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8월의 말씀


넉넉함이 물들이는 자리

아

무 생각 없이 바라만 봐도 좋은 그림입니다. 카유보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나희덕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참 건강합니다. 자기를 갉아먹거나 자기 연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거나 그런 것이 없습니다. 뭐 어쨌든 아픔과 고통이 예술의 바탕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예술 작품들은 그래서인지 인간 심리의 부정적인 바닥을 훑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삶의 가장 아프고 저리고 깊은 부분에 가닿게 해줍니다. 그런데 카유보트의 그림들은 삶의 긍정성, 약하고 낮은 것들에 대한 천성적인 공감이 절로 느껴지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그의 삶의 여정을 보면 그의 그림들의 이 특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카유보트는 그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의 지원자이며 그 자신 스스로 인상파 한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부호였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젊은 나이에 많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고,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던 젊은 인상파 화가들이 예술가로서의 길마저 위태롭게 한 가난의 바닥에서 헤맬 때 그들의 그림을 사들여 그들이 새로운 길로 걸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들인 그림을 정부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남겨 현재 그 유명한 오르세 미술관 컬렉션의 핵심이 되어있습니다. 어떤 면으로 볼 때 카유보트가 없었다면 인상파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이 넉넉함과 세상은 지니지 못한 안광을 지닌 사람됨은 그의 주변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부유함에 매몰되지 않고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본 마음의 건강함과 평화로움이 그림에도 묻어나지 않을 수 없지요. 건강함이란 씩씩함 강건함의 육체미와는 좀 결이 달라서, 작고 약하고 천대받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자신의 결함도 솔직하게 볼 수 있는 투명함이 건강함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그림 속 예르 강은 카유보트 자신의 저택 경내를 흐르는 작은 강으로, 주변에는 유명한 귀족들의 별장이 많은 장소이기도 한데, 그런 사회적 특권에 함몰되지 않는 그의 건강함이 그림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맑은 강물, 봄의 따뜻함, 연초록 잎들의 살랑임을 보며 오히려 부글거리는 밑바닥이 더 요동치는 경우를 우리는 체험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대로 반응하는 단순함은 내면의 단순함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그림은 무척 평범한 소재를 다루면서 조화와 균형이 돋보이며, 강 흐름과 나무가 이루는 수평과 수직의 조화는 실제로 흐르는 강 앞에 있는 평화로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인상파답게 강 위에 떨어지는 빛에 무척 매료되었음을 절로 느끼게 하는데, 물 위에 반사된 나무 기둥과 빗방울이 떨어져 만드는 원형의 물결은 멜로디처럼 퍼지며 사람의 마음을 슬며시 당겨 다가앉게 만드는 매력을 솔향기처럼 고요히 품어냅니다. 무더운 여름 심각한 생각일랑 접어두고 이 그림 앞에 앉아있고 싶습니다.

<기쁨의 멜로디 위를 달리는 폴리포니>

벚꽃 흐드러진 절정의 봄날

꽃비와 봄비가 수도원 길 위에 만든 합작품

수녀들은 3일 동안 그 작품 밟지 못해

길 옆 잔디 밟고 다녔네

대박!

길고양이 사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간 뒤

다람쥐 쪼르르 제 발보다 긴 자국 남기고

바람은 무심히 작품 위를 훑고 지나가네

대박! 그제사 수녀들 박수치며 걸어가네

작품명 :

기쁨의 멜로디 위를 달리는 폴리포니

구스타프 카유보트, 예르강 비, 1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