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2월의 말씀


절대선도 절대악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락한 천사라는 이름의 이 그림은 보는 순간 저 눈빛이 사람을 잡아당깁니다. 이 천사의 이름은 루치펠이며, 창조시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운 창조물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루치펠, Lucifer 빛을 나르는 자”라는 이름이 악마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 무슨 일일까요? 가장 아름답던 그는 밀턴의 실락원 구절 그대로 “천국에서 섬기느니 지옥에서 다스리겠다.”, “내 마음이 곧 지옥이로다. 나 자신이 지옥이니 ….”한 그 말대로 하느님을 떠나고 천국에서 쫓겨난 직후의 그의 모습을 화가 알렉상드르 카바넬이 그렸습니다.

타락한 천사라는데 내 눈에는 누군가와 겹쳐져 보입니다. 1994년 소위 자신들을 지존파라 불렀던 7명이 살인공장을 차리고 5명을 살인한 후, 검거되어 세상을 온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떠오르고 그들 중 한 명의 인터뷰 장면이 떠올라 인터넷을 뒤져보니 저의 뇌리 속에 선명한 그 비릿한 웃음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7명 중 김현양은 어떤 장면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법 없이 언제나 똑같은 웃음을 세상을 향해 보란 듯이 날립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인간이 아니야. 그래서 다 잡아죽이려고 …. 우리 엄마요 내 손으로 못 죽여서 한이 맺힙니다.” 그의 모습은 카바넬의 그림 속 루치펠과 너무 닮았고, 천사를 볼 수 없었던 화가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인간을 그렸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은 원망과 증오, 공포, 반발심 속에는 그보다 더 지독한 그리움이 감출 수 없이 비집고 나옵니다. 누구도 쓸어내릴 수 없는 두려움의 광기는 누구도 보듬어 줄 이 없는 인생의 밑바닥을 치고 세상을 향해 그 독기를 품어댔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한이라는 김현양, 그의 눈에 생명의 빛남이 보이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그가 나온 사진들은 대부분 저 비릿하고 섬광을 내뿜는 듯한 미소를 흘리는데, 다른 6명은 어디서도 웃음을 짓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뿌리는 듯, 입은 미소를, 눈빛은 저 그림 속 루치펠을 닮았습니다.

화가가 그린 타락한 천사에게서 제 눈에는 사랑을 잃은 존재의 광기가 보입니다. 어떤 이는 마귀를 걸어다니는 무시무시한 파충류처럼 그리기도 하지요. 어쩌면 우리 인간은 절대선을 알 수 없듯, 절대악도 알 수 없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픈 과거를 지녔든 그들의 살인 행위를 비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들 속에도 이 두려움의 광기를 그대로 받아안고 있는 하느님의 손길이 누구보다 함께 아파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이 보듬는 손길이 되어 주었더라면 어쩌면 그들도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라는 미련을 결코 버릴 수 없습니다. 삶의 진창 속에 내밀어준 누군가의 손길 덕분에 새 삶을 얻는 이야기를 우리는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사형 5분 전 김현양은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세상에 사랑이 있는 줄 알았으면 살인자 사형수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속된 다음에 사랑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제가 먼저 하늘나라 가서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가장 잔인한 사람의 밑바닥에는 가장 상처받아 짐승이 되어버린 영혼이 웅크리고 있었나 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그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하느님의 팔이 짧아 그들을 안을 수 없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을런지요. 구속 후에야 사랑을 알았다는 김현양, 계부의 학대로 집을 나오고, 다니던 공장에서 7개월분의 월급을 못 받게 되었을 때 주린 배를 움켜쥔 그의 할퀴어진 몸과 마음이 그 팔 안에서 참 사랑의 맛을 보고 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Alexandre Cabanel 타락한 천사 부분화, 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