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증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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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무장 이슬람집단(GIA)는 알제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공격적인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3명의 외국 영사관이 납치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외국인은 1개월 이내에 국내에서 물러가라는 압력적인 메시지와 함께 석방되었습니다. 이 1개월의 유예기간이 끝났을 때 4명의 외국인이 GIA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GIA의 경고가 신중하게 받아 들여져야 한다는 본보기 때문이었습니다.
12월 14일. 12명의 클로아치아인 가톨릭신자가 목이 잘렸습니다. 아틀라스의 형제들은 그들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마스기다라는 수도원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GIA는 살해의 범행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며칠 뒤인 성탄절 전야, GIA가 우리 형제들의 수도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원조와 의료 및 물품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방문자”들은 수도자들을 설득해서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입니다. 떠나갈 때 그들은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희생자의 수와 폭력 사건의 리듬은 놀라운 위세로 증가했습니다. 1994년 5월 8일, 알제리아 가톨릭교회의 최초의 증인들이 살해되었습니다. 마리스트회의 사제, 알리 베르제 신부와 성모 승천의 작은 자매인 폴 엘레느 상레이몬드 수녀입니다. 아틀라스의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증거는 남녀 벗들 우리로 인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들은 아득히 먼 곳에서 와서, 성체 제의로 향하고, 성체 제의와 하나로 융합된 것이다.” (일기 1994년 5월 10일)
아우구스티누스회의 두 자매 카리닷도 마리아 알바레스 수녀와 에스텔 아론소 수녀는 10월 23일에 살해되었습니다. 다음 날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살해는 자매들이 성체 제의를 드리고 있던 바로 그 때, 성당 입구에서 일어났다.”라고 (일기 1994년 10월 24일)
이렇게 하여 1994년 11월 25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알제리아의 주교단은 자신들이 처해 살고 있는 모든 사항의 깊은 의미에 대하여, 관상적인 놀라운 통찰을 수반한 메시지를 썼습니다.
다른 그 어떠한 때에도 볼 수 없을 정도의 알제리아의 현재의 위기에 있어서,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은, 그 완전한 순수함 안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당신의 생명을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신 길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봉헌 안에 모든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자상함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알제리아에서, 하느님의 모든 사람에 대한 계약을 살 것을 원합니다. 이 계약의 의미를, 성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 안에서, 하느님이 자주 작은 남은 백성을 통하여 장래를 구원하여 하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소명은 어디에서나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입니다. 그러나 이슬람 사회 안에서 소수파로서의 우리들의 입장은 매우 특수한 차원을 거기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바치기 위하여 우리가 초대한 백성은, 우리의 길과는 다른, 다른 종교의 길을 알고 있습니다. 즉 이슬람의 길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바치는 일은, 종교적 아이덴티티의 다름의 장벽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 전체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증거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 사이에 친교를 이끌어 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시면서 가르치려 하셨던 것은 바로 이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는 당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서, 이 계획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복음사가 요한은 “예수님은 국민을 위해 죽으신다. 국민을 위해서 뿐 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아들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 죽으실” 필요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한 11,51 참조) (알제리아의 주교단으로부터의 서간. 1994년 11월 25일)
1개월 후 12월 27일 4명의 백의선교회(아프리카 선교회)의 신부가 치지 우즈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쟌 슈비라, 크리스티안 쉐잇세르, 아란 디유랑가르드, 샤르르 디메르스 신부들입니다. “남김없이 따르셨던 (주님이신) 벗과 함께 봉헌했다 . . . ”라고 크리스토퍼는 쓰고 있습니다. (일기 1994년 12월 28일)
1995년 9월 4일 월요일, 크리스토퍼는 다시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밤에, 성무가 시작되기 전에, 크리스티안 신부는 우리의 두 자매, 비비안느 수녀와 안젤라 수녀가 이번 주 일요일 저녁 무렵 쯤 베르그르의 미사를 마치고 퇴장하자마자 살해당했다고 발표했다. 나는 묵시록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읽어야만 한다. 그렇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어린 양, 도살당한 어린 양이신 당신이십니다. 빨리 오실 당신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온전히 다 바치신 그 삶으로 말미암아 붙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날도 크리스토퍼는 계속 씁니다. “어제 밤의 알림은 아직도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님이신 당신으로부터의 계시이다. ‘우리의 두 자매, 비비안느 수녀와 안젤라 수녀’라고 크리스티안 신부는 말했다. 아마 그도 거의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두 사람은 우리의 자매인 것이다. 특히 십자가에 매달리신 ‘사랑이신 그분’안에서 자매이다.”
하지만 살해의 파도는 멈출 줄 모르고, 많은 희생자를 계속해서 물었으며, 그 중에는 수도자도 수 명 있었습니다. 1995년 11월 10일 이번엔 자기 생명의 증거를 오디르 프레보스가 바쳤습니다. 크리스토퍼는 일기 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시과 끝에 크리스티안 신부는 ‘성심의 작은 자매회’의 오디르 수녀와 샹탈 수녀의 귀천을 알려 주었다. 자기네들이 살고 있는 울타리 모퉁이에서 살해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당신 안에서, 당신과 함께 당신을 통해서 바치는 것으로만이, 그 외에는 타자(他者)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제물이 되거나,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샹탈은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일기 1995년 11월 11일)
며칠 후 11월 21일 아틀라스의 형제들은 아주 상세한 장문의 문서를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본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현 상태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자기 확인서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귀중한 문서 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1993년의 성탄절 후에, 우리는 여기서 함께 살 것을 선택(재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각자가 미리 행하는(가족, 출신 공동체, 나라에 대한)자기 포기로써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폭력적인 죽음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이든지, 또는 전원이 동시에든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생활에의 이 선택의 결과에 지나지 않겠지요. (비록 그것이 회헌에서는 이처럼 직접적으로는 정해져 있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 주교님께서는 자주 말과 모범으로서 우리가 ‘생명을 바치기’까지 깊이 쇄신되라고 권고해 주셨습니다.”
알제리아의 주교님들은 사목자로서, 또 신학자로서, 이 나라를 휩쓸고 있는 위험 한 가운데서 알제리아 교회의 생명을 재발견했습니다. 주교님들은 ‘우리의 소명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에 대한 이 관상적인 맥락 안에서 우리 형제들의 선언이 위치 지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폭력적인 죽음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이든지, 또는 전원이 동시에든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생활에의 이 선택의 결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민중을 위하여 죽으심은 필요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민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흩어진 하느님의 아들들을 모으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나를 섬기려는 자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에는 내 종도 있습니다.
앞에서 시작한 피와 빛의 연표로 되돌아가기로 합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즉, 우리의 증인들 중에서 가장 젊은 자의 경험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짊어진 자’ 즉, 크리스토퍼는 GIA의 무장그룹이 1993년 성탄절 새벽에 수도원으로 왔을 때에는 적발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젊은 형제와 함께 달아나, 독서의 기도 시간 때까지 포도주 저장 창고의 암흑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최악의 경우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몇 주일 뒤, 그날 밤에 자신이 체험한 것을 크리스티안 신부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경험한 것이란, “제일 먼저 달아나서, 몇 시간 동안 계속 기다렸었고, 암흑에서 일어났다.”라는 것입니다. 그때 크리스토퍼는 하느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아마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삶을 받아들이게 되겠지요. 허지만, 당신은 나에게 형제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실 수가 있으시겠습니까?” (일기, 1994년 1월 16일) 신부가 15일 후에 쓴 사항들은 이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수도자, 그것은 밤의 어둠 속에서 깨어 기도하는 자. 만일 아직도 자기 자신을 염려하고 있다면, 어떻게해서 전구를 한다거나, 여쭙는다거나, 간구와 청원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12월 24일의 포도주 저장 창고에서의 밤에, 당신은 나에게 이 사실을 배우게 하려고 시작하셨습니다. 그 때 나는 다른 형제들이 무장한 방문자들의 손아귀에 있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일기, 1994년 2월 4일)
또한, 성탄절 전야에 공동체가 경험했었던 일에 대하여 묵상했을 때에도 크리스토퍼는 똑같이 “우리는 에피클레시아(성령을 간청하는 기도)의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라고 썼습니다.(일기, 1994년 1월 4일)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생각을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는 표출시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전례의 에피클레시스는 성령을 간청하는 기도이며, 그 신적활동으로 성체제의 안에서, 교회로 말미암아 봉헌된 제물이 성변화 되도록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크리스토퍼의 말 뒤에 우리는 마치 제2봉헌문의 기원문을 듣는 듯합니다. “여기에 봉헌하는 이 봉헌 예물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를 따르다가 흘린 피는 성체 제의 안에서 다시 발견됩니다.
크리스토퍼가 1993년 8월 8일에 쓴 일기는 크리스티안 신부의 “유언서”의 가장 좋은 해설서이며, 보완이 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신부가 수 주간동안에 쓴 것을, 크리스토퍼 신부는 2년 반에 걸쳐서 썼습니다. 이 양자에게 있어, 극한에 도달하기까지, 충실을 따라 사는 결의를 서술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1993년에 시작된 일기 안에는, 그 이전에 쓴 일기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의지와 말씀을, 거기서 출발해서 해석하고, 말하기 위하여, 식별하려 했던 의식적인 노력이 보입니다.
“이미 이 수첩 안에는 잔치 날의 예물이 있다. 그것은 당신.
그리고 잔치는 다가왔다. 오오, 내가 거기에 없다는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으며, 당신을 위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할 때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과도하게) 응시하는 일 없이, 가끔 적고 있다.
당신을 향하면서, 나는 가끔 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당신의 마음에 대한 봉사 때문에.
나는 자기 자신을 위한 사명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입니까?
십자가를 베끼거나, 그리는 이는 제자입니다. 아들입니다.
세상은 그 아들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허위를 일삼는 자는 그것에 게걸들린 양, 태어나자마자 해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나는 사막에서 쓰기로 하자.
나는 당신의 입장을 고수하기로 하겠습니다. 만약 당신의 숨이 내 손에 달렸다고 한다면, 나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내 십자가를 잡아라’라는 소리를 당신으로부터 듣는다는 것은 ; 이것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점유하고 있는 것들 (나를 몰두시키는 것들)로부터 내가 멀어지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다른 모든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자유 안에서, 완전히 당신을 따르기 위하여.” (일기, 1993년 8월)
이 맥락 안에서, 크리스토퍼가 “우리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들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 안에서 가장 귀중한 것인가”라고 자문하던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일기, 1993년 8월 23일)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알게 된 지금, 우리는 확신을 갖고 크리스토퍼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 수첩에 적혀진 모든 사항들은, 봉헌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떠한 사명도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가장 젊은이에게 최선의 것을 나타내 보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1968년 5월 혁명의 젊은이. ‘헌신이 불가능’하다고 추궁 받던 세대의 구성원! 생명은 그것이 바쳐 질 때에 비로소 그 의미를 갖게 됨을, 죽음에서 삶에로의 당신의 그 일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