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5년 4월의 말씀


죽음이 빚어낸 환함

흐의 이 그림이 언제 그려진 것인지 알면 아마도 조금은 놀랄 것입니다. 고흐의 그 드라마틱한 삶의 어느 순간에 이 그림을 그렸을지 한 번 상상해보는 것은 이 그림뿐만 아니라, 고흐의 삶 자체를 이해하는데 열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정말 신비로운 수수께끼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흐에 대한 평가는 어떤 화가보다도 각양각색입니다. 아마도 저는 종교적 관점이라는 사실을 빼고서는 고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입장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종교, 예수, 신비라는 말과 상관없는 세상의 흐름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젊은 시절 런던과 파리에서 잠시 미술품 판매업에 종사했는데, 그는 그 도시의 우아함과 회려함에 조금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선교사로서 그의 삶이 그의 뜻과는 반대로 강제로 종료하게 된 바로 직후였습니다. 가난한 탄광촌에서 시작한 선교사의 삶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독특했지요. 온전한 헌신이라는 말이 그 말의 뜻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지요. 그들과 같은 음식, 같은 주거환경에서 살며 “감자먹는 사람들” 속 가난과 일체가 되어 석탄가루 까맣게 뒤집어쓰고 창백하게 시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선교사로 받은 급여를 아낌없이 쏟아붓고, 자신을 위해서는 생계에 필요한 거의 최소한의 지출만으로 살아갔습니다. 그의 내면은 고통과 함께 깊이 예수의 모습이 새겨지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바라본 예수는 사실 그의 그림의 핵심을 이루고 있고, 이 사실을 빼고는 그의 그림을 참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맥락에서만 “까마귀 나는 밀밭”에서 까마귀가 죽음과 저주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징을 뒤엎고 결실 가득한 황금빛 밀밭과 함께 활짝 열린 길로 그의 정신이 열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의 모든 그림들은 종교, 예수, 복음, 생명, 희망을 집어넣으면 갑자기 새로운 빛을 띠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매료되면서도 그를 “불행한 삶의 끝에 정신병”으로 자살한 사람이라는 틀 안에서 바라보려 하며 그의 그림들을 그런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에게 정신병적 현상이 없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는 그런 면이 분명했지만, 그 병조차 덮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빛이 있고, 그 빛은 다행히도 그가 자신의 동생에게 쓴 편지들에서 아주 선명히 드러납니다. 그의 작품들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보게 한 그의 동생의 부인 요안나 봉허는 고흐가 처음 자신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한 “그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 같지 않고 아주 건전해보였다.”는 증언도 참 중요합니다.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봤던 요안나는 그의 사람됨도 놓치지 않았고, 자기 남편과 형인 고흐의 사망 후 자신의 온 생을 바쳐 자신의 남편이 아낌없이 지원했던 고흐의 그림의 가치를 알리는데 헌신합니다.

그는 평범한 우리들이 생각하는 모든 생각의 틀에 도저히 가두어 넣을 수 없는 그런 신비에 빠져 그 신비의 늪에서 살았던 사람 같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그의 그림의 색채입니다. 그의 노란색과 파란색은 색깔 자체로 어떤 말을 걸어옵니다. 그의 그림의 어떤 색에서든 희망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인간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오직 좌절만이 몫인 그의 삶은 점점 그 신비와 하나 되어가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갔고, 결국에는 스스로 태양을 향해 뛰어들어 그 태양에 활활 타올라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참 놀라운 것은 분명한 그의 정신병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정신병 앓는 모든 이들에게 보이는 인격파괴나 판단력 무너짐이 없었다는 것이며, 사실 정신병원에도 스스로 판단하여 입원하였지요. 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그는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신비 속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운명 지워진 사람 같았다고 느낍니다. 그의 삶에는 성공이란 단어는 마치 외계 언어 같습니다. 그리 헌신했던 보리나주에서의 선교사의 삶이나 예술가로서의 삶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처참함 속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과 예수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그 죽음에서만 솟아나는 희망의 온몸 찢어지는 역동성의 흔들림 속에 있었습니다. 이 환한 보랏빛을 보십시오. 이 그림은 셍 레미 정신병원에서 안 정원에 피어있던 아이리스를 그린 것입니다. 유럽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보라색은 검은색과 함께 예수의 죽음과 고난, 금욕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또 상식을 뒤엎습니다. 보라색을 저토록 환하게, 꽃들은 살아있어 말을 거는 듯합니다. 꽃들만이 아니라 흙도 살아 움직입니다. 고통이 운명인 듯한 사람이 이런 환한 보라색을 빚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생의 마지막 어떤 희망도 모래알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한 이가 빚은 이 빛나는 보라색을 그저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고통이 빚어낸 생명의 빛의 환함이라고…. 그는 자신의 열매를 맛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열매를 맛보고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이리스 1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