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5월의 말씀


모든 새로운 길은 십자가의 길을 품고 있다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파울라 모더존이라는 화가의 그림으로 저렇게 단순한 붓질로 내면의 생생한 생동감을 전해주는데 이끌렸습니다. 자신의 누드를 그린 최초의 여성화가인데, 귀엽게 그린 꽃 두 송이도 입을 벌려 노래라도 할 듯 생동감이 넘칩니다. 처음 이 그림을 만났을 때 현존하는 이 시대 화가의 그림이려니 생각이 들었는데, 그녀가 인상파 화가들과 동시대 사람인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고 그래서 더 끌렸습니다. 초기에는 독창적인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다 네 번의 파리 방문 동안 세잔, 고갱, 고흐의 영향을 받으며 더욱 단순하고 과감하며 색감이 선명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어디에도 여성을 학생으로 받아주는 아카데미는 없었고 사설 학원이나 유명한 화가에게 사사를 받는 것 외에는 미술을 공부할 수 있는 길조차 없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화가로서의 삶의 여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후에 자신의 남편이 될 오토 모더존을 만난 보르프스베데 예술가 공동체 화가들도 당시의 흐름대로 사실적인 풍경화가 주를 이루었고, 그녀의 이 시대를 앞서는 그림은 화가 마을인 이곳에서도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이 마을에서 다른 여성화가들과 함께 생애 최초로 작은 전시회를 열었지만, 지역 비평가들은 그녀들의 작품이 습작이거나 아직 덜 배운 화가의 그림이라는 모욕적인 평을 합니다.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그녀의 부모들도 이를 계기로 그림을 그만 두기를 권고했으나 이런 일로도 그녀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 오토 모더존만은 그녀의 재능과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았고, 이를 계기로 이들의 사랑이 이어지게 되는데, 그는 아내인 파울라에 대해 묘한 여러 겹의 감정을 지녔던 듯 합니다. 동료 화가로서 자신보다 앞서가는 그녀에 대한 질투 섞인 선망, 남편으로서 아내 역할에 대한 기대, 자존감이 높고 개성이 뚜렷한 그녀에 대한 매력과 이해하고자 하는 아량 등 이들의 부부생활은 통상적인 가정의 틀을 넘어서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결혼하면 아이 키우고 가사 일을 도맡는 당시의 여성들과 그녀는 달라도 한참 달랐고, 남편이 된 오토는 그녀의 이런 면을 알면서도 가정에서의 아내의 빈자리를 늘 허전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예술의 길에 심한 목마름을 느낀 파울라는 이혼까지 생각하며 마지막 네 번째 파리여행을 택합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갈등의 고비를 넘어서며 그녀 역시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와 아기가 생김으로 빚어질 여성으로서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하는 갈등을 경험하면서도 파리에서 재회한 남편과 화해하며, 임신하고 딸을 낳는데, 딸과 새로운 생명에의 무한한 기쁨이 그녀를 감싸는 순간, 안타깝게도 출산 후유증인 색전증으로 31세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안타깝다.”였다고 하는데, 그녀의 일생을 생각하면 참 가슴아린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고, 남기고 갈 작은 딸에 대한 아픔도 컸으며, 가족조차 이해해주지 못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화가의 길에서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눈뜨게 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미완의 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대가 감당하기엔 너무 앞서가는 젊은 여성화가의 삶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한계 있는 인간의 시각이요, 그녀의 작품은 사후 새로운 조명을 받으며 독일 표현주의의 길을 열고, 프리다 칼로 등 현대 여성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말은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두려움과 수없이 마주하는 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롭기에 누구로부터 도움받는 일도 쉽지 않고, 자신 역시 막막할 뿐인데 주위로부터는 이해보다는 비난과 멸시의 눈길을 받기 일쑤입니다. 이 새로운 길을 끝까지 갈 때 하나의 새로운 길이 생겨나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됨을 봅니다. 모든 새로운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품고 있습니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 꽃을 든 자화상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