셨음과 외딴 곳에서의 기도는 제가 모방하기에 가장 쉬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축복과 자비를 먼저 저에게 주시지 않으면(시 20,4) 외딴 곳은 쉽게 찾아낼지 몰라도 그리 쉽게 마음이 고독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기쁨은 깨끗한 양심의 열매입니다. 당신 은총의 넘치는 풍요로움에서 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저는 그것을 받기에 부족하고 부당한 사람입니다.
- 모자람이 없는 당신이 이렇게 둘러선 백성들 한가운데서 기도하신 것은 다윗에게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사정에 따라서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저희들 역시 거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이 피땀 흘리며 하신 기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하여 십자가상의 기도가 얼마나 필요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 얼마나 피땀을 흘려야만 하는지 그리고 제 십자가가 제 안에서 못 박혀야만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피땀을 흘리지는 못해도 제 마음은 당신의 눈앞에서 피눈물을 흘립니다. 또한 제 육신이 그가 못 박혀야 할 십자가를 발견하지는 못해도 불행한 영혼은 그 안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보다 더 아픈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2,19). 수도서원의 십자가에! 저는 당신의 은총으로 매일 그것을 봉헌합니다, 예, 끊임없이 왜냐하면 당신의 은총은 당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제 십자가의 기쁨과 당신 십자가의 고통을 비교하며 묵상할 때 저는 당신 앞에서 두려움의 못으로 꿰뚫리는 듯합니다(시 118,120 갈라 2,19). 저는 부끄러워 작아지고 맙니다. 제 십자가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당신의 은총은 이미 그것을 많이 완화시켜주었지만, 오히려 당신이 하신 일을 우리 시대에도 하신 일들을 묵상하는 제 마음의 아픔 때문입니다(하바 3,2). 이 일은 모든 시대에, 과거나 미래나 모두 구원받았기 때문에 찬송 받아 마땅합니다. 이것은 그 무엇으로도 제재할 수 없고, 죽음이란 그에게 있을 수 없으며 삶도 그에게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세상이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업신여깁니다.
- 우리는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계심을 보는 것에도, 당신이 죽어 무덤에 묻히시는 것을 묵상하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뺨을 맞고, 채찍질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침뱉음을 받고, 못과 창으로 찔리고, 머리에는 가시관 쓰신 채 우리 구원만을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목말라하시는 당신에게 쓸개와 식초를 마시게 하는 것을 보고서야 우리의 마음은 보다 날카롭고 강하게 꿰뚫릴 것입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마태 27,51 시 75,9) 땅은 흔들렸으나 우리는 웃고 있었습니다, 천지가 온통 어둠으로 뒤덮였으나(루가 23,45 마태 27,45) 우리는 세상의 명성을 갈망했고, 바위는 갈라졌으나(마태 27,51) 우리의 마음은 완고하게 닫혔고,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났으나(마태 27,51) 우리는 육욕에 빠져(아모스 6,4) 뒹굴고 있는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 주님, 당신은 수난하시면서 아버지께 세 가지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그 기도에는 당신이 피 흘린 고통으로 그 대가를 치르신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마르 14,36), 당신의 친구들을 위해서(요한 17,9) 그리고 당신의 원수들을 위해서입니다(루가 23,34).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은 아무런 노고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도가 말했듯이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당신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히브 5,7). 그 후 당신은 당신이 온갖 시련을 겪는 동안 함께 견디어 온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루가 22,28). 그리고 끝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루가 23,34).
그러면 주님, 알고도 죄를 짓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 그런 상태로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십자가에서 양팔을 펼치시어 그들을 포옹하려고 안타깝게 괴로워하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포옹에서 그들은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도 말합니다. “우리가 가르침을 받아서 진리를 깨닫고도 짐짓 죄를 짓는다면 다시는 우리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릴 수 있는 제물은 없습니다.”(히브 10 26) 만일 이 죄가 보속으로도 사함을 받지 못하고, 피땀으로도 깨끗하여지지 않는다면, 알면서도 자유자재로(제멋대로) 죄를 짓는 것은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분의 기도와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친 기도의 동정도 받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