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4년 7월의 말씀
성숙해가는 정열의 아름다움
각한 추론 없이 산뜻하게 다가오는 기분 좋은 그림 두 가지, 한 화가의 살짝 다른 감성을 맛볼 좋은 기회입니다. 때로 두 그림을 같이 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시야를 열어주기도 합니다. 한쪽은 좋고 다른 쪽은 못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색과 다름이 오히려 그림을 보는 묘미를 더해 주지요. 사람의 연륜과 열정이 깊어가고 변화되는 모습이 마치 스냅사진 보듯 선명하게 다가오는 그림입니다.
왼쪽 그림의 노인 두 사람은 복장부터 세월의 흐름이 역력하게 느껴지고, 어린 두 소녀의 하얀 빛이 주를 이루는 옷은 새 것에 가까운 청량함이 묻어납니다. 두 사람이 선 장소도 재미있습니다. 나이 든 여인들이 선 곳은 출입문 입구요, 소녀들이 앉은 곳은 집안 어느 장소, 실내입니다. 어떻게 구별하느냐고요? 소녀들이 앉아있는 문은 커튼으로 가림막이 되어있고 오른쪽 소녀 옆으로 앉은뱅이 의자와 바구니가 놓여있으며 여기저기 물건이 흩어져 있으니까요.
이제 두 스냅 사진의 핵심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장면 속으로 한 번 들어가보지요. 나이 든 두 여인은 아마도 이 장면 이전, 크게 다퉜거나, 어떤 상쾌하지 않은 작은 사건이 있었던 듯 합니다. 뒷모습만 보이는 여인은 몸을 상대방에게로 기울이며 온몸으로 무엇인가를 해명하고 있고 펼쳐진 왼손은 곧 상대방의 팔을 덥석 잡을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얼굴이 보이는 여인은 팔짱을 낀 상당히 방어적인 자세와 함께 앙 다문 입, 살짝 내린 깐 눈이 화가 나있음을 보여주긴 하지만, 왠지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즉 벌써 화가 반은 풀어진 상태인 것입니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장면은 오랜 세월 미운 정 고운 정 골고루 쌓으며, 모난 곳은 닳고 패인 곳은 절로 채워지며 나이듦의 가벼움이 귀여움마저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면서도 삶의 연륜이 쌓은 무게감도 잃지 않습니다.
자, 이제 입에 미소가 절로 떠오르는 발랄한 두 소녀를 보아야지요.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오른쪽 소녀는 몸을 뒤로 젖히고 깔깔 웃는 소리가 그림을 뚫고 들려올 정도입니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에게 현재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되는 내용이겠지요. 두 사람의 마음을 동시에 뛰게 하는 한 소년 혹은 두 사람 각자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두 소년, 아니면 마을의 소년들의 장난스런 행동에 대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요. 오른쪽 소녀가 살짝 제 가슴을 만지는 모습과 온몸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며 이런 상황을 짐작해봅니다.
이 시기, 인간의 열정은 가장 활활 타오르면서도 어느 방향으로 불꽃이 튈지 자신도 남도 모르는 그런 때인지라. 펄펄 뛰는 정열의 노예가 되는 일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 안에 있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열정” 이것이 아마도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요. 그래서 변덕스럽고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고 무엇인가 관심을 끄는 일이나 사람이 나타나면 앞뒤를 가리지 못하게 되는 일도 흔합니다. 거의 이 정열의 불꽃이 몸을 태우고 있는 형국이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한편으로 이 정열 때문에 생기발랄하고, 무엇이든 시작해볼 수 있고, 인생의 걸림돌에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어, 세상의 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정열에 방향이 잡히고 갈 길을 찾기까지 그 성장통을 겪어내는 여정은 인생의 온갖 우여곡절들과 엮이며, 각자 다양하고 다른 색깔들로 입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전, 이 인류 공통의 정열이 활활 몸을 태우는 듯한 시기는 이 그림처럼 소년 소녀들을 사뭇 비슷하게 보이게 하지요. 그 출발선에 선 두 소녀의 상큼 발랄한 모습이 어른들의 선입견과 삶의 무게로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삶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는 어떤 가벼움, 굽지 않고 꼿꼿한 여인들의 몸처럼 곧은 정신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잘못에는 용서를 빌고, 이웃의 약함에 눈감을 줄 알며, 거친 파도도 어찌 대처해야 할지 아는 그런 노인의 성숙한 열정으로 변모해가는 여정이 한눈에 보이는 두 그림을 함께 봅니다. 우리에게 있어 정열의 가장 확실한 방향잡이는 예수님이지요.
칼 블로흐, 이야기하는 두 여인(1874)-웃는 두 소녀(1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