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4년 10월의 말씀
알몸으로 보는 세상
년대 우리나라 어느 목욕탕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 같아 누드화 치고는 참 정감이 가는 그림입니다. 성적 매력이나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는 면에 치우친 누드화만 보았던 저에게 참 신선하고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자료를 좀 뒤져보니 화가가 아주 매력적인 여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의 신산했던 삶에 대한 무지나 제3자적 여유로움이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그녀의 삶을 일별하고 그녀의 작품을 보고나면 정말 사람을 잡아당기는 매력이 절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동시대의 인상파 화가들 즉 르노아르, 로트렉, 드가, 등이 그녀를 그리도 자주 모델로 삼아 그렸던 이유도 알 듯 해집니다. 그녀는 타고난 모델 기질로 많은 화가들의 불림을 받았고, 이들 덕분에 그녀의 여러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르노아르가 그린 그녀의 모습 속에는 그녀의 삶의 궤적을 읽어보기 힘들 정도로 포근한 모습으로, 로트렉의 그림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당시에 모델은 그저 그림의 대상만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이 요구되었지요. 그래서 그녀는 18세에 아들을 낳습니다. 모델을 하기 전, 그녀는 지금에야 외국인들이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유명한 거리 몽마르트가 당시에는 싸구려 술집 가득한 변방의 장소였고 그곳에서 세탁일을 하는 한 여인의 아버지도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그녀는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 서커스단의 곡예사도 된 적이 있으나 곡예를 연습하는 중에 떨어져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화가들의 모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화가들과 사귀고 헤어지기도 여러 번 했으니, 어딘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생이지만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트렉의 그림에서 수잔 발라동의 삶의 신산함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긴 하지만 그 안에는 로트렉 자신의 삶의 여운이 묻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자신의 삶에서 떠난 적이 없는 험난함에 뭉개지기를 거부하였지요.
그리고 모델로서의 인기가 상당했음에도 자신을 꽃같은 존재의 틀에 가두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말 그대로 어깨 너머로 바라보며 그림의 매력에 이끌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발로 그 세계 안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그녀의 실력을 눈여겨 본 로트렉이 모델이 아닌 조언자 친구가 되어주었고 수산나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드가에게 그녀를 소개합니다. 드가에게 그림을 배우며 누군가의 연인이나 모델이 아닌 화가 수잔 발라동으로 삶을 시작하며 1894년에는 프랑스 여성화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예술협회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녀의 그림 특히 누드화는 세상을 시끄럽게 했는데, 그 동안 남성 화가들만의 것이었던 누드화를 여성화가가 그린다는 것 자체가 당시 사회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누드화는 남성화가들의 틀을 훨씬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이 그림에서 앞의 여인은 수심에 찬 얼굴을 하고 있고, 그런 여인을 뒤의 여인이 머리를 매만져주며 살짝 고개를 숙여 바라보고 있으나 그 시선은 담담할 정도로 과도하지 않습니다. 아픔이 묻은 삶을 품어주되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런 고난을 경험한 이에게만 가능한 일이지요. 이 두 여인의 몸은 늘어진 가슴과 접힌 뱃살로 바로 우리 자신의 친근한 몸 그대로이지요. 그녀의 그림은 남성의 시선을 끌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고, 있는 그대로 인간의 삶, 알몸인 인생 그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이의 그림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선이 확실하고 동작도 과감하지만 폭력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정겹습니다. 그녀에게서 알몸 그림은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자 찬사요, 알몸은 그 사람의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수잔 발라동, 목욕하는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