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3년 5월의 말씀

스산함과 따뜻함

노레 도미에, 이 화가의 일생 이야기만 해도 이번 달 소식지 난은 꽉 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만 접하는 것으로 만족할까 합니다. 하나는 그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식이 아주 날카로웠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초기에 풍자 만화로 유명하여, 왕이 백성을 먹고 배설하는 장면으로 감옥과 정신 병원 유폐까지 당하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세상 권력의 비뚤어짐과 그로 인해 희생되는 서민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 서민의 스산함과 따스함 양쪽 모두를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상류 계층의 위선과 또 그만큼 하층민의 애환과 그들 심성의 따뜻함에 아주 민감하였습니다. ‘3등 열차’, ‘이주민들’ 등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서 아주 독창적인 장면들을 잡아냅니다. 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결코 잡아낼 수 없는 그런 장면들을 화폭에 담았지만 살아 생전 풍자 만화로는 알려졌어도 화가로는 이름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후 그의 그림은 인상파에 깊은 영향을 남겼고 시인 보들레르, 화가 들라크루아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그림은 서민의 일상 중 한 컷 스냅 사진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으로, 엄마 따라 어영차 계단을 오르는 어린아이의 걸음새가 당찹니다. 다리 길이보다 긴 계단을 짧고 통통한 다리로 오르는 모양을 보자면 마음이 절로 흐뭇해져옴을 느낍니다. 아마도 그 힘은 힘차게 그러쥐고 있는 엄마 손 때문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자기도 엄마를 돕겠다는 듯 빨래방망이를 두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올라오는 계단 뒤로 푸른 강이 보이는 것을 보면 빨래를 끝내고 그 빨래 뭉치를 손에 들고 올라오는 길이라 보여집니다. 빨래를 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물먹은 세탁물은 그 무게가 엄청납니다. 저 가파른 계단을 무거운 세탁물을 한 손에 들고,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는 계단을 오릅니다. 아이를 향해 살짝 숙인 엄마의 자세에 아이를 향한 사랑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남자 못지 않게 건장한 어깨와 팔뚝은 그녀가 단지 살림과 육아에만 전념하는 주부가 아니라 삶의 전선에서도 단단히 한몫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아마도 저 빨래는 가족의 것이 아니라 품삯을 받고 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분명 삶의 스산함이 가득한 환경 속에 거칠게 살아가는 여인 같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그림에서 모락모락 연기 오르듯 피어납니다. 어쩌면 삶이 스산하기에 그 사랑이 더욱 절실하고 깊고 순수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귀족 부인과 아이 그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귀한 조화입니다. 스산함으로 인한 황폐함뿐이거나, 따뜻함으로 마냥 솜사탕 같은 장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슴 찡한 감동이 있지요.

하루 노동으로 지친 엄마의 모습은 내색 안 해도 아이들에게도 느껴지지만, 엄마는 그런 빛 한 번 비치지 않고 힘든 노동 후에도 맛있는 밥 만들어 아이들을 먹입니다. 아이들은 그 사랑의 품이 넓어 저 아이처럼 힘찬 걸음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 아이는 큼지막한 빨래 방망이가 무거워 아래로 쳐져도 그 방망이를 꼭 그러쥐고 계단을 오릅니다. 아마 나름 엄마를 도와 주고 싶은 마음 아닐까요. 물에 젖어 한없이 무거워진 빨래가 건장한 엄마의 팔 힘만으로도 지탱이 안 되어 무릎 위에 살짝 얹듯 들고 올라옵니다. 그래도 아이의 손을 결코 놓지 않고 아이를 향한 시선도 거두지 않습니다. 남자인 도미에가 이런 모습을 포착했다는 것이 새삼 가슴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앞에 살짝 언급한 그의 삶의 언저리가 있기에 이런 평범한 모습 속에서 예술을 끌어낼 수 있겠지요. 사실은 5월 성모님의 모습을 찾다 이 그림을 만났고, 보자마자 이 그림 위에 성모님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성모님의 삶의 스냅 사진 한 장 건진 행운을 만났습니다.

오노레 도미에 1863년 48.9×33cm