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6년 1월의 말씀
새해에 맛보는 하느님의 시선
그림은 참 아름답고 장대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동화처럼 쉬우면서도 우주보다 심오하게 샤갈은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의 그림은 일단 아름답고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스토리 이전에 이미 색깔로 먼저 사람을 끌어당기고, 동화같은 분위기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의 그림은 동화 같은 분위기이면서도 상당히 복잡하고 신비로 가득하여 얼핏 다가가기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몇 가지 코드만 알고 나면 의외로 단순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은 따로 놀거나 모순되지 않고 한줄로 꿰여있음을 알게 됩니다. 갖가지 전혀 다른 종류의 보석들이 조화롭게 꿰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과 유사합니다. 자칫 잘못 배치하면 유치할 수 있는 배색들이 놀라운 조화를 이루며 그 스토리를 환희 비추어줍니다.
이 그림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중앙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막 창조된 인간과 천사, 우측 상단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역사, 좌측 상단은 종말 내지 하늘나라 이야기, 하단 양쪽은 땅 위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인간창조를 두고 우주의 시작과 종말 모두를 꿰뚫으며 그 핵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배치하는 놀라운 통찰을 보입니다. 그가 유대인이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면 그의 직관력은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아주 튼튼해 보이는 천사가 아직 생명의 기운이 없어 축 늘어진 인간을 안고 화폭 넘어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오롯이 바라보고 있는데, 창조주 하느님임이 틀림없겠지요. 우측 상단 구원 역사는 온갖 다양한 무지개 색 바람개비 같은 것이 빙빙 돌고 있는데, 이 휘몰이는 예수의 십자가가 쐐기 역할을 하여 어딘가로 튕겨나가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아래 오른쪽에 한 사람이 촛대를 들고 구원을 향한 사다리를 비추고 있으며, 같은 사다리가 십자가 위를 향해 걸쳐져 있습니다. 십자가 위 지붕 아래 쪽으로 현대 복장을 한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유대인과 우리 모두의 고난의 역사를 그리고, 바람개비 위 천사는 이 고난의 역사가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진 채 어둠 속에 제멋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이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왼쪽 상단 황금빛 기쁨이 출렁이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무리가 기쁨의 환호와 함께 춤을 추고 천사는 나팔을 불고 온갖 생물들도 이 천상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춥니다. 천사가 안고 있는 사람의 몸 바로 아래 땅에는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어 이곳이 유혹과 환난의 땅임을 보여줍니다. 그 땅 위에는 온갖 생물들이 뛰어놀고 오른쪽에는 아담과 하와가 에로스의 기쁨 속에 서로에 대한 신뢰 가득한 포옹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세기도 공간도 이 세상과 저 세상도 아무런 구별없이 한 장면 속에 당연한 일인 듯 하나의 그림을 이룹니다. 이런 시선은 성경 속 하느님의 시선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지 아인슈타인이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1년이 365일인 것이 우주 공통인 줄 알았던 것이 기껏 100여 년 전일입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행성들은 자신의 무게로 휘어진 바로 그만큼 시간은 행성마다 다릅니다. 즉 중량이 달라지면 공간이 달라지고 공간이 달라지면 시간도 달라진다는 사실은 이제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천문학자들이 잠시라는 표현을 쓸 때는 그 숫자는 수십억이라고 하니, 하느님의 영원에서야 말할 것도 없을 터이지요. 그 우주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감히 가늠하지 못하지만 샤갈처럼 뛰어난 이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작은 사랑도 감동의 파도를 타며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샤갈처럼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만드신 마음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읽어내는 마음을 지닌 이는 복됩니다.
마르크 샤갈, 인간 창조, 1956-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