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HELM VON SAINT-THIERRY
샹 티에르의 윌리엄
MEDITATIVE GEBETE
묵상 기도
네 번째 묵상 -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과 이야기하기 위해 피신함
들어가는 말
영혼은 기도의 은사를 하느님께 청한다.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는 그는 하느님께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탄식하며 간곡히 청한다. 성령께서 인간의 약함을 아시고 도우러 오신다. 그는 신앙의 정신을 일깨우고, 신뢰심을 강하게 하며, 마음을 불사르고 많은 눈물을 흐르게 한다. 영혼은 지난날의 죄를 생각하여 자신을 낮추고 천국에서 추방당했음과 이방인들의 나라에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그는 많은 잘못이 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주께서 그를 지어 만드셨음을 후회하지 마시기를 간청한다. 깊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께로 되돌아가 그분을 더 잘 알고 그분의 사랑을 맛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감사를 드리며, 범한 죄에 대한 아픔으로 슬퍼하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 드린다.
1. 주님, 당신은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분,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신 분. 주님께서는 모두에게 좋으신 분,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들 위에 비치도다(시 144,8-9). 주님, 당신은 우리에게 당신과 함께, 당신의 성령과 함께 늘 깨어 기도하라고 권고하십니다(마태 26,41 에페 6,18 골로 4,2 1베드 4,7).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호의로 자비와 불쌍히 여기심과 갈망함 안에서 권고하시며 가르치십니다. 또한 당신은 우리에게 소송을 제기하시지만 공정과 정의로 판단하십니다(시 118,121).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서 당신께 하소연하면 당신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려는 이유를 거기서 찾아내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지 헤아려 가르쳐 주십니다(마태 6,9-13 루가 11,2-4). 이것은 당신이 모든 것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심판 주, 우리의 전구자시여! 우리가 청하는 것은 모두 얻으리라는 신뢰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당신 이름으로 청하고 믿으라고 당신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마르 11,24 요한 14,13; 16,23).
2. 당신은 당신의 자유의지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가르치심에도 불구하고 기도에 게으르고, 명령을 하셔도 행하지 않으며, 약속을 들었으면서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태만한 사람들을 당신은 큰 연민과 자비로 흔들어 깨우십니다. 인내로써 당신은 믿지 않는 사람을 대하실 때는 모르는 척하시며 그들과 똑같은 위치에 당신을 두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당신은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하여 주십니다(로마 8,27 갈라 4,6). 당신이 우리에게 권하시기에 우리는 기도하고,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깊이 신뢰하며 간구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달려오시어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십니다. 당신은 이렇게 하여주심으로써 우리 안에 화해의 시작을 찾아내십니다.
3.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시며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당신 자비는 모든 조물들 위에 미치고(시 144,9) 당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하느님, 당신은 우리에게 가까운 하느님이시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면 당신의 위로는 영혼을 기쁘게 합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당신 현존의 향기와 어루만져주심은 영혼의 죽은 감각들을 소생시켜주고 믿음은 용약하고 환호하며, 신뢰는 기뻐하고 마음은 뜨겁게 타오릅니다.
그 순간 흐르는 눈물은 타오르는 불길을 꺼버리는 눈물이 아니라 오히려 불길을 돋우는 눈물입니다. 당신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우러 오시면 많은 눈물이 흐릅니다. 그것은 당신 애정의 체험에서 흘러나오는 풍부하고 감미로운 눈물입니다. 당신께서 사랑스러운 손으로 닦아주실 때면 더 많이 흐르는 눈물입니다. 낮에도 밤에도 흐르는 . 제 눈물은 저의 빵이 되나이다(시 41,4). 그 눈물의 빵은 우리를 힘 있고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입니다.
예, 주님, 당신 앞에서 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당신은 우리의 창조주, 우리는 당신 목장의 백성, 당신 손길의 양떼입니다(시 94,7).
4. 주님, 저는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과 같습니다. “온갖 고생을 다 겪은 사람!”(애가 3,1) 어려서부터 저는 가련하고 죽어 가는 몸, 당신의 두려움을 짊어진 채 어쩔 줄 모르나이다(시 87,16). 당신께선 저로 하여금 수많은 곤경과 불행을 겪게 하셨지만 저를 다시 살리셨나이다. 저의 명성을 더해주시고 저를 다시 위로해주셨나이다(시 70,20-21). 당신은 저를 낙원에서 지어 만드셨고 당신이 만드신 생명의 나무를 저의 소유로 주셨습니다. 제 손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는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창세 2,9).
그 때 저는 저의 내적 재물에는 싫증이 났고, 제 육신인 에와에게 찬동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험했습니다(창세 2,17; 3,1-10). 저는 그 열매를 받아먹었고, 그 안에서 당신의 감미로움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이 아닌 무질서와 혼란과 수치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제 자신을 벌거벗은 몸뚱이로 당신과 만나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베일이 필요한 인간으로 깨달았고, 당신의 계명으로 자유가 길들여져야만 하는 인간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제게서 보화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을지 몰라도 당신의 눈에 저는 벌거벗은 몸, 온갖 보화에서 벗어난 몸입니다. 저의 마음 깊은 곳은 무질서로 혼란스럽기 짝이 없고, 그곳은 당신도 제 자신도 숨을 곳이 못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인도해야 할 임무를 맡은 제 자신이야말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5. 그래서 주님, 저는 낙원의 나무들 뒤에 저를 숨겼습니다. 그럼으로써 저는 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저는 도망쳤습니다. 그것은 당신 앞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께로 도망친 것입니다. 폭풍의 모진 바람, 좌절감으로부터 당신은 저를 구해주셨나이다(시 54,8-9). 입을 땅에 대고 행여 앞날이 트일지 기다렸습니다(애가 3,20). 암당나귀가 광야에서 헐떡이듯이 저는 사랑의 내음을 향해 치닫나이다(예레 2,24). 그 후 저는 자신의 평정을 되찾고 조용히 고독하게 앉아 있습니다(애가 3,20). 인가에서 들려오는 소란쯤은, 싸우는 소리쯤은 코방귀로 날립니다(욥 39,7).
저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 충분히 있습니다. 저는 묻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 저는 아담의 후손이며 본래 진노(震怒)의 아들임이 분명합니다(에페 2,4). 그러나 은총으로 당신 여종인 성교회의 아들임도 틀림없습니다(시 115,16). 저는 낙원에서 쫓겨난 자로써 이들의 잘못으로 인해 당신의 저주를 받은 땅(창세 3,17), 죽도록 고생하여 땅을 일구어도 곡식을 거두지 못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땅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합니다. 당신의 계명을 저버린(시118,21) 교만한자들, 저주받은 자들에게 내리신 정의로운 당신의 엄하고 가혹한 심판의 말씀에 따라 저는 이마에 땀 흘려야 빵을 먹게 되었습니다(창3,18-19).
6. 좋으신 창조주시여! 당신은 저를 얼마나 훌륭하게, 또 얼마나 저를 품위 있게 만드셨습니까! 주님, 당신은 미리 마련하신대로 저를 그 안에 두시어 선한 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에페 2,10). 당신의 모습대로 저를 만드셨고, 당신의 닮은 모습으로 저를 지으셨습니다(창 1,26). 당신의 복된 낙원에 저를 두시어 그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선행의 훈련으로 그들을 돌보고, 뱀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이 기어들어와 저의 하와를 유혹했고, 그로 인해 저는 책임과 의무를 잊어버리고(갈라 2,18), 법을 어긴 불충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좋은 양심의 낙원에서 추방당하였고 망명자로 이국땅(시136,4), 닮지 않았음의 땅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7.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창 1,31). 그런데 이제 저의 악한 행위로 인해 당신의 좋으신 행위를 잃게 되는 것입니까? 지상의 인간으로 저를 창조하셨을 때 당신은 낙원을 위해 저를 만들지 않으시고 저를 위해 낙원을 만드셨습니다. 창조주시어, 왜 저를 지상의 인간으로 만들었던가, 후회하지 말아주십시오(창 6,6). 그보다는 당신이 맨 처음 하셨듯이 제게 속한 영역을 다스릴 힘을 가진 이성적인 인간이 되라고 저에게 명령하십시오(창 1,26). 제 육신은 영혼에게, 영혼은 당신에게 복종하도록 명하십시오! 인간에게 이런 존엄성을 주신 것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으시기를!
제 영역 안에 있는 짐승들을 다스릴 힘을 주시고 제 영혼의 야욕과 욕망을 지배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저는 기는 짐승과 같은 저의 생각을 지배하고 싶습니다. ; 그들은 땅바닥에 달라붙어 있으면서 독(毒)을 가지고 있어 위험할 뿐만 아니라 살생까지 합니다. 저는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도 지배하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세속적인 정신에서 오는 사고와 세상의 허영입니다. 저는 짐 싣는 짐승들, 즉 우리 육신의 오관(五觀)을 다스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들은 우리를 도우라고 우리와 함께 창조된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저희에게 주셨으니 이성의 고삐를 잘 견디고, 좋은 열정의 가시를 참아 견디고, 학원의 울타리 안에서 먹이를 받아먹고, 필요에 따라서는 끌어내기도 하며, 어쨌든지 드러나는 결점이나 거친 행동은 용납되지 않음을 참아 견딜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예언자가 말씀하신 그 날은 올 것입니다. 그 때에는 늑대가 어린양과 함께 있고(이사야 65, 25),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이사야 11,9). 그 때에는 양떼들이 이 산 저 산에서 기름진 풀을 뜯게 될 것입니다(에제 34,14). 육신의 오관은 더 이상 우리 약함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 행복을 돕게 될 것입니다.
8. 그 날이 오면 주님, 하늘의 청을 들어주시고, 하늘은 땅의 청을 들어주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청을 들어주고, 이 모든 것들은 이즈르엘의 청을 들어주게 하여주소서(호세 2,23).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저희 안에 심어주신 하느님의 씨앗을 들어주소서.
주님, 예언자가 말했듯이 당신은 저를 젖으로 키워주셨습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제 마음에 속삭이려고 저를 광야로 부르시며 약속하셨습니다. 감사하나이다. 주님, 당신은 한 번 제게 말씀하셨고 그 후에는 끊임없이 계속 말씀하심을 그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께 “당신은 나의 하느님” (시 15,2)라고 하면, 당신은 제게 어떤 때는 조용히, 자비에 넘쳐 “나는 너의 구원” 이라고 대답하십니다(시 34,3).
9. 지금 제 영혼의 그리움이여(이사야 26,9), 제 영혼은 당신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들이고 싶어합니다(시 33,9). 당신의 크고 위대한 자비와 자애를 청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제 안과 밖의 모든 것들의 평화와 고요를 보존시켜주시고 당신이 제게 주신 옳음을 지켜주십시오(시 102,1). 외적으로는 맹수 같은 들짐승, 땅을 기어 다니는 짐승들, 하늘의 새들과 평화의 다짐을 받아주시고, 제 땅 안에 화살과 무기와 전쟁을 없이하여 주소서(호세아 2,18-20).
제가 살고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시온에 저의 거처를 마련하여 주소서(시 75,3). 고독한 저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당신과 자주 이야기할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저의 하느님 당신이 저와 함께 계시면 저는 외톨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떠나시면, 아, 가련한 외톨이여! 혼자서 잠을 자면 서로 몸 녹일 수도 없고 넘어져도 아무도 일으켜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전도 4,10-11).
10. 오, 저의 피난처, 저의 힘이신 하느님(시 45,2), 당신이 모세를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가 타 없어지지 않는 곳으로 인도하셨듯이(출애 3,2) 저를 당신의 사막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이러한 특권을 받기에 합당한 성스러운 영혼이 있는 곳, 성령의 타는 불길 속에서도 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화되는 세라핌과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비로소 그 때 영혼은 멈춰 서 있을 수 있고, 이것이 당신의 최상의 기적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뵈올 수 있는 곳, 머물러 있을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거룩한 장소, 육적인 욕구의 끈에서 풀려나 신발을 벗은 상태로만 갈 수 있는 곳- 이곳은 마음의 정화와 정화된 마음의 지향을 의미함- 그리고 전혀 볼 수 없으나 “나는 나다.”(출애 3,14)라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까지 그는 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뵙는 것은 사람에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먼저 얼굴을 가려야만 합니다(출애 3,6). 그의 내면에서 하느님이 그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기 위해서 주의 깊게 겸손 안에서 순명을 배워야 합니다.
11. 주님, 불행의 날이 닥쳐오면 우선 당신의 장막 안에 저를 숨겨주소서. 당신 면전의 피난처에 저를 피신시켜주시고 입술들의 싸움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시 30,21). 당신은 저에게 편하고 가벼운 짐을 지워주셨나이다(마태 11,30). 당신은 저에게 당신의 종과 세상의 종의 차이를 보여주셨고 온유하고 매혹적으로 제게 살아 계신 당신을 섬기는 것과 이방인의 우상을 섬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으냐고 물으셨습니다(신명 7,4; 17,3).
저는 제게 짐을 지운 손을 받들어 섬기고, 그 짐에 입 맞추며 짊어지운 짐과 노고를 포옹합니다. 그것은 제게 편하고 그 아래 땀을 흘림은 좋으니이다.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당신이 아닌 다른 주인이 저를 지배하였고(이사야 26,13), 그가 지운 멍에는 편하지 않았고 짐은 무거웠습니다. 저는 당신의 정의를 갈망합니다, 당신의 멍에를 받아지겠고 당신의 짐은 저를 짓누르기는커녕 오히려 북돋아줍니다.
12. 이제 저는 당신 섬김의 새로운 훈련에 자신을 복종시키니 새로운 하늘과 땅을 보는 듯합니다(묵 21,1.5). 보십시오, 당신은 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묵 21,5). 주님, 교양도 없고 세상 어디서 천하게 살다가 온 저와 같은 사람에게 당신 궁전의 예법과 그 나라의 관습을 가르쳐 주십시오. 세상의 호화로움에 익숙해진 저를 그것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십시오. 당신 나라의 시민과 똑같이 저를 만드시어 그들 사이에서 볼품없는 인간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여주소서.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듣기 시작한 제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가르쳐 주소서(시 80,11). 남의 나라에서 늙어서(바룩 3,10) 당신께서 당신의 아들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이 당신과 함께 이야기하는 말을 저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무엇이 당신의 뜻이고 무엇이 당신 마음에 들며 무엇이 선하고 완전한 것인지 분간할 수 있도록 당신이 보내시는 표징을 이해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로마 12,2).
13. 사랑하는 아버지, 이제 저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제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영혼은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아직 명백하게 알아듣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빈말로 제게 오지 않습니다(이사야 55,11). 당신의 말씀은 당신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밖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힘과 온유함으로 역사 하십니다. 제가 당신께 말씀드릴 때는 주의 깊게 유심히 당신을 경청합니다. 이것은 제게 좋습니다. 저의 기도 내용이 어떻든지 그 간구함은 헛되지 않았고, 당신께 경배 드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있는 동안 이미 제게는 큰 상급이 주어졌습니다(시 18,12).
14. 그러하오니 성령이시여,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을 제게 가르쳐주시어(1데살 5,17) 당신 안에서 영원히 기뻐할 수 있게 하여주소서(1데살 5,16). 당신의 가난한 자,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 기도하고, 울고(마태 5,3), 그가 범한 죄를 생각하며 두려움에 싸여 있을 때, 그는 슬퍼하면 슬퍼할수록 더욱더 기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분별 있게 행동했다면 양심의 깊은 곳에서 괴로워하고 가책을 받는다면 그는 더욱더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하고 깨끗한 기도는 기쁨이 없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